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제님은 없고 도련님은 있다

가족이 되는데 '님'이 꼭 필요할까?

by 귀리밥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속병을 앓게 되었다. 이런 일이 생길지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바로 ‘호칭’ 때문이다.


결혼 전에는 문제가 될 호칭이 전혀 없었다. 집에서는 엄마, 아빠, 언니면 충분했고, 친척들을 만나면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이모가 전부였다. 문제 될 게 없던 가족들 간의 호칭이 결혼 후에 신경전을 벌이는 주제가 되고 말았다.


결혼 전부터 형부들은 엄마에게 ‘어머니’라는 호칭을 썼다. 엄마가 ‘장모님’은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하셔서 처음부터 ‘어머니’로 부르기를 원하셨다. ‘어머님’보다는 주로 ‘어머니’였다. 친척들을 만나도 형부들은 나의 친척들을 삼촌, 숙모, 이모, 이모부,라고 불렀으니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나도 결혼을 했고, 광고 카피처럼 ‘또 하나의 가족’이 생겼다. 시가가 생겼고, 시부모님을 비롯한 가족이 늘었다. 나는 사고방식을 거스르지 않는 호칭을 사용했다. 시부모님께는 어머니, 아버지라고 했다. 남편의 이모님께는 이모라고 불렀다. 그런데 조금 엇나가는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어느 날 시이모님께 전화를 걸었을 때였다.


“이모, 저 란이에요!”

“누구세요?”

“네? 아, 저 원준 씨 처요.”

그제야 시이모님은 나를 알아채셨다.

“어머, 미안해. 이모님이라고 안 하고 이모라고 해서 못 알아들었네.”

그제야 나도 ‘님’의 사용 여부를 알아챘다.


그날까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내 가족과 친척에게 붙이지 않는 ‘님’을 왜 시가라는 이유로 붙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의 가족들은 남편에게 어머니나 처형으로 불렸다. 할머니는 할머니, 삼촌도 삼촌, 외숙모도 외숙모였다. 나의 사촌동생들은 처제와 처남이었다. ‘님’이라는 글자는 형부들에 대한 호칭에만 적용되었다. 오로지 형부들만 ‘형님’으로 불렸다.


그런데 내게 요구되는 호칭은 좀 달랐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어머님과 아버님으로 불러야 했다. 내 지인들도 이상하게 남편의 부모님을 부를 때는 어머님과 아버님이었고, 시부모가 아닌 시부모님이라고 불렀다. 내 부모는 장인, 장모면서 왜 상대의 부모는 시부모님이 되어야 하는지 괴이했다.


이모에게는 이모님, 이모부는 이모부님이었다. 아마 친정보다 시가가 어렵게 느껴지는 사회 풍토 때문이리라. 시이모님께서도 그런 분위기가 익숙하셨기 때문에 내가 부른 ‘이모’라는 호칭이 많이 어색하셨는지도 모른다.


가장 문제가 된 부분은 도련님이었다. 남편의 동생과 사촌들에게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써야 했다. 이 부분에서 열이 받아 아주 팔짝 뛸 노릇이었다. 왜 남편의 동생은 ‘도령’도 아니고 도련‘님’인 걸까. 도련님은 분명 높임말이다. 남편의 결혼 안 한 남동생은 도련님, 남편의 여동생은 아가씨다. 도련님과 아가씨는 신분사회에서 종이나 아랫사람이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었다. 이런 악습이 여전히 흔적을 남기며 며느리가 아랫사람을 자처하게 만든다.


게다가 내 언니는 처형이다. 내 사촌동생들은 처제와 처남이다. 내 가족이 받는 호칭에서 ‘님’이라는 글자를 찾아볼 수 없다. 남편은 내 사촌동생들을 처제라고 낮춰 말하는데, 나이가 어린것도 아랫사람인 것도 똑같은 남편의 동생들은 어째서 내게 ‘도련님’이라는 존칭을 들어야 하는 걸까. 이런 모순에 부딪힌 날, 감기를 앓듯 머리가 펄펄 끓었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있다가 호칭 문제가 떠오르면 속이 꼬여서 허공에 발길질도 했다.

gummi-bears-8551_960_720.png 친정이든 시가든, 똑같은 가족이다. 어느 한쪽만 높은 호칭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혹시 대체할 수 있는 호칭이 있을까 해서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 보았다. 슬프게도 대체할 만한 호칭은 없었다. 도련님은 도련님이었고, 처제는 처제일 뿐이었다. 내 사촌동생들은 처제와 처남으로 낮춰 불리는데, 동일한 입장인 남편의 동생들은 내게 존칭을 들으며 도령과 아가씨 대접을 받아야 했다.


나는 남편의 이모를 이모라 부르면 정체를 알릴 수도 없어 이모님으로 불러야 소통이 될 수 있었다. 반대로 남편은 나의 숙모에게 숙모, 삼촌에게 삼촌, 이모에게 이모, 이모부에게 이모부라고 부를 수 있었다.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집을 부를 때도 낮춤과 높임이 생긴다. 처가와 시가는 동일하게 쓸 수 있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 입에는 처가와 함께 시댁이라는 명칭이 척 붙어 있다. 명절이 지난 후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시댁 잘 다녀왔냐?”라고 묻고, 남편에게 “처가는 어땠냐?”라고 묻는다. 내 집은 집이고, 남편 집은 댁이다.


그래서 굳이 ‘시가’라는 단어를 고집하는 나를 사람들은 가끔 묘한 눈초리로 훑어본다. 이럴 때마다 어쭙잖게 남아 있는 ‘여필종부’ 사상에 열이 뻗친다. 특히 명절을 앞두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지난 명절에는 이런 감정을 남편에게 말했더니 생각지 못한 지적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나는 생각도 못 했는데, 자기 말 들어 보니 정말 이상하다. 왜 여자 집이랑 남자 집이랑 호칭이 그렇게 다르지?”

“바꿔 부를 말이 없다는 게 더 열 받아.”


호칭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던 중 남편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여보 집에 갈 때 어른들께 ‘님’을 붙여 말할게. 숙모님, 이모님 이렇게.”

“그런데 삼촌님은 이상하잖아.”

“그건 그러네.”


서로 말없이 있다가 남편이 또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럼 이건 어때? 내가 여보의 사촌동생들에게 처제님, 처남님이라고 부르는 거야. 그럼 여보가 내 사촌들에게 도련님 하는 것 열 안 받지?”

“그렇긴 한데 어색한 건 마찬가지다. 그냥 존칭 자체가 없으면 좋잖아.”

“없으면 제일 좋지. 그런데 어른들도 그렇게 생각하실까?”


어떻게 바꿔 부른다 한들 호칭의 글자가 아니라 사회 속에 깊숙이 각인된 남녀의 입장 차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못 견디게 괴로운 것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썼다고는 해도 시가족들을 싫어하거나 서운해하지는 않는다. 다들 오래도록 박혀 있는 문화 속에서 살아왔으니, ‘님’에 대한 반응이나 기대하는 호칭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한다. 게다가 시이모님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항상 밝은 얼굴로 우리 부부를 맞아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남편의 사촌동생들도 선량하고 유쾌한 성품을 갖고 있어 모두 호감형이다. 결코 시가족이 싫어서 존칭을 거부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아쉬움은 누구에게 탓할 수 없고, 특정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서 더욱 지독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호칭의 불균형이 없다면 시가족들을 더욱 내 가족과 내 사람으로 받아들이며 정감 있게 지내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렇다고 잔잔한 시가에 “저는 잘못된 호칭을 쓰고 싶지 않아요!”라고 돌을 던지는 모험은 무모하고 불가능하다. 나를 비롯한 다수의 며느리들은 굳이 문제를 일으키는 대신 덮고 넘어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소신을 밝혔다가 별난 애, 모난 며느리로 낙인찍히느니 침 한 번 꼴깍 삼키며 순간을 참아내는 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잘 형성된 가족에 결혼으로 인해 추가된 낯선 사람이 진정한 가족으로 속할 수 있으려면 ‘님’의 불편함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가족끼리 엄마님, 아빠님, 언니님, 동생님이라고 하지 않듯이 새 사람이 들어왔다면 ‘님’을 받는 대신 순연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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