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되자마자 핫했던 <열두 발자국>
도서관에 예약해놓을 때만 해도 내 순서가 30번째라는 문구를 보고 기함했기에 내 차례가 언젠가 올 거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예약한 사실 조차 잊고 전자책을 받아놓은 시점에서 기막히게도 도서관에서 예약 도서를 데려가라는 문자가 왔다. 그렇게 데려온 열두 발자국을 읽으며 챕터마다 높은 만족감과 공감으로 풍성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책에는 한 번쯤 고민해본, 궁금했던 이야기들이 술술 나온다. 결핍으로 인한 욕망과 성취에 있어 ‘결핍’은 부정적인가 긍정적인가, 미신을 믿지 않는다면서 왜 나는 올해가 돼지띠의 해라고 좋아했는가(내가 돼지띠거든요), 스타트업을 추구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은 안정과 모험 중 무엇을 추구할까(사실 투자를 받아 운영되는 스타트업의 경우 결코 모험을 추구한다고 볼 수 없기에) 등등 평소 궁금해 한 이야기들이 재밌게 풀이된 책이었다.
또 한편으로 매우 개운했던 점은 이런 고민과 호기심에 있어 누군가 답변을 줄 때 과학적 근거가 있길 바라 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너의 결핍이 성취로 이어졌으니 그 결핍마저 사랑해야 한다.”라고 내게 조언했다 치자. 그런 조언은 몹시 주관적이기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순간에 왜 결핍마저 사랑해야 하는지 과학적 근거가 있다면, 실험 결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그런 감정과 뇌의 구동방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이 시대와 이런 책이 반갑기 그지없다.
책을 읽으며 평소 내가 가진 고민과 궁금증이 하나씩 풀리는 쾌감을 느꼈다. 또 한편으로는 뻔하디 뻔한 삶을 이어가는 나의 단면을 만나며 뜨끔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런 부분이다.
습관이라는 안락함 속에서는 평화롭고 예측 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요. 반면 습관의 틀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버겁습니다. 때문에 인생의 리셋도 어렵습니다. 새로고침을 신경과학적으로 해석해보면 나쁜 습관, 뻔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나와 다른 분야에 있는, 다른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을 만날 가능성은 점점 적어집니다. 불편함을 견디면서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즐기면서 살지 않으면, 내 삶에 새로운 생각이 유입되는 일들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새로고침은 점점 어려워집니다. 나쁜 습관, 틀에 박힌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삶을 새롭게 뒤바꿀 수 있는 신선한 자극이 있는 곳으로 먼저 여러분이 움직여야 합니다.
여기서 나는 오랜 내 친구와의 관계를 떠올렸다. 16년, 이제 17년째 접어든 내 절친과 요즘 들어 자꾸 대화가 먹먹해짐을 느꼈다. 친구가 오랫동안 보수적인 분위기의 직장에서 일한 영향일까. 누구보다 오픈 마인드와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내 친구가 언제부턴가 ‘꼰대’ 성향을 보일 때마다 자꾸 숨이 막혔다. 내가 이러쿵저러쿵 잔소리해서 바뀔 성향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때마다 모른 체하고 다른 말로 화제 전환을 하거나, 대꾸를 안 하는 식으로 순간을 모면한 나의 나쁜 습관들. 이 숨 막히는 대화가 오로지 친구의 변화한 성향 탓이기만 할까? 나는 앞으로 친구와의 원활한 대화와 우정의 새로고침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할 기회를 만날 수 있었다.
이밖에도 열 두 챕터를 관통하며 마음속의 질문들이 하나씩 해결됐고, 마트로슈카처럼 겉면의 인형을 하나씩 깨더니 책을 덮을 때는 마지막 인형을 만난 단계처럼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혁명은 이상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열정적인 실천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입니다.
열두 발자국을 따라 걸으며 내린 결론은(마지막 챕터는 잘 모르겠다.)
내 안에 부족한 면을 극복하고 멋진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다각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정리해봤다.
저자는 계속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라고 한다. 결핍은 무엇인지, 나는 어디에서 누구와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빨간 펜으로 내 이름을 쓸 수 있는지 등등 우리에겐 스스로를 탐구하고 직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누구보다 독보적이고 소중한 존재로서 보다 성숙할 수 있는 순간을 만나게 될 거라 믿는다.
+ 실은 제가 몇 년 전에 궁금해서 제 이름을 빨간 펜으로 네 번 써봤는데요. 저 안 죽었어요.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