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친구가 사는 옷이 예쁘다는 걸 알아버렸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지금 잘 살아야지, 오늘이 중요하지, 하면서 현재를 궁색하게 만들지 않겠다고 늘 마음먹는다. 하지만 결코 쉽지는 않다.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생각에 벽을 치고, 신나게 즐기다 보면 지금 갖게 될 궁색이 미래로 미루어질 뿐이다.
이런 나의 생각은 어찌 보면 ‘없이 살았던’ 과거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자매가 많고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먹을 것은 풍족했지만 아이가 먹을 만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가진 옷은 많았지만 새 옷은 구경도 할 수 없던 나는 자매의 끝자락인 막내 신세였다. 형제가 있으면 이기적이지 않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배운다고 누가 그랬나.
그 주장은 대부분 거짓이다. 형제가 있어 자기 영역을 지키고 싶어 안간힘을 쓰고, 본능적으로 절약해 자기 것을 구축해야 하는 생존본능이 강해질 뿐이다. 막상 이렇게 쓰고 나니 기껏 키워 주신 엄마를 서운하게 하고, 열심히 살아온 내 삶이 너무나 빈약해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도 아끼지 않는 한 구석이 있다면 바로 남편의 옷이다.
남편의 옷값만큼은 아끼지 않는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나를 매우 현모양처, 남편 바라기, 열혈 내조형 아내 등으로 생각한다. 그건 오해다. 남편의 옷에 돈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그런 이유가 아니다.
어느 이른 봄날 나와 연애를 시작한 남편은 한 가지 옷을 줄곧 입었다. 회색 후드 집업에 청바지였다. 보통은 다른 색의 집업 두어 개를 돌려가며 입거나 청바지도 다른 색으로 두 개쯤은 있을 법한데, 남편은 오로지 한 벌을 봄 내내 입었다. 여름이 되니 집업을 벗고 같은 청바지에 티셔츠 한두 개를 돌려가며 입었다.
그런 이유로 남편이 매우 가난한 집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회사를 다니며 돈은 벌지만 자기 옷 한 벌조차 마음대로 사 입을 수 없는 가난한 형편의 장남일 거라 짐작했다. 그가 안쓰러웠고, 그럼에도 꾸밈없고 당당한 사람이라며 더욱 정을 줬다. 그러던 그가 가을부터는 말쑥한 옷을 잘 챙겨 입고 나왔다. 잘 어울리는 셔츠가 있고, 색이 꽤 예쁜 카디건에 장식이 귀여운 코트까지, 평범한 감각이 아니었다. 순간 동물적 감각으로 정보를 얻었다.
“이 옷들, 예전 여자 친구가 사준 거지?”
한 번 던져 본 말에 남편은 화들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어?”
그날 밤, 묘한 서운함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그 예쁜 옷들이 과거 여자 친구들의 감각이었다니…….
이미 지나간 일이었고, 실용적이면 그만인데 어쩐지 속이 뜨거웠다. 게다가 그 옷들은 남편과 굉장히 잘 어울렸다. 옷이 이상했다면 시원하게 버리라고 할 텐데 너무 잘 어울려서 뭐라 간섭할 수 없는 감각의 소산이었다.
이후 결혼과 함께 남편이 챙겨 온 짐에는 역시 그 옷들이 있었다. 자신의 옷을 잘 사지 않는 남편에게는 예전 여자 친구들이 사준 옷이 거의 전부였다. 감히 버리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속옷만 입고 회사에 가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물건의 실용성을 감내하기에는 내 마음이 너그럽지 못했다. 결혼 후 한동안 끙끙 앓다가 어느 날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남편을 꾸며 주자고 결심했다.
일단 유명한 남성 쇼핑몰을 찾아보고 SNS에 올라온 예쁜 남자 옷을 사서 남편에게 입혀 봤다. 한때 유행이다 싶어도 독특하고 예쁜 아이템을 사서 남편에게 걸쳤다. 사실 연애 중에도 선물을 즐겨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남자 옷을 고르는 감각이나 요령이 턱없이 부족했다.
인터넷에 의존했던 스타일링은 남편과 별개로 놀았다. 어쩐지 남편의 체형과는 맞지 않는 옷들, 피부색을 더욱 칙칙하게 만드는 컬러, 모두 남편이 기겁할 정도로 싫어하는 스타일들이었다. 남자 옷을 산다는 게 이리 어려운 줄 몰랐다. 그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찾을 수만 있다면 긴 여정을 떠날 작정도 했었다.
인정하기는 힘들었지만 남편에게는 과거 여자 친구들이 사준 옷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한 번은 그 옷들의 상표들을 훑어봤다. 결코 싸지 않은 옷들이었다. 남편이 재벌가의 딸만 골라서 사귀지 않았다면 보통의 20대 학생이나 갓 취직한 사원 급의 여성들이 선물하기에는 다소 부담되는 가격대의 옷들이었다.
그 옷들을 손으로 만지며 눈을 감았다. 남편의 옛 여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옷을 샀을까? 아마도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이나 월급의 일부를 모았다가 백화점에 가서 남성 세미 정장이나 캐주얼 매장을 돌고 돌아 골랐을 것이다.
선물을 주면 당연히 기뻐할 수준의 디자인, 어느 자리에 입고 가도 헐어 보이지 않을 소재, 혹시나 교환을 하는 중에 알게 되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가격대, 무엇보다도 남편의 인상과 피부 톤에 잘 맞는 색감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자 친구의 감각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내가 되어 한 달 가계 예산을 맞추고, 회사 생활에서 실용성을 중시하며, 현재 갖고 있는 옷들과 비교해도 문제가 없을 디자인을 고르는 아내의 안목이 아니었다. 오로지 한 남자의 외면과 상황에 집중한 여자 친구가 골라낼 수 있는 옷들이었다.
여자 친구를 넘어 아내가 된 후로 ‘남편’으로만 바라봤던 걸까. 아직 남편 안에 담긴 소년의 모습과 청년의 풋내, 그리고 연애 상대로서의 매력을 잠시 잊고 ‘남편의 옷’만 수소문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날 이후 남편의 옷이 필요하면 일단 백화점이나 아울렛 매장으로 간다.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며 괜찮아 보이는 옷을 최대한 많이 입어 보게 한다. 옷을 사는 달에는 그달 가계 예산의 20퍼센트, 추운 계절에 겉옷을 살 때는 30퍼센트 정도의 금액 대에서 멋과 가성비가 높은 옷을 일단 산다.
옷을 살 때만큼은 남편이 아닌 남자 친구를 만난다. 여자 친구였던 시절로 돌아가 남자 친구의 옷을 고른다. 내 옷을 살 때는 천 원 단위도 비교하면서 사지만(내 옷값은 예산의 5퍼센트를 넘기지 않는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늘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 그래도 아깝지 않다. 헤어진 남자가 아닌 이상, 연인의 옷값은 아깝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잘 입혀 남편을 회사에 보낸 첫날에는 이상하게도 얄미운 사건이 발생한다. 평소에는 회식 일정을 미리 알려주었지만 새 옷을 입은 날에는 갑자기 회식이 잡힌다. 그리고 꼭 고기를 먹다가 옷에 쌈장이나 기름 따위를 묻혀 온다. 음식 냄새도 진하게 배어 온다.
한 번은 처음 입은 아이보리 색 니트에 진한 갈색 커피를 주르륵 흘리고 오거나 흰 셔츠 소매에 붉은 국물을 진탕 묻혀 오기도 했다. 새로 산 카디건에 치킨 부스러기가 다닥다닥 붙어 있던 날에는 한숨이 나왔다. 네다섯 번이라도 입은 옷에 흘렸다면 억울함이나 덜할 텐데, 꼭 첫날에 실컷 묻혀 오는 것이 참 이상했다. 이럴 때는 다시 아내의 눈으로 돌아가 급히 세제를 발라 세탁한다. 애인이 밖에서 사준 옷을 집에서 아내가 세탁하는 모양 같아 피식하며 싱겁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