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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Apr 02. 2019

저는 늙은 아미입니다

열렬히 좋아하려면 허들을 넘어야 한다

“나, 아미가 될 거야!”

저녁 식탁에서 내 단단한 마음을 남편에게 선포했다. 눈이 동그래진 남편이 반박했다.

“여보 올해 서른일곱 살이야. 무슨 서른일곱에 팬클럽이야?”

“서른일곱이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해도 가만히 얌전한 척, 점잖은 척, 체통 지켜야 하는 나이는 아니잖아.”

나의 대답에 남편은 싫은 소리를 주워 삼기는 표정이었다. 내키진 않지만 개인의 취향이란 아무리 부부라도 존중해야 할 소도(蘇塗)와 같은 영역이다.      

태태 사랑합니다♡ 메인사진과 이 사진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트위터에서 가져왔어요.

사랑에 빠진 연유를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겠다. 축약하자면 2018 MMA 무대에서 시작됐다. 방탄소년단의 무대를 보고 차마 발견 못 한 웅덩이에 발이 쑥 빠진 것처럼 빠져들었다. 그리고 서서히 소뼈에서 설렁탕 설설 우러나듯 애정과 관심이 차올랐다. 그렇게 차오르는 동안 뷔(V)에게 특별히 빠져들었고, 뒤늦게 발견한 덕에 지난 몇 년간의 음원과 영상을 찾아보며 나는 완전히 방탄소년단에 ‘입덕’했다.    

  

우리 만남은 수학의 공식 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 <DNA>     


그런데 영상을 볼 때마다 멤버들이 부르는 이름이 있었다. 바로 ‘아미’였다. 자꾸 아미 고마워요, 아미 사랑해요, 이런 멘트들을 외치는데 누군지 모를 아미라는 분이 너무 부러워졌다.

‘아미? 군인? 병무청 홍보대사 같은 건가?’


그게 뭔지 몰라서 일단 포털에 검색했다. 웬 여가수가 나온다. 뭔가 미심쩍다. 사전을 보니 누에나방의 모양처럼 아름다운 미인의 눈썹이란다. 이것도 미심쩍다. 안 되겠다 싶어 구글에 검색했더니 제대로 나온다.

‘방탄소년단의 공식 팬클럽 이름’

구글 검색 화면

그래서 멤버들이 그토록 무대에서 ‘아미 사랑해요’를 외쳤던가. 아미의 존재를 안 이후 몇 번 더 영상을 찾아보다가 그들이 사랑한다는 아미가 돼야겠다는 마음에 담금질이 시작됐다. 나도 아미가 돼서 ‘아미 사랑해요!’를 당당히 듣겠노라. 반드시 아미가 되겠다고.      


일단 아미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즉시 의문이 붙었다.

‘그런데 아미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런 걸 가입해 본 게 너무 오래전이라 방법이든 정보든 아는 게 너무 없었다. 이럴 때마다 할 줄 아는 게 포털 검색뿐이다. 검색하니 현재 활동하는 아미는 5기이고, 앞으로 6기를 모집하는 모양이다. 관련 글들을 읽어보는데 자꾸 이상한 단어가 보인다.

‘공카? 아미밤? 방탄밤? 이게 뭐야…….’

수분밤 같은 건 알겠는데 무슨 밤인지 모르겠다.

‘먹는 밤은 분명 아닐 텐데, 밤에 하는 축제 같은 건가?’     

이게 아닌 건 나도 확실히 알았다.

역시 할 줄 아는 게 검색이니 열심히 검색해본다. 입에서 “끙”소리가 절로 나오도록 검색해보니 그 용어들이 뭘 말하는지 조금씩 파악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방탄소년단의 SNS는 트위터였다. 어떤 할인 혜택을 준다한들, 어떤 환상의 이벤트가 있다한들 앱 깔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나지만 그들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싶다는 욕망에 순순히 트위터 앱을 깔고 그들 계정을 팔로우했다.      


널 만나고 내가 책이란 걸 안 걸까 아님 니가 내 책장을 넘긴 걸까 <Her>     


그다음 해결할 것은 ‘공카’, 즉 공식 카페였다. 공카라는 말도 검색해서 알았으니 말 다했다. 아미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공카를 찾는 데까지 2시간이 걸렸다. 다음에 있는 방탄소년단의 공카에 입장하고 가입을 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볼 수 있는 게시물이 별로 없다. 외계어처럼 생긴 게시판이 주르륵 나열돼 있는데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러다 내 눈을 사로잡는 게시판 이름이 있었다.

‘등업 신청_정회원(3월 5주)’     


자세히 읽어보니 매주 주말 정해진 시간에만 등업 신청을 받는데, 신청글 하나 쓴다고 될 일이 아니라 시험을 쳐야 등업이 될 수 있었다. 눈을 의심했다. 설마, 시험을 쳐야 정회원이 된다고?     

제발, 시험만은 ;ㅁ;

문제를 읽어봤다. 대강 문제는 ‘무슨 무슨 영상의 무슨 행동을 하는 멤버의 생년월일에서 무슨 옷을 입은 멤버의 생년월일을 뺀 숫자는 몇?’ 같은 거였다. 그런 문제가 여러 개 있었고, 마지막에 조건에 맞춰 스트리밍을 캡처해 넣는 것까지 완료해야 했다.      


문제를 읽어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여기까지 들어오는 데만 해도 몇 시간을 걸려 겨우 왔는데 나보고 이걸 풀라고? 단어 하나하나 검색해가며 해석하는 마당에 나보고 문제를 풀라고? 설움이 폭포수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별 수 없었다. 아미가 되려면 필요한 정보를 공카에서 받아야 했고, 멤버들이 쓰는 메시지도 여기서 볼 수 있고, 어쨌든 공카에 항복한 자로서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나는 문제풀이에 돌입했다.      


솔직히 문제의 난이도는 ‘특상’이었다. 정말 어렵다. 문제에 쓰여있는 영상을 하나씩 찾아봤다. 이미 입덕 단계에서 멜론, 유튜브, 브이 앱 등으로 영상을 숱하게 봐왔기 때문에 검색하면 영상은 뚝딱 나왔다. 대신 정답을 찾아야 하니 정신을 가다듬고 집중해서 봐야 했다. 하나씩 문제를 풀어 답을 메모해놓고, 관련 영상도 한 번씩 더 보고, 다시 문제를 풀고, 영상을 보고, 스트리밍 조건에 맞춰 캡처를 하고, 그러다 보니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특히 스트리밍 캡처는 조건이 까다로워서 가이드를 읽다가 울고 싶어 졌다. 울먹거리며 마지막 캡처까지 넣어서 신청 버튼을 눌렀다.

울면서 정회원 신청 완료

내면은 하얗게 불태운 듯 재가 날렸고, 문제풀이 내내 하도 집중해서 어깨가 결리고 눈이 침침했다. ‘팬질’ 좀 하겠다고 시험 쳐서 카페 가입하고 문제 푸느라 몸살 올 지경까지 이르다니. 무사히 신청은 했다만 메모게시판을 보니 시험 6번 떨어진 사람도 있고 4번 떨어진 사람도 있고, 재수생이 다수 있었다. 신청만 한다고 술술 풀릴 일이 아닌듯했다.      


I’m feeling just fine fine fine <I’m fine>     


지금은 정회원 합격(?)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이후 틈틈이 모르는 용어를 검색하고, 새 소식이 없나 기웃거리며 아미 될 준비 중이다. 6월에 팬미팅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아미 5기 대상이다. 아미는 모집 공지가 뜨면 정해진 기간에만 가입할 수 있다. 그러니 내가 공카 정회원이 되고 아미 6기 티켓을 구입한들 이미 갈 수 없는 팬미팅이다. 좀 더 일찍 좋아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너는 내 삶에 다시 뜬 햇빛, 어린 시절 내 꿈들의 재림 <Euphoria>     


이렇게 방탄소년단을 향한 정보를 쌓아갈 때마다 어쩔 수 없는 허들을 느낀다. 아미밤이든, 아미피디아든 뭐든 사실 알고 나면 별 게 아닌데 조금 늦게 시작한 탓에 용어 하나 알아채는 데 시간이 걸리고 또 거기에 진입하는 데 망설임이 부푼다. 10대, 20대에게는 자연스럽고 쉬운 용어와 절차들일까?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와 더불어 매번 퀘스트를 깨야 하는 피로가 달라붙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조금 늦은 나이, 늦은 입덕이지만 열렬히 좋아하려면 허들을 넘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열심히 좋아하기 위해 기꺼이 노력하는 건 그 대상이 연예인이든 곁의 사람이든 똑같이 아름답다. 열심히 좋아하는 마음은 부끄러울 게 없다. 열심히 좋아하고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아껴주는 경험이다. 또한 마음이 가는 대로 감정을 표현하고, 좋아하는 대상을 향해 행동하는 이 순간들은 서른일곱을 살아가는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솔직함이라 믿는다.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자. 니가 내린 잣대들은 너에게 더 엄격하다는 걸. <Answer:Love Myself>    

 

아미 6기 모집 공지는 아직 없다. 며칠 후 방탄소년단이 컴백을 하니 이후 공지가 뜰 거라 예상만 한다. 여차저차 6기에 가입한다고 끝이 아니다. 또 허들이 있을 것이다. 팬미팅이든 콘서트든 무수히 모여들 인파 속에서 나는 한없이 나이 든 사람, 누군가 ‘아줌마’라 칭해도 이상할 게 없을 그런 사람으로 어색하게 끼어들 것이다. 가입한 이후에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무엇을 하면 좋을지 알아보느라 또 끙끙거려야 하고, 결국 그곳도 커뮤니티기에 혹여나 만날 또래들과 말을 섞어가며 연대를 만들어야 방탄소년단의 무대를 보러 가는 데 덜 어려울 것이다.



아직 가입 전이지만 실천을 앞둔 마지막 클릭 하나 남겨둔 느낌으로 나는 이미 ‘아미’다. 난감한 허들을 가득 쌓아둔 ‘늙은 아미’다. 남편 말대로 나는 서른일곱 살. 또래처럼 원숙한 취미를 즐기고, 늘 단정한 차림새를 하고,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비슷하게 사는 모양새를 내야 서른일곱 살답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아이돌을 따르겠다고 선언한 내가 시간이 많이 흘러 혹여나 후회하게 될까? 망설였던 찰나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다 내 별자리다. 망설인 나도, 선택한 나도 솔직하게 살고 있는 현재의 ‘나’다.      


내 실수로 생긴 흉터까지 다 내 별자린데. <Answer:Love Myself>     


+ 30대 아미분들, 저랑 같이 6기 활동해요:)

+ 그래도 어디선가 아줌마 소릴 들으면 좀 울 것 같아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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