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부모는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걸까?
얼마 전 남편의 생일이었다. 생일이라고 미역국만 날름 끓여 주면 서운할까 봐 이것저것 준비했다. 손은 느리지만 먹고 싶은 반찬을 여러 가지 준비해 즐거운 남편의 얼굴을 보는 것이 행복했다. 그리고 남편은 평소보다 그득한 밥상을 받으며 생일이라는 점을 새삼 되새길 수 있었다. 이것이 이 무렵 우리 부부가 생일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미역국은 소고기를 듬뿍 넣어 끓이고, 미니 스테이크는 기름기 없이 오븐에 굽는다. 새콤한 나물을 무치고, 아쉬울까 봐 어묵도 볶았다. 며칠 전에 주문한 겉절이를 그릇에 담았고, 쌈 채소로 식탁에 푸름을 채웠다. 아차, 미리 사둔 애호박을 깜빡할 뻔했다. 애호박을 얼른 썰어 호박전을 부쳤다. 마지막 단계는 남편이 며칠 전부터 먹고 싶다고 했던 고추잡채였다.
이렇게 상을 차리는 동안 남편은 주방을 오가며 식탁 위에 담아 둔 호박전을 조금씩 집어먹더니 식사 전에 이미 반 접시를 비웠다. 그러고 보니 군대에서도 먹고 싶은 음식이 피자, 치킨 등이 아니라 호박죽이었다고 말한 적 있었다. 유난히 호박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앞으로도 호박전을 자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갓 지은 현미밥으로 상을 차린 후 안 하던 짓을 했다. 정성껏 마련한 생일상을 사진으로 찍어 시어머니께 보내 드렸다. 먼저 시어머니께 연락을 하거나 우리 부부의 일상을 전한 적이 거의 없던 내가 남편 눈에는 얼마나 뜬금없어 보였을까. 남편은 메시지를 적는 나를 말렸다.
“여보, 그런 거 안 해도 돼. 굳이 먼저 연락하고 친해지려고 안 해도 돼.”
“친해지려고 그러는 건 아니야. 어머니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
“그런데 왜 보내?”
“내가 어머니라면 지금 여보가 무엇을 먹고 있을지 궁금할 것 같아서.”
시어머니로부터 예상했던 답신이 왔다.
“솜씨가 좋구나. 우리 큰아들이 호박전과 호박죽을 좋아하는데,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고맙다.”
안 하던 짓을 하게 된 연유는 사실 얼마 전 시어머니와의 독대 때문이었다. 결혼 전부터 시부모님과 우리는 입장 차이 때문에 옥신각신했고, 그런 관계가 결혼 후 4년 내내 이어졌다. 게다가 집에 무슨 일만 생기면 모든 원망을 내쪽으로 돌리시는 탓에 며느리인 나는 발도 편히 못 뻗고 지냈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상한 감정으로 인해 시부모님과 소원해졌지만, 시부모님과 남편의 사이는 결혼하기 훨씬 전부터 냉랭했다. 어쩌다 주고받는 연락에서는 서로 날을 세우고, 어쩌다 만난 명절에는 서로 화를 내느라 바빴다. 이렇게 서로 으르렁거리며 사느니 차라리 모른 척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랬던 차에 몇 주 전 시어머니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안 그래도 어색한 사이에 단 둘이 식사라니, 속으로 뜨악했지만 무슨 얘기를 하실까 싶어 호기심이 들었다. 남편은 만나지 말라고, 분명 상처 주는 말만 하실 거라고 말렸지만 일단 만나보기로 했다. 이틀 후 점심식사를 약속했고, 시어머니는 두 시간 가까이 운전을 해 내가 사는 동네로 오셨다.
시어머니와 단 둘이 자리를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둘이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생각했다. 일단 마음에 없는 소리나 재미를 위해 말을 꾸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침묵도 가끔은 도움이 되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평소 살갑지 않은 내게 얼마나 원망의 말씀을 늘어놓으실까 미리 걱정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딸 같은 며느리’와 전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런데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예약한 식당에 앉자마자 시어머니께서는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시부모 두 분이 요즘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당신께서 친하게 지내는 아주머니들의 이야기, 당신의 말버릇 중 큰아들이 싫어하는 점, 큰아들이 성장하는 동안 있었던 이야기, 작은아들의 근황 등등 여러 가지를 쭉 꺼내 놓으셨다. 내가 부모의 무관심에서 자라서인지 이렇게 세세하게 아들에 대해 기억하고 고민하는 시어머니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잠시 후 시어머니께서는 만나자고 하신 속마음을 털어놓으셨다.
“많이 오는 건 바라지도 않아. 연락 자주 하는 것도 용돈도 필요 없어. 내가 32년째 시어머니 용돈을 드리고 있어서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거든.”
나의 시어머니도 당신의 시어머니를 대하고 있다는 걸 깜빡할 뻔했다. 그리고 시어머니도 나와 같은 며느리라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편 시어머니와 시할머니께서는 어떤 감정과 입장으로 서로를 대하실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궁금함은 잠시 접어놓고, 대화에 집중했다.
“어머니는 저희에게 어느 정도를 기대하세요?”
“설날, 추석, 우리 생일, 어버이날. 딱 이렇게 다섯 번 만나면 더 뭐라고 안 해.”
그동안 우리 부부와 으르렁거린 세월을 고려했을 때 굉장한 요구조건을 내미실 줄 알았는데, 시어머니께서 요구하신 것은 의외로 소박한 만남이었다.
잠시 골몰하는 사이, 내가 싫은 내색이라도 할까 걱정이셨는지 몇 마디를 덧붙이셨다.
“명절에 와서 자고 가지 않아도 돼. 그냥 설날 편한 시간에 와서 떡국 한 그릇 먹고 친정 가. 와서 음식도 하지 마.”
“…….”
“우리가 많이 바라는 것도 아니잖아. 우리가 어색해진 것도 사실 아들 생각하는 마음이 커서 이렇게 된 거지. 그래도 부모 자식이잖니?”
시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라는 말을 실감했다. 부모가 자식을 더 사랑하는 것은 낳은 쪽의 운명일 수밖에 없다. 시부모님은 ‘약자’였다.
연락이 뜸해지면 장가든 큰아들이 건강한지, 회사 생활은 어떠한지, 처가에서는 잘 지내는지 궁금한 분들이셨다. 교정한 치아는 괜찮은지, 아토피 피부염은 호전이 있는지, 어떤 반찬을 자주 먹는지, 세세한 것까지 궁금해 마지않는 분들이다.
남편이 그토록 좋아하는 호박죽을 사들고 군대에 면회를 간 사람, 아토피 피부염의 원인을 수십 년째 고민하는 사람, 치아 교정을 위해 병원을 알아본 사람도 모두 약자인 시어머니셨다. 그 ‘약자’께서 어색한 아들 내외와 잘 지내고 싶은 마음에 먼저 손을 내미신 것이다. 시어머니의 연약한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싫은 내색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날 남편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퇴근했다.
“엄마가 안 괴롭혔어? 엄마가 이상한 말했지?”
“생각보다 별로.”
“설마, 엄마가 그럴 리가 없는데!”
낮에 시어머니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앞으로 명절에는 몇 시쯤 시가에 방문하면 좋을지, 어머니께서 기억하시는 큰아들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당신의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약자일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모두 전해 주었다.
그럼에도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반대로 내가 답답해 죽겠다고 하는 친정엄마를 포근하게 대하는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역시 서로의 부모는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걸까? 시어머니는 생각보다 고난도가 아니셨음을 깨닫는 동시에, 나의 부모 또한 남편 입장에서는 좀 더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닿았다.
앞으로도 나는 살가운 며느리가 되지 못할 것 같다. 명절이라고 음식을 만들어 가거나 고가의 선물로 시부모님의 자랑거리를 만들어 드릴 마음은 들지 않는다. 함께 여행을 가거나 시어머니와 쇼핑을 다니는 다정한 며느리가 될 의지도 능력도 없다.
다만 이번 시어머니와의 독대를 통해 약자의 숙명을 느꼈다고나 할까. 호박전과 호박죽을 좋아하는 큰아들의 안부와 생일상 정도는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너무 올곧은 사랑으로 상처 주지 않는 선에서 시부모님과 수평의 길을 천천히 걷고 싶었다. 이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