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귀리밥 Mar 08. 2019

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정말 궁금했던 소재였다. 처음에는 생소했던 혐오범죄와 증오범죄 소식이 끊임없이 전달되는 시대를 살기에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혹여나 즐겨쓰는 말 중 혐오표현에 대해 내가 놓치는 부분이 있다면 자성하고도 싶었다. 그래서 독서모임의 지정도서 중 이 책을 추천했다. 


책의 시작부분에서 혐오표현을 설명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내 안에서 분명히 정의되지 않았던 혐오표현을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혐오표현이라는 모난 돌의 정착지인 소수자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혐오표현을 통해 사람이 얼마나 상처 받고 피해를 입을 것인가에 대한 계산적인 관찰이 아니라 혐오표현이 소수자의 자유에 주는 영향, 그것이 사람의 영혼에 주는 해악을 생각해볼 계기였던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문제, 특히 소수자의 문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란이 '자유 확대'가 아니라 '자유 축소'로 귀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혐오표현을 듣거나 누군가 타깃이 되는 상황이 발견됐을 때의 내 행동-침묵 혹은 대충 뭉개고 넘어가는 행동을 집어내는 구절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자들은 침묵을 선택하곤 한다. 웃는 척하면서 넘어가기도 하고, 다른 말로 화제를 돌리기도 한다. 


뜨악. 엄청 찔렸다. 

하지만 이때의 침묵은 자발적이라기보다는 강요된 것이다. 사회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런데 이러한 침묵이 지속되다 보면 점차 그런 차별적 언사들이 정당화되고 고착화된다. 사실로 굳어지는 것이다. 


사회생활하면서 성희롱 한 번 안 당한 여자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그런 게 당연해지는 이 상황의 시초에

내 침묵과 웃어넘김이 주는 영향을 난 한 번이라도 제대로 지적한 적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선배들의 우스갯소리에 화가 난 적이 많았지만 오로지 선배라는 이유로, 내가 모셔야 하는 사수이기 때문에 제대로 지적하지 않고 못 들은 척 한 날이 얼마나 많았는지. 

또한 그런 침묵이 나의 후임이나 후배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선후배가 아니라도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혐오표현들을 마주했으며 그때마다 다투기 싫어서 모른 척 했는지.

곰곰이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런 입장에서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 아프게 읽었다. 


결국 이 책의 결론은 대항 표현으로 맞서라는 이야기였다. 


차별을 선동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중립'을 표방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책임'있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한 대항 표현을 시민들만의 몫이 아니라 국가와 법과 제도의 몫이 충실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항 표현이란 말은 너무나 모호하고 꿈같은 말 같아서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금지하는 규제의 힘을 믿는다. 형성적 규제의 힘은 장기적으로 훨씬 크겠지만 당장의 고충을 겪는

소수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없기에 단기적으로 금지하는 규제를 강화시키는 한편 장기적 계획으로 지지하는 규제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끝으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을 후벼 팠던 문구가 있다면

표현의 자유는 원래 소수자의 권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라는 부분이었다. 


소수는 특정인이 아니다. 누구든 소수가 될 수 있고, 혐오표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오늘의 뼈아픈 독서가 훗날 "그 시절엔 그랬지만 현재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회상할 수 있길 바라본다. 


+ 이북으로 읽는 바람에 책 사진이 없었어요. 메인의 사진은 출판사 어크로스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