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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Dec 12. 2018

방관자의 변명

때려야만 폭력은 아니다.

지난 8월쯤 공지영 작가의 <해리>를 읽다가 쓴 글이다.


그날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아이를 떠올리느라 저녁 내내 마음이 부산했다. 왜 하필 한가한 늦여름에 그 아이가 자꾸 생각이 났을까? 아마 읽고 있던 소설 때문이리라. 유명 작가의 소설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어찌나 몰입이 잘 되던지 어젯밤 읽기 시작해 1권을 해치우고 2권에 들어간 찰나였다. 소설 속 불편한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뜬금없이 나는 그 아이가 자꾸 떠올랐다.

‘이름이 뭐였더라.’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주제에 저녁 내내 이름을 찾느라 끙끙거렸다. 중학교 때는 반 번호를 키 순서로 매기더니, 고등학교에서는 성의 가나다순으로 학생들의 번호를 매겼다. 그 애는 나와 같은 성씨였다. 드디어 기억이 났다. 그 아이의 이름은 윤희였다. 실명을 거론해도 되는 건지 고민이 좀 되지만 흔한 이름이기에 솔직하게 적기로 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번호순으로 자리에 앉았다. 내 옆에 앉은 나와 성이 같은 윤희는 한 눈에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로 예뻤다. 내가 입으면 밋밋한 교복이 윤희가 입으면 정말 예쁜 정장이었다. 같은 단발머리인데 그 애는 항상 드라이로 동그랗게 머리를 잘 말아 넣었다. 눈썹도, 속눈썹도 짙은 데다 쌍꺼풀이 커서 얼굴이 인형처럼 예뻤다. 나는 부끄러움도 없이 처음 만난 날부터 윤희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넌 예뻐서 좋겠다. 나도 너처럼 눈 크고 머리숱 많았으면 좋겠다.”

“아니야. 너도 예뻐. 나는 내 눈썹 숯덩이 같아서 싫은데 뭘.”


잘 웃기도 하고, 예쁘기까지 한 윤희는 입학성적이 좋았고 1학기 부반장이 됐다. 걸핏하면 수업시간에 졸고 매점에만 정신 팔린 나와 달리 윤희는 노트 필기를 열심히 했고, 내가 수학시간에 헤매고 있으면 옆에서 짚어주곤 했다. 옆자리에 앉다보니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그 애의 얼굴에서 자주 눈에 띄던 그 점이 눈물점이라는 사실을, 그 점을 가진 사람은 슬픈 인생을 살게 된다며 모호한 말을 남기던 윤희의 마음을 나는 아주 늦게야 깨달았다.


어느 날 윤희가 수업을 마치고 노래방을 가자고 했다. 자신의 중학교 시절 친구가 이 근처로 오는데 함께 놀자는 거였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 학교와 거리가 먼 부평에서 온 윤희의 친구는 한눈에도 튀는 외모와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셋이 노래방에 들어가기 전 윤희가 나를 붙잡았다.

“잠깐만. 한 대만 피고 가자.”

노래방 입구 옆 좁은 골목으로 총총히 걸어 들어간 윤희와 친구는 담배를 하나씩 물었다.

“너도 할래?”

“됐어.”

딱히 모범생이라거나 학칙을 준수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하루 두 갑씩 피우시던 아빠를 어릴 적부터 봐온 탓에 담배라면 몸서리치게 싫었을 뿐이다. 다만 두 아이가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던 것은 어설프게 담배를 쥔 윤희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예뻐서였다. 담배를 피우는 게 어울리는 사람도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 뒤로도 별 일은 없었다. 내게 담배를 강권하지 않았고, 비행의 길로 끄는 일도 없었다. 우리는 평소와 같이 쉬는 시간마다 떠들었고, 수업시간에 숙면을 취하는 나를 윤희가 자주 깨웠고, 친해진 덕에 하교 전 윤희가 가끔 내 머리에 고데기를 해줬다. 걱정이 많았던 내 고등학교 생활의 초입은 꽤나 괜찮게 흐르고 있었다.


이제 생각해 보면 괜찮았던 건 나뿐이었다. 윤희에게는 굉장한 절망과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 역시 평탄치 않은 가정환경에 처해 있긴 했어도 학교생활은 별개라고 생각했다. 집에 들어가는 게 죽도록 싫어서 거리를 배회할지언정 학교는 일찍 가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고 싶었다. 윤희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나 못지않게 집에 가는 게 죽도록 싫었고, 나와 달리 학교에서 아픈 마음을 감추고 웃으며 지내기에 연약했던 모양이다.


윤희의 오빠는 수시로 때린다고 들었다. 엄마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고, 아빠는 한 번씩 기절할 정도로 때린다고 했다. 형편이 넉넉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 아이의 소지품은 늘 간결했고, 유행하는 수제화나 가방도 없었다. 그저 어여쁜 얼굴과 사근사근한 말투가 넘쳤을 뿐이다.


어느 날부턴가 그 애는 학교에서 웃으며 지내는 게 어려웠나보다. 수업시간에 멍하니 앉아있고, 괴팍하기로 소문난 선생님의 수업시간에 보란 듯이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재잘거리는 목소리는 사라지고, 내게 수학을 짚어주던 다정함도 잦아들었다. 말없이 교실에 들어와 수업을 마치면 말없이 나갔다.


나는 조금 외로웠지만 다른 친구들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너만 내 친구가 아니다.’라는 모자란 생각을 하는 대신 그 애에게 더욱 다정해야 했다. 이제 생각하면 그때의 내가 얼마나 엉성한 방관자였는지 후회가 막급이다.


위태롭던 나날 중에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어느 과목인지, 어느 선생님이었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오로지 기억나는 건 격하게 뺨을 맞던 윤희의 얼굴이다. 남자선생님이었다. 수업 시간에 태도가 좋지 않다며 윤희를 수차례 때렸다. 그 와중에 울지 않고 고개를 숙이거나 겁내지도 않은 모습 때문에 몇 대 더 맞은 것 같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무엇을 해야 했을까. 곁에 다가가 눈치 보며 위로를 할 걸 그랬나, 끝나고 노래방을 쏜다고 해볼까, 편지를 하나 써줄까. 그렇게 시원한 방법 없이 옆에 앉은 채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때 뭐라도 할 걸 그랬다. 쌀쌀한 반응이 올 것을 감안하고라도 뭐라도 해야 했다.


그날 그 애는 가출을 했다. 학교에 계속 나오지 않았다. 윤희를 때린 선생님이 역겨웠다. 집에서 걸핏하면 때린다던 그 애의 가족도 몸서리치게 싫었다. 공부 잘 하던 윤희라면 명문대에 입학하고 멋진 남자와 연애를 하고 어딜 가나 사랑받으며 살 수 있을 텐데, 폭력을 가한 이들 때문에 그 애의 미래가 엉망이 된 것 같았다.

내 옆자리는 오랫동안 비어있었다. 어느 날 학급일지를 들고 교무실에 간 나는 윤희를 봤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혈색도 누렇게 변한 윤희는 담임 선생님 곁에서 뭔가 쓰고 있었다. 자퇴원이었다. 자퇴원을 쓰러 온 윤희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세상에 잔뜩 화가 나 보였다. 살도 찐 것 같았다. 윤희가 나간 후 선생님은 내게 혼잣말처럼 이야기했다. 선생님 말로는 윤희가 가출을 했고, 오랫동안 결석했고, 가출한 기간에 무언가 사고를 많이 쳤다고 했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구석구석 물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럼 윤희는 다시 학교 못 다녀요?”

“사고 친 게 많은데 어쩌겠니. 부반장이나 되는 애가 왜 그랬을까.”


나는 그 대답이 고까웠다. 그래봤자 고1인데, 열일곱 윤희가 무슨 사고를 그렇게 쳤을까. 집과 학교가 얼마나 학교가 싫었으면, 가출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으면 그 애가 뭔가 저질렀는지 이해할 마음이 선생님에게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언젠가 그 애의 뺨을 후려치던 선생님이 어디 있나 눈길로 찾아봤다. 교무실에 있던 그 선생님은 윤희가 자퇴원을 쓴 것에 관심도 없는 듯 옆자리 선생님과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폭력을 휘두른 주제에 타인의 삶이 주저앉는 순간을 열심히 목격도 하지 않고 있었다. 윤희를 때리지 않았던 나머지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때려야만 폭력은 아니다. 학생을 향한 무관심, 그들의 앞날이 어찌되든 학교 분위기만 조용하면 된다는 입장, 입장권에 서명이라도 하듯  자퇴원에 순순히 서명하도록 안내한 그 가벼움까지. 모두 폭력이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 애의 고통스러운 생을 변호해줄 생각이 단 한 줄도 없는 선생님들이 원망스러웠다. 또한 변호할 능력이 없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예쁘장했던 내 고교시절의 첫 친구는 그렇게 사라졌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 윤희와 한 동네 살던 친구들이 전해준 소문에 의하면 그 애가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고도, 화장을 진하게 하고 길을 지나갔다고도,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다고도 했다. 일관성 없는 소문들을 들어보니 다들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 애를 포장하고 있는 듯 했다. 솔직히 윤희가 술집에 일한다 해도 연락이 닿아 친구로 지낼 수만 있다면 아무 상관없었다.


하필 소설을 읽다가 그 애가 떠오른 건 아마 소설 속에 존재하는 조력자가 연약한 내 친구에겐 없었기 때문일 거다. 나는 그저 힘없고 용기 없는 방관자이자 소설에 등장하지도 못할 존재로 남아있을 뿐이다. 만약 그 시절 윤희에게 조력자가 있었다면 그 애의 생은 달라졌을까. 소식을 알 길 없는 그 애의 앞날에 수수한 미안함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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