김치는 절대 만들지 않겠다

김치는 만드는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음식이다.

by 귀리밥

지난번 월동 준비의 기억을 적을 때 ‘김장’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처럼 겨울 코트가 조금 덥고, 가을 잠바가 을씨년스러운 때가 바로 김장철이다.


물론 김장철이라고 해서 내가 고생스럽게 김치를 만들지는 않는다. 결혼 전에만 해도 집에서 엄마가 시키시면 억지로 만들기는 했다. 엄마는 “지금 배워 놓고 나중에 시집가면 김치 만들어야지!”라고 하셨다. 하지만 늘 속으로 ‘김치 절대 안 할 거야!’라고 다짐했다. 결국 결혼 후 다짐을 실행에 옮겼다. 단 한 번도 김치를 만들지 않았다. 엄마는 수시로 김치를 만들라고 다그치셨지만 절대 안 만들었다. 나는 마음먹은 건 꼭 해내는 사람이다.


김장은 정말이지 너무나 고생스러운 요리법이다. 피클은 그저 촛물을 바글바글 끓여 부으면 끝인데, 김치는 해도 해도 너무하다. 김치처럼 만드는 이를 고려하지 않는 음식도 없다. 그래서 김치를 맛없고 흔하며, 고급스럽지 못한 음식으로 무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때려 주고 싶다.


언젠가 사귀던 남자 친구에게 김장은 힘든 일이라고 토로했는데 그 친구가 “그냥 배추에 소금이랑 고춧가루 뿌리면 되는 거잖아?”라고 답하는 게 아닌가. 그 바람에 반쯤 마음이 식은 적도 있다. 설마 그렇게 해서 김치가 된다면 최고의 패스트푸드가 되었겠지.


다시 말하지만 김치는 만드는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음식이다. 많은 양의 배추와 무를 사서 씻는다. 거기에 굵은소금을 마구 뿌려 한나절 절인 다음 또 씻는다. 여기까지 해도 이미 지쳐버린다. 내 몸뚱이 하나 씻는 것도 귀찮은데 자꾸 채소들을 씻겨 주려니 얼마나 힘이 벅찬지 모른다.


배추와 무를 씻어 채반에 차곡차곡 얹어 놓고 김칫소를 만든다. 무를 채 썰고 파를 다듬고 고춧가루, 액젓, 해산물, 마늘 등을 넣는다. 말은 이렇게 해도 김치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보지 않아서 뭐가 들어가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하여튼 김칫소는 엄청난 양이다. 김칫소를 커다란 양푼과 고무대야에 담고, 가족 한 사람당 한 개씩 끼고 앉는다. 그리고 절인 배추에 김칫소를 켜켜이 넣는다.


이러한 작업은 수많은 배추가 모두 사라질 때까지 반복된다. 김칫소를 넣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 엄마는 눈치를 주셨다. 고무장갑과 앞치마를 벗고 화장실에 갔다가 잠시 딴짓을 하며 놀다 오려는 속셈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래도 화장실까지 못 가게 할 수 없으니 보내 주셨다. 그럼 나는 예상대로 화장실에서 나온 뒤 잠시 방으로 도망쳤다가 이내 끌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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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칫소만 넣는다고 끝이 아니다. 그 뒷일이 더 싫다. 김치를 만들다 보면 엄청난 설거지와 청소 거리가 쌓인다. 그 많은 청소를 하려면 정말 울고 싶어 진다. 싱크대에서 씻기에는 사용한 집기들이 너무 커서 주로 마당이나 욕실에서 씻어 엎어 놓는다.


집 안 바닥에는 김칫소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고춧가루와 젓갈 냄새, 절여진 배추가 떨궈 놓은 소금물, 양념가루 등이 흩어져 있었다. 전부 습기 있는 물질이라 비질을 하면 모두 빗자루에 들러붙기 때문에 걸레로 치워야 한다. 그것도 온 집안을 세 번 정도 왕복해야 한다. 걸레를 빨고 닦고, 다시 빨아서 닦고를 반복하다 보면 눈물이 난다. 이를 앙다물며 다짐한다. ‘김치, 절대 안 하겠다.’


이렇게 눈물 나게 청소를 마치면 엄마가 위로라도 하시듯 수육을 삶아 내놓으셨다. 열 받아서 수육 따위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막상 잘 삶은 고기를 도톰하게 썰어 놓으면 제일 먼저 앉아 먹었다. 여기에 바로 무친 무생채와 겉절이, 절인 배추의 속잎이 함께 놓인다. 배가 터지도록 고기와 김치를 싸 먹었다. 엄마는 계피를 넣어 수육을 삶으셨는데 그 솜씨가 굉장했다. 수육만 놔주면 김장으로 고생하고 화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밥 잘 먹는 나만 남아 있었다.


결혼 전 친정에서는 김장 때 매년 이백 포기의 김치를 만들었다. 게다가 아파트 생활이 흔치 않던 시절, 김장은 무조건 마당에서 해야만 했다.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날씨에 엄마와 우리 자매들은 물론, 일손을 거들기 위해 찾아온 동네 아주머니들까지 두꺼운 잠바를 껴입고 마당에 앉아 김치를 담갔다.


마당 한편의 수도에는 물이 마르지 않았고, 채소의 풋내가 마당 위를 둥둥 떠다녔다. 여자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빨간 고무대야를 하나씩 끼고 앉았던 김장 풍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많은 인원이 동원되어야 이백 포기나 되는 김치를 만들고 땅에 묻을 수 있었다.


그 많은 걸 어떻게 먹었나 싶지만 김치는 우리의 주식이었다. 갓 익은 아삭한 김치는 그저 밥에 얹어 먹기만 해도 맛있었고, 살짝 쉰 김치에 식용유를 넣어 들들 볶아 찌개를 끓이면 밥 한 그릇이 모자랐다. 또한 귀찮아하시는 엄마를 조르면 김치전은 쉽게 얻어먹을 수 있었고, 큰언니가 만들어 준 김치수제비는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요즘은 엄마 혼자서 스무 포기 정도를 담그신다. 언니들도 결혼한 후로는 직접 김치를 만든다. 결국 김치를 안 만드는 여자는 나뿐이다. 전업주부가 되지 않는 이상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상태로서는 전업주부가 되더라도 김치만큼은 안 만들고 싶다.


고집스럽게 김치를 만들지 않는 나의 수고는 고스란히 엄마에게 돌아간다. 일 년에 두 번, 엄마는 김치를 만드셔서 우리 집에 보내 주신다. 두 번의 김치를 다 먹고 나면 소량씩 사 먹는다.


엄마가 보내시는 김치는 여름철 열무김치와 김장철 포기김치다. 초여름 열무 철에 엄마는 참지 못하시고 내게 김치를 만들어 보내신다. 김치 좀 만들어 먹으라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콧방귀도 안 뀌는 막내딸이 열무김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지워 낼 수 없으신가 보다.


초여름에 열무를 잔뜩 사서 저녁 내 다듬어 절이고, 무를 갈아 넣어 시원하게 ‘엄마표 열무김치’를 만드신다. 나는 여름에 입맛이 없으면 흰밥에 열무김치를 적당히 가위질해 넣고 참기름을 뿌려 비벼먹는다. 여기에 고기까지 먹으면 정말 맛있다. 김치를 만들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는 막내딸이 이렇게 잘 먹을 것을 아시기 때문에 못 참고 보내시는 열무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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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에는 훨씬 더 수고스럽게 김치를 만드신다. 포기 수가 줄었다고는 하나 엄마는 절대 간편하지 않는 요리법만을 고집하신다. 팔 건강도 안 좋으신 엄마가 김치를 담그시는 게 얼마나 고된지 알기에 마음이 편치 않다. 자꾸 받기 미안해서 이번에는 김치를 안 받겠다고 우겼더니 엄마가 서운해하셨다.

“어떻게 김치를 안 먹고 사니? 엄마가 이번에 맛있게 할 건데 왜 이렇게 안 받겠다 그래!”


결국 예쁘게 썰어 만든 포기김치, 파김치와 갓김치, 겉절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큰 굴을 넣은 무생채를 집으로 가득 실어오셨다. 엄마는 김치를 주고 돌아가시며 먹어 보고 맛이 어떤지 꼭 전화하라고 하셨다. 내가 김치도 안 열고 대충 때우는 식사를 예방하는 신기한 주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님이 해주시는 양식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이렇게 받은 김치는 맛있고도 무겁다.

“친정에서 김치 주잖아?”

“친정엄마한테 반찬 해달라고 해!”

내게 이런 식의 요구를 들이미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자신들의 친정 부모님께서 베풀지 않으시는 것을 야박하다고 흉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어느 모로 생각해도 세상에 ‘받아 마땅한’ 자식은 없다. 관계로 인해 당연히 받을 수 있는 것은 이미 충분히 받지 않았나? 그래서 이 맛있는 김치는 조금 무겁다. 받은 만큼 좋은 자식이고 싶다. 받기만 하는 자식이고 싶지 않다. 미안한 마음에 한 번씩 눈물짓는 자식이기도 싫다. 부모와 자식 간도 떳떳하고 진솔한 관계였으면 좋겠다.


어제 엄마가 만들어 준 무생채를 밥에 얹고 참기름을 뿌려 비벼먹었다. 비벼먹기에는 흰쌀밥이 제일 맛있지만 나는 흑미밥에 비벼먹었다. 밥숟갈만큼 큰 생굴이 나올 때마다 치토스의 ‘한 봉지 더’가 나올 때와 같은 짜릿함이 있다. 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속이 개운하다. 괜히 알 수 없는 감동도 느낀다. 이렇게 엄마 표 김치에 감동받는 바람에 ‘한 번 담가 볼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 찰나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다짐한다. 김치는 절대 안 만들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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