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달라진 명절의 온도
올해 초, 달력을 넘기다 10월을 보며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렇게 긴 연휴라니. 회사에 다니고 있다면 아마 휴일을 넉넉히 쉬고도 평소와 동일한 월급을 받아 즐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규직이 아니라서 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그래도 좋았다. 눈치 안 보고 긴 시간 놀 수 있어 반짝이는, 그야말로 황금빛 연휴를 맞이한 것이다.
명절은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온도차가 꽤 크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댁에 가서 음식을 도왔다. 이제와 생각하면 제사도 지내지 않는 집에서 그 많은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치른 게 어쩐지 억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계산이 필요 없던 나이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전을 부쳤다. 너무나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일이었다. 빨간 고무대야에 한가득 전의 반죽이 나오면 숟가락 두 개를 번갈아 쓰며 전을 부쳤다. 어차피 또래의 사촌이 없으니 그런 일이라도 안 하면 심심하기 때문에 나쁘지 않았다.
손에 물집이 잡히고, 전을 굽는 전기 프라이팬의 열기에 얼굴도 발그레 익었다. 그 단순한 작업은 나를 무념의 세계로 인도했고, 아무 생각 없이 몇 시간쯤 부치고 나면 자신이 꽤나 쓸모 있게 느껴졌다.
그런데 전 부치기에 대한 온도는 성인이 되면서 달라졌다. 초등학생 때부터 전을 부치던 나와 달리 어린 사촌들은 청소년기를 지날 때까지도 음식 만들기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모두가 하는 집안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시킨 일을 고분고분하게 해내면 쓸모 있는 사람이 될 것 같았던 내 동심은 촌스러웠던 걸까. 그렇게 혹독하게 일을 시켰던 어른들이 가끔 원망스러운 날도 있었다.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로 여러 번 다짐했다. 만약 자녀를 갖게 된다면 이러한 수고스러운 일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어린 나이에 여린 손길로 부엌일을 익히는 풍경은 내 선에서 그치고 싶었다.
음식 만들기에 대한 입장 못지않게 어릴 적부터 느낀 감정은 ‘교차’였다. 그 시절 할머니 댁에서는 음식 만들기를 모두 마치고 늦은 밤이 되면 옥상에 모여 불꽃놀이를 했다. 남녀가 유별한 집안 분위기였다. 여자들이 종일 땀 흘리며 음식을 장만하는 동안 남자들은 당구를 치러 나가거나 튀김 정도를 도왔다.
아마 삼촌들 마음속에는 부채감이 있었을 것이다. 여자들이 당연히 일하는 분위기다 보니 명절의 가사를 공평하게 나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소중한 아내가 고생하는 모습이 내심 불편했을 테다. 삼촌들은 문구사에서 폭죽을 가득 사와 밤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옥상으로 올라가 불꽃놀이를 했다.
어린 우리들은 옥상을 이리저리 뛰며 좋아라 했고, 그 짬에 숙모들은 달금한 커피를 한 잔씩 마실 수 있었다. 교차하는 분위기를 알아챌 리 없던 나에게 불꽃이 피어오르던 우리 할머니 댁은 그 동네에서 가장 화사한 곳으로 느껴졌다.
한편 명절에는 어른들의 따뜻함만큼이나 크게 느껴지는 지루함이 있었다. 평소에 교류가 많은 친척들이었지만 연휴 내내 할머니 댁에서 지내는 것은 곤욕이었다. 거리를 거닐고 싶고, 마음 편한 내 방에서 늦잠을 자고 싶었다. 텔레비전도 내 취향껏 보고 싶었다.
왜 어른들은 명절마다 씨름 경기를 그토록 열심히 봤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집안의 남자 어른들이 방에 모여 앉아 다과상을 놓고 말없이 텔레비전으로 씨름을 지켜보던 풍경은 지독하게 지루했다.
고되고 지루했지만 따스했던 결혼 전 명절 이후, 색다른 느낌의 명절이 시작되었다. 결혼 전에는 나의 가족과 친척뿐이었지만, 결혼 후에는 나의 가족과 친척, 그리고 배우자의 가족과 친척이 추가된다. 두 부류의 집안은 동일하게 명절을 맞이한다.
여기에서도 온도차가 발생한다. 언니의 사례를 보면 보통 형부의 집에 먼저 방문해 하루나 이틀 자면서 음식을 만들고, 명절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낸다. 이쯤이면 언니는 이미 불만이 가득한 상태다.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조상님께 떡 벌어진 밥상을 차려드려야 ‘착한 며느리’로 포장되는 현실이 불편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형부가 일을 조금 돕기는 했다지만 보통은 낮잠을 잔다고 하니 공평하지 못한 건 당연하다.
그 이후 언니에게는 친정, 형부에게는 처가인 우리 집에 오는 시간대를 두고 옥신각신한다고 했다. 조금 일찍 가자니 시가의 어른들이, 조금 늦게 출발하면 친정의 엄마가 섭섭해하는 단순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그런 과정을 몇 년째 지켜보니 명절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싸우고, 사랑하기 위해 화해했다가, 다시 싸우면서 상처받는 이상한 반복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런 명절에 조금씩 마음이 멀어져 갔다.
다행인지 나는 언니와는 조금 다른 명절을 보낸다. 시가와 우리 부부의 감정적 거리감이 있는 탓에 시가에서의 명절은 다소 자유롭다. 시가는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명절이면 오전에 시가에 들러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차 한 잔을 마신 후에 친정으로 향한다.
친구들은 다들 명절에 친정에 가는 순간을 학수고대한다던데, 나는 친정의 명절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친정 식구들과 친척들을 만나면 우리 계획에 있지도 않은 출산의 강요로 시작해서 살림에 관한 잔소리와 가르침이 숨 막히게 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께서 ‘아이를 낳아 시부모께 안겨 드리는 게 며느리의 도리’라고 훈계하실 때면 내가 마치 생식과 번식의 도구로 보이는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이런 환경에서 시가에 시간이 매여 있지 않다는 이유로 친정에서 긴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엄마 때문에 나 역시 신경전을 벌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명절마다 엄마의 반복되는 요구는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너는 시댁에서 제사 지내는 것도 아니니까 친정에 더 일찍 와. 와서 이삼일 자고 가.”
“엄마, 내가 시가에서 안 자니까 친정도 마찬가지야. 양가에 공평해야지.”
“그래도 너는 명절에 일도 별로 안 하니까 친정에 오래 있어야지.”
“일을 별로 하지 않으니까 오래 있어야 한다는 건 순전히 억지야. 양가에 공평해야 내가 나중에라도 시가에서 불공평한 처우를 당했을 때 의견을 말할 수 있어.”
“넌 친정 와서 있는 게 그렇게 싫어?”
“싫은 건 아니지만 즐겁지 않은 것도 사실이잖아. 나는 서로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즐겁게 웃으면서 지내고 싶어.”
아마 엄마는 오후 늦게 도착하는 언니들과 형부들, 조카들과 함께 우리 부부가 오래도록 머무르기를 바라는 마음이셨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시가에서 우리 부부에게 오래 머물고 가기를 바라는 게 싫은 것과 똑같으니 양보할 자리가 없다. 이런 요구에서 자유로워지려면 한동안 불편한 소리를 들어야 했고, 꿋꿋하고 냉정한 자세를 취해야 했다.
그래도 이번 명절부터는 양가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우리 부부는 10일간의 연휴 중에 문을 여는 전시회를 찾아 관람했고, 평소 가보고 싶었던 맛집을 다녔다. 충분한 낮잠도 잤고,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잔뜩 빌려와 함께 읽었다. 늦은 밤이면 다음 날을 걱정하는 대신 신나게 맥주를 마셨다. 지금도 저녁에 먹을 어묵탕을 끓이던 중 생각이 나서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고 있다.
다만 그리워지는 게 있다면 여전히 시가에서 고생하고 갈등하는 어릴 적 친구들이다. 나의 소중한 그녀들은 어딘가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며 뜨거운 전을 부치고, 기대치가 높은 부모님들의 용돈 봉투를 챙기느라 허덕이고 있을 것이다. 날렵한 몸매에 아리따운 얼굴로 승무원을 하던 친구는 어른들의 눈초리 때문에 명절 전이면 남편의 새 옷을 사고, 본인은 일부러 낡은 옷을 골라 입고 시가로 향한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명절만 되면 하루 종일 주방에서 일하고 나서 허리가 아파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자신의 친정에는 가지도 못하면서 시누이의 친정에 남아 다과상을 차린다. 명절 내내 익숙지 않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씻겨 재우고, 겨우 한숨 자고 나면 이른 새벽 부엌에서 시어머니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세수를 한다.
함께 웃고, 간식을 먹고, 수업시간에 나란히 졸면서도 알 수 없는 미래를 상상하던 나의 친구, 나의 동무들이었다. 명절은 그녀들의 응어리지는 나날이다. 가끔 나에게 “너는 좋겠다.”라며 푸념하는 친구들의 메시지에 배부른 소리로 보일까 봐 차마 겉으로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말한다.
‘너희들이 편치 않아서 나는 가끔 속이 상한단다. 그래서 휘영청 뜬 달이 그리 달갑지는 않아.’
올 추석도 온도차가 작지 않다. 뜨거운 온탕에서 급히 뛰어든 냉탕의 낯선 온도처럼 명절은 그저 좋은 날만은 아니다. 어제와 또 다른 찬바람이 부는 오늘은 추석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닮아 있다. 싸늘한 공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온화한 명절을 보낼 수 있기를 깊이 바라고 있다. 나의 친구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와 한숨 잘 수 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