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공녀 강주룡, 박서련

선택하며 살기 위해 용기를 낸 주룡은 여전히 살아있다.

by 귀리밥

그리 두껍지 않은 책 한 권을 손에 쥐었다. 요즘은 표지가 아담한 대신 두꺼운 책이 많이 나오는 듯한데, 이 책은 적당히 넓적하지만 두께가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공부할 때 쓰는 교본 느낌이랄까. 다음 독서모임에서 함께 이야기 나눌 지정도서로 연휴 마지막 날부터 차근히 읽기 시작했다.


영예로운 상을 받은 이 소설은 실존했던 고무 공장 노동자 강주룡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시작은 주룡이 시집가는 날의 풍경과 대화로 상상을 연다. 그 와중에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북 사투리가 줄줄 이어진다. 작가는 이렇게 실감 나는 사투리를 어떻게 익히고 글로 옮긴 걸까? 이북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몸에 들어갔다 나온 양 자연스러운 그 대화들이 실감 나고 기가 차다.


그 이북 사투리를 들어본 듯한 나의 연유는 북에서 전쟁 통에 내려와 터를 잡은 친할머니 영향이 있어서다. 유독 얼굴이 검고 90년대에 돌아가실 때까지도 늘 머리에 쪽을 지고 다니던 분이셨다. 남쪽에서 수십 년을 살면서도 고쳐지지 않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고치지 않았을 할머니의 이북 사투리가 주룡이 내뱉는 말을 머릿속으로 옮겨주었다.


시집가는 주룡은 그리 넉넉지 못한 집안의 노처녀였다. 예쁘지 않은 박색이라 마음에 인이 박히고, 툭툭 내뱉는 말이 곧고 담백한 심성을 솔솔 드러낸다. 그런데 하필 시집간 남편을 너무 사랑하고 말았다. 어리고 고운 남편을 너무 사랑해 함께 독립군이 된다. 독립군이 뭔지도 모르면서 남편을 그저 따라가고야 만다.


주룡은 공을 독차지하고 이름을 떨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전빈이 언젠가 했던 말처럼 주룡이 독립을 원하는 것은 제 임자 때문이다. 당신이 좋아서, 당신이 독립된 나라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


독립군 부대에서 주룡은 여자라는 이유로 부엌데기 노릇이나 시키는 동지들에게 숨김없이 의견을 드러내고, 독립운동에 가담한다. 그것은 일제로부터 나라를 구하겠다는 멋진 사상 대신 제 남편이 독립한 나라에서 살길 바라는 애틋한 마음과 그저 남편을 믿고 따르는 것으로 온전히 사랑하려는 정성이었다.


한 나라가 한 나라에 먹혔을 때, 먹힌 나라의 사람들은 아득한 암실과 같은 시대를 살아야 한다. 그 시대는 2019년을 사는 내가 결코 갈 수 없고 가고 싶지도 않은 시대다. 눈앞의 남편을 몹시 사랑하기에 끝까지 가고픈 주룡은 일제 강점기라는 상황이 떠밀고 가는 비극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건 주체적으로 살게 될 주룡의 생이 제대로 시작하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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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먼저 저승으로 떠나보내고 시가와 친정에서 모두 외면당한 주룡은 평양으로 흘러나와 고무 공장의 노동자가 된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시집을 갔던 주룡이 남편을 정면으로 사랑하면서 남편과 함께 가는 길을 택하고, 다시 노인에게 시집보내려는 친정과 연을 끊고 뛰쳐나와 공장 노동자가 된 것이다.


주룡 씨, 사람은 소진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아끼시오. 아껴야 제때에, 쓸 곳에 쓸 수 있습니다.


시집간 것을 제외하고는 삶의 매 순간을 선택한 주룡은 죽음도 마다하지 않겠다며 노동조합 일에 앞장선다. 제대로 학업을 마치지 못했고 글이나 겨우 읽는 그녀는 노동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염치없이 임금을 깎는 공장주에 대항하며 투쟁을 벌인다. 이때 비폭력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가차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당시 경찰의 모습은 언젠가 우리가 뉴스에서 봤던 장면과 흡사하다. 결국 경찰의 폭력에 무너진 주룡은 광목천으로 목매 죽으려던 것에 실패하고, 을밀대 지붕에 올라 아사 투쟁을 선언한다.


달헌은 제 머릿속에서조차 말을 듣지 않는 그 여자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본다. 하늘로 올라가는 길처럼 빛나는 광목을 주룡은 단단히 붙든다. 사실은 두려워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이면서, 사실은 살고 싶어서, 그 누구보다도 더 살고 싶어서 활활 불타고 있으면서.
지붕 위에서 잠든 그 여자를 향해 누군가가 외친다.
저기 사람이 있다.


특출할 것 없이 집에서 살림을 거들며 눅눅히 살던 주룡이 남편을 따라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노동자를 대표해 파업과 투쟁을 이끈 변화에는 ‘선택’이 작용했다.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세, 득이 있든 없든 옳다 싶은 쪽을 고르며 삶을 활활 불태웠다.


유교가 점령한 구한말의 시대, 언감생심 상상도 할 수 없던 여성의 선택을 독점하기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어쨌든 나는 주룡이 죽었다 생각지 않는다. 지금도 주룡은 참 많다. 제 삶 하나 선택하는 게 그리 어렵고, 책임지고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 많은 주룡은 현시대에도 너무 많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사진 몇 장이 곁들여 있다. 을밀대 위에 앉아있는 주룡의 모습이다. 검은색과 흰색의 음영으로 남아있는 사진 속 주룡은 볼이 푹 꺼져 들어간 얼굴인데, 흐릿한 가운데에도 짙은 고단함이 엿보인다. 노동운동과 같이 권리를 찾아가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가진 모든 즙을 짜버린다고 느낀다. 수일을 굶고 잠도 못 자고 을밀대에 올라가 투쟁을 하던 사진 속 주룡은 형형한 눈을 드러내고, 우리에게 잊지 못할 말을 세차게 남긴다.


앞으로 너는 네가 바라는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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