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한 가운데 찾아오는 특별한 냉각
문득 부부가 되니 생겨난 것이 하나 떠올랐다. 부부가 되었더니 싸움에도 이름이 붙었다. 바로 ‘부부 싸움’이다. 결혼한 부부가 싸우면 부부 싸움이다. 결혼 전에는 누구와 싸워도 이름이 없었다. 엄마 싸움, 자매 싸움, 친구 싸움, 노인 싸움과 같은 말은 없는데, 부부는 싸우면 이름도 붙으니 참 신기하다.
저녁을 먹으며 남편에게 부부는 싸우면 이름도 생긴다고 말했더니 부부 싸움에 관한 특별한 관용어도 있다고 했다. 옳거니,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관용어가 있다. 칼로 물을 베듯 효과도 없고 하나 마나 한 일이라는 의미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부부 싸움은 어쩐지 특별한 행위처럼 다가왔다. 물론 해봐야 좋을 건 없지만 부부가 아니면 부부 싸움을 할 수도 없으니 특별한 거다. 부부니까 할 수 있는 특별한 싸움이다.
당연히 우리 부부도 싸운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자주 싸웠다. 그 이후로는 언제 싸웠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싸움이 없다. 최근에도 싸운 일이 없는 듯해서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 안 싸운 지 좀 되지 않았어?”
남편도 머쓱해하며 대답했다.
“그러게, 마지막 싸움이 언제지?”
우리 부부는 싸움의 원인이 단순해서 나중에 떠올리면 몹시 부끄럽다. 크게 싸웠던 날이 있다면 결혼하고 몇 달 지나서였다. 싱크대의 배수구를 교체해야 했는데, 나는 전문가를 통해 설치하고 싶었다. 남편이 공구를 만지는 것을 몇 번 보았는데 영 부실했기 때문이다. 특히 하수구에 연결하는 일이니 전문가가 훨씬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굳이 본인이 하겠다고 우겼다.
부속품만 사서 본인이 설치하면 비용이 절감된다고 나를 계속 설득했다. 하는 수 없이 배수구 부속품만 구입했다. 퇴근 후 남편은 호기롭게 설치를 시도했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였다. 결국 남편은 퇴근해서 새벽까지 끙끙거리며 하수구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 부부가 벌이는 주된 싸움의 구조다.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하면 이런 일도 없잖아!’의 나와 ‘나는 노력했는데 왜 그래?’라는 남편의 충돌이다.
집 안 가득 하수구 냄새가 차올랐다. 그런데 옆에서 끙끙대는 남편을 보니 더욱 화가 났다. 이럴 바에는 내가 하자는 대로 설치기사를 부르면 될 것을, 돈 아끼자고 고생만 하고 시간을 버리나 싶어 속이 탔다.
홧김에 싱크대 부속품을 담은 상자를 걷어찼다. 생각지도 못하게 상자는 거실 천장에 부딪힐 정도로 붕 날아올랐다. 솔직히 내 발 힘이 이리도 센 줄은 몰랐다. 황금 오른발을 지닌 모양이었다. 천장에 부딪혔다 떨어진 상자에는 내 발이 닿은 부분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남편은 이날을 기억하며 여전히 나를 ‘사커 킥’이라고 부른다.
여하튼 ‘사커 킥’을 날리는 모습을 보고, 남편도 화가 났는지 화를 몸으로 분출하기 시작했다. 화가 나도 무언가를 부수거나 던질 만큼 무모하지 않은 남편이 갑자기 제자리 뛰기를 했다. 마치 ‘스카이 콩콩’을 타듯이 제자리에서 두 발을 튕기며 뛰는 모습이 제법 경쾌하기까지 했다.
화를 내는 것 같기는 한데, 줄넘기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체조를 하듯 발랄하기까지 한 그 모습이 상당히 웃겼다. 그렇게 한동안 제자리에서 콩콩 뛰더니 이성을 되찾은 후 다시 싱크대와 씨름을 했다. 이날이 우리의 부부 싸움 중 가장 격렬한 날이었다.
이후에도 몇 번 싸웠다. 싸움을 하며 주고받은 말을 옮겨 적어 보면 꽤나 유치한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내가 너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식판 깔고 먹으랬잖아! 왜 이렇게 흘리고 먹어!”
“너는 안 흘리냐? 너도 흘리잖아! 넌 만날 그렇게 깨끗해?”
“그래, 난 깨끗해!”
“너도 가끔 흘리거든?”
“언제? 언제 내가 흘렸는데? 언제 흘렸는지 빨리 말해!”
“싫어, 말하기 싫어!”
이런 유치한 대화를 주고받는 게 우리의 부부 싸움이다. 그래도 싸우고 흥, 하며 돌아서면 조금씩 후회가 밀려온다. 그제야 좀 근사하게 말하지 못함을 후회하고, 우아하게 남편을 공격하기에 좋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다툴 때는 홈웨어도 고급스럽고 깨끗한 것을 입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은유적 표현과 두고두고 반성할 수 있는 말로 이기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이왕 싸울 거면 공격하고 싶은 소재를 메모했다가 나긋한 전통찻집에서 정갈한 차림으로 싸우고 싶기도 하다. 밥을 먹던 주방이나 온수매트 위에서 싸우고 있노라면 살짝 초라하다.
어떤 식으로든 싸운 뒤에는 갠다. 싸우고 잠든 다음 날이면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잊어버리는 게 기본이다. 싸우면서 작은 눈을 부릅뜬 남편의 얼굴을 보면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평소에 웃음이 잘 터지는 나는 싸우다가 나도 모르게 웃어서 상황이 종료된 적도 많다. 싸우다가 유치한 길로 빠지고 나면 계속 유치하게 대응하기 어려워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남편이 갑작스레 춤을 추기도 하고, 웃긴 소리를 해서 싸움을 마무리한다.
그러고 나면 다시 평온한 상태로 돌아가 따뜻하게 지낸다. 냉각과 가열의 반복이다.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곳에 들어가면 피부가 뜨거워지고, 찬물에 발을 넣었다가 뜨거운 물에 넣으면 타는 듯이 열이 오르는 것과 같다. 부부 싸움은 그런 거라고 느낀다. 타는 듯해도 뜨거운 것이 좋고, 훈훈한 것이 좋으니 가끔 찾아오는 냉각도 소중하다.
그런가 하면 부부 싸움은 희극이기도, 비극이기도 하다. 어릴 적 바라본 부모님의 부부 싸움은 비극이었다. 그런 날에는 한없이 불행한 자식이라고 느꼈다. 잠든 척 옆으로 돌아누워 울곤 했다.
부모님이 다투신 다음 날 아침 밥상에서는 어쩐지 눈치가 보여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밥을 남기면 어김없이 혼났다. 사실 그때 묻고 싶었다. 엄마랑 아빠는 왜 싸웠냐고, 이제 화해했냐고 말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나이었지만 집 안의 분위기는 공기로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의 싸움은 재처럼 흩날렸다. 자꾸 울고 싶었다.
부부의 한 사람으로 살게 되니 부모님의 싸움도 희극인 날이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엄마에게 전화해 물어볼 수도 있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부부 싸움의 의미는 오롯이 부부만 알 수 있고, 부부 외의 사람에게 전해지면 어떤 식으로든 왜곡된다는 것도 이제 알겠다.
그래서 남의 부부 싸움 글에 익명의 사람들은 혹독한 댓글을 쓰지만 정작 자신은 그 댓글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싸움이며, 비극과 희극의 판단은 그들만이 할 수 있다. 어릴 적 바라본 비극도 부모님만 소유하는 것이니 외면하기로 했다.
결혼을 하고 부부가 되니 싸움에도 이름이 붙는다. 왠지 자주 하지 말라고 세상이 지어 준 이름 같다. 자주 해봐야 좋을 것 없다고, 너도 어릴 때 부모님의 부부 싸움 때문에 울지 않았느냐고 세상이 묻는다. 그래서 애써 이름까지 붙여졌다면 그 뜻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생각이다. 그리고 이따금 다가오는 소중한 냉각은 받아들이되, 비극적인 부부 싸움은 멀리하겠다고 다짐한다.
안녕하세요. 도란 작가입니다:)
그동안 <반절의 주부>로 익숙하셨을 제 글을
매주 화요일마다 여러분께 조금씩 보여드릴 기회가 생겼답니다.
이번 매거진은 지난 7월 출간한 저의 첫 책 <여자 친구가 아닌 아내로 산다는 것>에 수록된 원고 중 10편을 고른 것입니다.
이미 반절의 주부에서 보여드렸던 글 중 새로 다듬은 6편의 글과
미공개 원고 중 4편을 글을 하나씩 꺼내려합니다.
결혼하신 분들과 결혼하지 않으신 분들 모두 재밌게 읽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서점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제 책에도 작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