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것과 내 것이 닮아가고 있다는 증명
우리 부부는 종종 서로 선물을 주고받는다. 생일과 결혼기념일은 물론, 평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작은 선물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직 신혼’이라거나 ‘부부 사이가 좋다’고들 한다. 사실 거창한 선물이 오가지도 않을뿐더러 선물이 감정을 표현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평소에도 선물을 전하는 풍경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우리의 선물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생일 선물은 생활비에서 구입한다. 생일이 일 년에 하루뿐이다 보니 금액에 연연하지 않고 고르도록 정했다. 서로의 용돈에서 구입하자면 꽤나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남편은 너무 의욕이 앞선 나머지 본인의 용돈으로 거액의 선물을 사주곤 했다. 결혼한 후 돈 관리는 내 몫이기는 했지만, 통장을 합치기 전 각자의 통장에 내가 얼마간의 돈을 넣어 줬기 때문이다. 갖고 있다가 꼭 필요한 데 쓰거나 갖고 싶지만 선뜻 용기내기 어려운 물건을 사라고 준 돈인데, 그 돈으로 내 핸드백과 부츠를 사주면서 흥청망청 써버렸다.
신나게 선물을 사준 뒤 따라오는 개인의 빈곤함 때문에 남편이 친구들을 만날 때 한동안 돈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깜짝 놀라 얼마간의 돈을 남편 용돈통장에 송금해 주었다. 이후 조금 높은 가격의 선물은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기념일 선물은 각자 용돈으로 구입한다. 대신 금액 선을 정했다. 이것도 남편의 의욕적인 선물 구입 때문이었다. 첫 결혼기념일에 남편은 나를 백화점에 데려가 갖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했다.
“갖고 싶은 게 없는데.”
“그래도 골라 봐. 뭐든 사줄게.”
“정말 없는데.”
“흠, 그럼 내가 여보한테 목걸이는 한 번도 안 사줬으니, 목걸이로 하자!”
“비싼데 뭐 하러 사니? 나 목걸이 없어도 돼.”
“그래도 사자. 결혼기념일인데!”
괜찮다는 나를 남편은 굳이 귀금속 매장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런저런 목걸이들을 보니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고 예뻤다. 남편과 나의 취향이 고루 적용된 목걸이 하나를 골라 목에 걸어 봤다. 마음에 쏙 들었다.
목걸이를 골라 포장을 맡긴 다음 남편은 결제를 했다. 설마 했는데 목걸이 가격을 들은 남편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이럴까 봐 안 받겠다고 했는데, 지금이라도 사지 말자고 할까 망설이는 찰나 남편이 호기롭게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직원에게 조그맣게 말했다.
“12개월이요.”
결국 남편은 본인의 용돈으로 1년간 내 목걸이 값을 꼬박 갚았다. 매달 급여일이 되면 정해진 액수의 용돈을 각자의 통장에 넣고 요령껏 나눠 쓴다. 프리랜서인 나는 교통비가 비교적 적게 드는 편이라 남편보다 적게 넣는다. 그럼에도 남편은 항상 용돈을 부족해한다. 그런 남편에게 12개월의 할부는 얼마나 지독한 족쇄였을까.
첫 결혼기념일에 남편에게 시계를 사줬다. 평소에 돈을 조금씩 잘 모으는 편이고, 푼돈을 안 쓰는 편이라 내 용돈으로 그 정도의 선물은 버겁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도 12개월 할부를 긋던 남편의 얼굴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나의 제안을 했다.
“여보, 우리 생일선물은 생활비로 구입하고 결혼기념일이나 다른 날 주는 선물은 금액 선을 정하는 게 어떨까? 생일선물은 자유롭게 고르지만, 그 외의 선물은 5만 원 정도로?”
할부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남편의 얼굴이 갑자기 밝아졌다.
“어, 정말? 그래 좋아!”
이렇게 밝아질 거면 비싼 선물을 사주지나 말던가.
하여튼 이렇게 생일선물은 생활비로 치르고, 결혼기념일 선물은 용돈이되 5만 원 선에서 해결하기로 정해졌다. 그 밖에도 프러포즈 기념일, 혼인신고 기념일, 첫 키스 기념일, 사귀기로 한 날, 크리스마스 등등의 날에 작은 선물을 주고받는다.
선물의 종류는 소박하다. 나는 남편의 모자나 머플러, 그림 액자, 남편이 좋아하는 코코아 믹스 등을 선물한다.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마카롱이나 케이크, 드립 커피, 꽃이나 다육이 화분 등을 선물한다. 이렇게 소박한 선물을 받는 날은 평소보다 많은 웃음을 공유한다. 선물의 액수는 즐거움과 비례하지 않는다.
그런데 생일선물을 생활비로 사다 보니 선물의 경계가 조금 모호해졌다. 이를테면 남편과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이 동일하거나 살림살이를 생일선물로 받게 되는 경우다. 얼마 전에 그릇 세트를 교체하고 싶어 했더니 남편이 “그럼 다음 여보의 생일선물은 그릇세트로 하자.”라고 하는 바람에 나의 분노를 산 적이 있다. 내 생일선물을 살림살이와 동일시하다니!
하루는 서울 어디의 빵집이 맛있다는 포스트를 보고 남편에게 내 생일날 가자고 말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아주 해맑게 대답했다.
“그럼 이번 여보 생일선물은 빵이야?”
다시 한번 남편은 나의 분노를 샀다. 값비싼 것을 탐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생일선물만큼은 빵으로 받고 싶지는 않다.
반대로 남편에게 생일선물로 무엇을 갖고 싶은지 물었더니 ‘서재 의자’라고 답해서 당황했었다.
“여보, 서재 의자는 그냥 살림살이잖아. 게다가 서재 의자는 주로 내가 쓰는데 그걸 여보 생일선물로 사주는 건 좀 이상해. 서재 의자는 그냥 평소에 사도 되잖아.”
“그래? 그럼 전에 여보가 사고 싶다던 그릇 세트 살까?”
“아니, 여보 생일선물인데 왜 자꾸 살림살이를 사려고 해. 여보, 그릇 세트 갖고 싶어?”
“아니.”
“그런데 왜!”
점점 갖고 싶은 것과 살림살이의 경계가 모호해져서일까. 남편과의 선물이 점점 무색해진다. 이러다 정말 내 생일에 그릇 세트를 사고, 남편의 생일엔 의자나 물티슈를 사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실용적인 선물이 값지게 다가올 수야 있겠지만 아직 생일선물 정도는 개인적이고 화려한 것으로 가졌으면 한다. 또 한편으로는 무슨 살림을 사든, 어떤 물건을 사든, 네 것과 내 것이 닮아가고 있다는 증명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