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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Nov 22. 2018

집안일은 티가 안 난다고?

무보수 노동은 원래 티가 안 난다.

“집안일은 티가 안 난다니까!”

수도 없이 들은 말이다. 집안일이라는 게 열심히 해도 수고스러움이 드러나지 않고, 하루 이틀 지나면 공들여 치운 집이 다시 더러워진다는 말이다. 빨래를 해도 며칠 못 가서 다시 빨랫감은 쌓여있다. 적어도 하루에 두어 번 집에서 식사한다면 설거지야말로 끝없이 해내야 하는 집안일이다. 티가 안 난다고 불평하는 마음이 백분 이해된다. 


노력한 티가 군데군데 나는 게 집안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결혼한 친구들과 만나면 티 나지 않는 집안일에 대한 원성이 높다. 

“아침에 청소하면 뭐해. 저녁 되면 다시 더러운걸.”

“애들 등원시키고 집 치우면 하원하고 다시 어지럽힌다. 열심히 치워도 보람이 없어.”

“매일 반찬하고 요리하는데 금방 다 먹고, 다음날 또 요리하고. 밥은 매일 해도 열심히 한 티가 안 난다니까.”


노력한 만큼 티가 나지 않는 곳으로 아이가 있는 집이 대표 케이스란 것은 잘 알고 있다. 나는 자녀가 없지만, 결혼 전 갓 태어난 조카가 몇 달간 우리 집에 머무른 적이 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조카는 하루에 여러 차례 옷을 갈아입혀야 했고, 손수건은 수없이 소모됐다. 아기만을 위한 수건은 따로 세탁했다. 


먹는 것도 별로 없는 녀석의 생리현상은 어찌나 자주 이뤄지는지 기저귀가 하루가 다르게 쓰레기통을 채웠다. 아기의 존재감이 물씬 풍기던 시절이었다. 존재감이 강력했던 조카와 달리 엄마와 내가 치우는 집안은 깔끔한 순간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조카들이 다 큰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조카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는 날이면, 그날 저녁은 구석구석 치울 게 참 많았다. 올망졸망한 녀석들이 밖에서 껴 들어온 모래와 흙을 어쩜 이렇게 널리 널리 흩뿌렸는지, 뭘 밟은 채 누비고 다녔는지 집안 가득한 발자국, 소파 틈틈이 껴있는 과자 부스러기, 집안 물건의 위치가 바뀌어버린 것 하며 치우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이런 이유로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의 생활을 살펴보자면 어차피 티가 나지 않는 집안일을 상대 배우자가 해주길 기대하거나 최대한 미뤘다가 한다. 서로에게 미루다 다투거나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내 오랜 친구 중 한 명의 남편은 ‘집안일은 여자의 일’이라고 머릿속에 콱 박혀 있는 통에 친구는 맞벌이를 하고 있음에도 퇴근 후 저녁 내내 집안일에 바쁘다고 했다. 

“우리 남편은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 안 해. 둘 다 맞벌이라 힘든 건 마찬가진데, 굳이 싸우기 싫어서 내가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한 친구는 집을 어지르지 않고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아마 부부 중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거나, 전업주부일 경우 티가 나지 않는 집안일이 억울할 것이다. 회사를 다니면 통장에 꼬박 찍히는 월급이 있고, 야근이라도 하면 운 좋게 수당도 받는다. 일한 만큼 보상을 받아낸다는 것이다. 물론 수당을 주지 않는 회사가 여전히 많으니 이건 분명 운이 좋은 케이스다. 이와 달리 집안일은 운이 좋아 봐야 빨래가 빨리 마른다거나 미세먼지 없는 날 청소하는 정도 아닐까? 운이 좋아 보상을 잘 받아내는 집안일은 별로 없다. 


그런데 외람되게도 나는 집안일은 티가 난다고 생각한다. 이해하는 것처럼, 친구들의 넋두리를 받아주듯 써놓고 이게 무슨 입장 변화냐고 눈을 흘기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집안일은 티가 나는 것이라고 느끼며, 하고 있다. 


몹시 주관적인 ‘티’지만, 집안의 먼지를 깨끗이 치우고 물걸레질을 마친 바닥은 누워있기만 해도 행복하다. 온전히 나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은 마룻바닥이 내 등을 탄탄히 받쳐준다. 창틀에 낀 먼지를 닦아내면 창을 여닫을 때 망설임이 없어진다. 세탁조는 물때가 나오기 전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면 빨랫감이 늘 상쾌하게 몸을 씻을 수 있다. 


싱크대는 물때가 끼기 전 세제를 뿌려 닦아내고, 식탁은 수시로 닦는다. 그래야 누가 갑자기 집에 놀러 오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주방 식탁에서 함께 식사할 수 있다. 냉장고는 거창하게 날 잡아 청소할 필요 없이 하루에 한 칸씩 닦거나 칸막이만 꺼내 닦아도 평소에 냄새가 없다. 그렇게 틈틈이 치우고 정돈하면 집안일의 티가 난다. 깨끗하고 쾌적하고 사랑스러운 집으로써 티가 난다. 

보람되지 않다는 것도 집 밖의 기준으로 쟀기 때문에 결실이 없다고 느끼는 것 아닐까? 승진도 월급도 회사에서나 있지, 집안에서는 없는 가치다. 집안에서 승진은 의미가 없고, 월급이라는 명목으로 구분 지어 돈을 가질 수야 있지만 그건 그저 ‘용돈’ 일 것이다. 그래서 허탈하고 노력한 보상이 없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 대목에서 나는 ‘집’과 ‘집안일’에 대한 시선을 조금 다른 각도로 옮겨 봐도 좋을 듯싶다. 집안일이라는 건 나와 내 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동, 집은 가족의 안락함을 펼칠 수 있는 바탕이다. 집안에서 필요한 청소와 빨래, 요리와 설거지, 그밖에 수선과 보수는 억지로 해야 하는 순간 보람 없는 ‘무보수 노동’이 된다. 


물론 산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안다. 여전히 집안일을 ‘돕는’ 배우자 덕에 여자들이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1988년도 아니고, 1998년도 아니고 2018년을 살고 있음에도 집안일의 주 담당은 아내, 보조는 남편이 하는 구조가 여전히 많은 듯하다. 똑같은 의무교육을 받고, 같은 나라에서 비슷한 밥 먹고 산 사람들끼리 결혼했으면서 왜 여자는 집안일에 능숙한 존재고, 남자는 그것을 돕는 존재라고 분리해 생각하는 건지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다. 


가족 모임에서 남자는 거실에 있고, 주방에서 여자들만 종종거리며 일하는 풍경 역시 집안일의 분배가 기울어져서 그렇다. 간혹 남자들은 집안일에 서툴고 어색하니 뒤로 빠지라는 어르신들의 말씀도 틀리다. 자꾸 안 해봐서 서툰 거다. 서툴수록 자꾸 해보고, 함께 일하면서 익숙해져야 한쪽만 무보수 노동에 시달리지 않는다. 


나와 남편은 가사를 분담하고 4년째 잘 지키고 있다. 물론 결혼 초반의 내 남편도 자신은 가사를 ‘돕는’ 거라 생각했다. 주위에 자신은 집안일을 잘 돕는 편이라 자랑도 하고, 자꾸 내게 “나는 집안일 많이 돕는 남편이지?”, “내가 집안일 도와줘서 좋지?”라며 확인받고 싶어 한 적도 많다. 


게다가 남편은 집안일에 서툴고 실수가 잦아서 내가 다시 처리하게 만들곤 했다. 다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냥 분담하지 말까 생각도 들었지만 참고 기다렸다. 지금의 남편은 나보다 청소에 능숙하고 굳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집안일을 처리하게 됐다. 

명절 전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를 거의 소진하고 청소를 했어요.

세탁과 주방일은 내가 도맡아 하고 있는데, 주방 구석구석을 치우고 손보는 것도 포함이다. 그러니 필요한 식재료를 계획하고 정리하는 것, 상한 식재료가 없는지 점검하고, 주방가전을 청소하는 것도 내 몫이다. 언젠가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지인이 “어떻게 식탁 위에 아무것도 없을 수 있냐.”며 신기해한 적이 있다. 주방도구나 자잘한 먹거리가 늘 식탁 위에 올라가 있는 집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늘어놓지 않고 사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면 필요한 것만 사는 것이다. 식재료는 묶음이나 행사하는 상품을 저렴하게 사고 싶은 욕구를 꾹 누르고 필요한 만큼만 조금씩 산다. 저렴하게 많이 사서 상할까 봐 전전긍긍하느니 덜 저렴하더라도 조금만 사는 게 냉장고를 단출하게 만든다. 

수납용 가구는 품이 넉넉한 것으로 사되 언제든 교체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물건으로 장만한다. 지금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서랍장과 책장을 추가로 들였는데, 책의 양은 언제든 변할 수 있으니 원목이 아닌 MDF 가구로 샀다. 서랍장은 나중에 없앨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저렴한 플라스틱으로 사서 쓰다가 고장 나서 버린 다음, 오래 쓸 요량으로 튼튼한 나무 서랍장을 샀다.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도, 집안일을 통해 삶의 질을 적정선에서 유지하기도 쉽지만은 않다. 우리 모두에게 탑재된 ‘잘 살고 싶은’ 마음은 집안일을 티 나게 즐거운 일로 만들 수 있고, 하기 싫어 끝까지 버티게 만들 수도 있다. 가족 구성원들과 티 나게 즐거운 집안일을 할 수 있도록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끔히 치운 거실에서 반짝거리도록 닦은 하얀 다기에 마시는 커피 한 잔. 보탤 것 없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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