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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Nov 05. 2018

당신은 인싸야?

자발적 아싸에서 은근한 인싸가 되어간다

동네 산책 중에 남편이 물었다. 

“여보는 인싸야?”

“어? 인싸?”

질문이 너무 뜬금없었지만 남편이 ‘인싸’라는 용어를 쓰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박장대소했다. 


“아니,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들었어?”

“나도 다 알아! 인싸가 뭔지 알아!”

내게 자랑하듯 인싸에 대해 설명하는 남편은 학교에 갓 입학한 학생처럼 들떠 보였다. 


사실 나와 남편은 ‘자발적 아싸’에 가까운 성향이었다. 우리는 연애 전부터 이 점을 간파했다. 서로의 대학시절을 이야기하던 중 내가 간파한 남편은 선배라고 무조건 고개 숙이지 않고, 교수님을 어려워하지 않고 동등한 대화를 요구하는 등 둥글둥글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리고 부어라 마셔라 술판에 참여하는 대신 학생 시절이 아니면 시간 들여 읽기 어려운 책을 읽거나 취미 활동에 집중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대학 동기들과 두루 지내긴 했지만 마냥 재밌어서 잘 지낸 건 아니었다. 일단 아르바이트가 바쁘기도 했고, 남들이 말하는 ‘캠퍼스 생활’보다 학점과 생활비가 중요했기 때문에 동기나 선배들과의 자리를 적당히 조절해가며 적정선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정도였다. 마냥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에 다니며 여가생활을 보내는 동기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도 큰 요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연애 전부터 이런 점이 잘 통했다. 마냥 친하게,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잘 어울리는 ‘인싸’보다 적당히 거리감을 유지하며 인간관계를 조절하는 ‘자발적 아싸’의 기질을 공유했기에 서로의 구석구석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대신 결혼 후 우리는 서로에게만큼은 확고한 인싸였다. 그런 관계는 우리 부부에만 해당했고, 그 외 회사에서나 사회생활에서는 여전히 적정선을 유지하는 부류였다. 그랬던 남편이 작년부터 회사에서 소소한 유행어를 배워 와서 내게 써먹곤 했다. 

“여보, 따아가 뭔지 알아?”

“따뜻한 아메리카노.”

“여보는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이런 건 기본이지.”

“뜨아 아니고 따아라고 해야 된대. 오늘 회사 후배들이 알려줬어.”


텔레비전도 안 보고 SNS에서도 뉴스만 보는 남편은 이런 유행어를 신기해했다. 당시 남편은 회사에서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과 식사 후 매일 티타임을 가졌는데, 매일 하나씩 유행어를 배워왔다. 


어느 날은 저녁을 차려줬더니 밥을 먹으면서 남편이 유행어를 활용했다. 

“여보, 이거 엠제이티(MJT)야.”

“엠제이티가 뭐야?”

“진짜 맛있다는 뜻이야.”

이날은 유행어를 배우긴 배웠는데 살짝 부실하게 배워온 모양이었다. 

“여보, 엠제이티가 아니라 제이엠티(JMT)겠지. 존맛탱.”

“아, 맞다! 제이엠티!”


어느 날은 이런 질문도 했다. 

“여보는 인싸 용어 알아?”

“여보가 회사에서 배워오는 그런 게 인싸 용어야.”

“정말? 몰랐어. 여보는 그런 걸 어떻게 다 알아?”


눈을 반짝이며 어설프게 인싸 용어로 말을 거는 남편이 사뭇 귀여웠다. ‘인싸 용어’라 불리는 줄임말을 배워오는 남편을 보면 재밌기도 하고, 아싸를 자처했던 우리의 젊은 나날이 먼 추억처럼 그려지기도 했다. 


그랬던 남편이 대뜸 내게 질문을 한 것이다. 

“여보는 인싸야?”

아, 여기서 나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내가 인사이더일까? 그런 용어를 몇 번 썼다 해도 나 자신이 인싸인지 아직도 아싸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뭐라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글쎄 생각 안 해봤는데. 음, 그런데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어떤 유형인지.”

용어 중에 ‘닝바닝’이란 말이 있듯, 사람마다 대하는 방식이 달라져서일까. 내가 어떤 유형인지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일을 할 때는 곧잘 말도 걸고 시끌벅적하게 대화도 잘 하는 편이니 인싸 같은데, 또 친척들이나 데면데면한 친구들 앞에선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책모임에서는 리더를 맡고 있고 분위기를 끌어가는 면이 있으니 인싸 같기도 하지만, 대학 동기들과의 그 불편한 친분이나 어색하게 남아있는 관계들을 생각하자면 여전히 아싸 같기도 했다. 그런 나를 남편은 간편하게 정의했다. 

“여보는 인싸야.”

“왜 그렇게 생각해?”

“여보는 인싸 용어를 많이 알잖아.”

아니, 이렇게 간단할 수가. 


“그렇게 치자면 여보도 인싸 용어 많이 쓰잖아. 회사에서 엄청 배워오잖아.”

그러자 어깨에 힘이 듬뿍 들어간 남편이 자랑스레 말한다.

“나는 핵인싸야!”


당당한 남편의 ‘핵인싸’ 선언은 최근 들어본 말 중 최고 웃겼다. 

“그래, 여보온탑이다!”

그렇게 즐거운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던 나와 남편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갖고 싶은 역할이 달라진 걸까. 어쩌면 사회 속에서 자신의 구역과 입장을 늘 확인하는 존재임을 깨달은 걸까. 자발적 아싸였던 우리 부부는 은근한 인싸가 됐거나, 혹은 인싸인 듯 생각하며 맘 편히 살고픈 지도 모르겠다. 

인싸면 어떻고, 아싸면 뭐 어떤가. 모두가 인싸라면 세상은 너무나 피곤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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