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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Aug 15. 2017

고향 기행문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일치하지 않는 나의 고향에 다녀왔다.

고향에 다녀왔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은 인천이다. 지금 사는 곳에서 차로 30분 정도,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다. 이 정보를 말하면 사람들은 “에이, 그게 무슨 고향이냐?”라고들 하지만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는 일치하지 않기에, 내게 인천은 고향이 맞다.


나는 차와 면허가 없기 때문에 항상 대중교통을 타고 고향에 간다. 보통 버스를 탄 후 전철로 갈아타고 가는데, 전철 역시 두 번 갈아탄다. 다소 수고스럽지만 이 정도 수고에 차와 면허라는 짐을 추가하고 싶진 않다. 전철을 타고 가는 과정은 귀찮지만 정겨운 시간이기도 하다. 구로에서 인천행 1호선을 갈아타고 창밖을 보면 회색의 서울을 지나, 중간쯤의 부천을 지나고, 어디선가부터 야트막한 건물들이 자욱한 곳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인천이다. 물론 인천도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지만, 아직까지 역 주변으로는 높아봐야 4층 정도의 상가건물과 빌라가 빼곡하기 때문에 체감하는 인천의 느낌은 변하지 않는다.


이번 고향 방문은 오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한 번씩 인천에 오면 오며 가며 시간이 있기 때문에 보통 2팀 정도의 약속을 잡곤 한다. 점심시간에 맞춰 근래에 둘째 아이를 임신한 친구를 만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다. 헤어질 시간은 우리의 의사와 달리,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져 있다. 친구들에게 ‘육아는 귀찮지만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로 규정돼 있다. 나와는 달리 육아를 숙명으로 받아들인 친구들이 참 대단해 보인다. 친구가 돌아간 후, 두 번째 약속과 2시간 정도의 시간 틈이 생겼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공간으로 이동을 했다. 여기서부터 진짜 내 시간이다.




사실 친구들을 만나러 오면서도 나는 혼자만의 시간에 대한 욕망이 컸다. 그럼 굳이 친구들을 만나지 말고 혼자 다녀오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그게 좀 다른 게, 혼자 시작해서 혼자 끝나는 여정은 지독하게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 혼자 말없이 내려와 혼자 말없이 올라가는 여정은 쓸쓸하고 빈약한 시간이다. 혼자만의 적당한 시간을 보내고 반가운 이들을 만난 후 돌아가면 꽤 오랜 시간 자양분이 돼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동인천’이다. 내가 감히 평가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고즈넉하고, 정직하게 낡아가는 곳이다. 동인천은 시간의 흐름이 도시 전역에 공정하게 입혀진다. 어느 하나 우뚝 솟아 ‘재개발’을 뒤집어쓰지 않고, 하늘이 내려주는 시간을 모두 평등하게 받아 입는 곳이다. 그래서 서서히, 과하지 않게 낡아가는 곳이다. 고등학교를 다닌 3년간 추억이 길길이 서려있는 동인천의 낡음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예전 ‘대한서림’ 자리에서 시작한다. 대한서림은 그 당시 인천 사람이면 누구나 알 정도로 큰 서점이었다. 3층 건물이 모조리 서점인 대한서림 입구는 대중적인 약속 장소였다. 친구든 연인이든, 만나기 딱 좋은 장소. 그렇지만 슬프게도 나는 고등학교 시절 연인이 없었다. 그래서 언젠가 남자 친구가 생기면 나도 이곳에서 만나야겠다고 늘 다짐을 했다.


남자 친구는 아니지만 대한서림 앞에서 이성을 만날 기회가 있긴 했다. 당시 인터넷 동호회에서 알게 된 어떤 남자아이였는데, 서로의 얼굴을 모른 채 연락만 주고받다가 드디어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둘이 만나는 게 도무지 겁나서 각자 친구와 함께 2:2로 만나기로 한 그날 오후. 대한서림 앞에서 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거는 그 아이의 얼굴을 멀리서 알아봤다. 그리고 나는 바로 함께 나간 친구의 손을 잡고 도망을 쳤다. 내가 상상한 범주에 전혀 없던 그 남자아이의 얼굴을 보고 도망치며 ‘제발 따라오지 마!’라며 스스로 상처받은 척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예의 없는 행동이었는데, 나는 그 남자아이의 얼굴을 마주하며 도무지 예정된 코스대로 피자를 먹고 커피숍에 갈 수 없었다.


추억(?)의 대한서림에서 옆 골목으로 올라가면, 과거 ‘세대교체’라는 이름으로 장사하던 보세숍 자리가 있다. 지금은 카메라 가게로 바뀌었다. 골목을 꺾어 자유공원 방향으로 걸어 올라간다. 중년의 아저씨들이 주요 고객인 삼치골목이 있다. 좀 더 올라가면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매일이다시피 오던 떡볶이집이 있었다. 커다란 냉면 대접 가득히 나오던 떡볶이가 딱 천오백 원. 두 명이 먹어도 배부른 그 떡볶이를 지치지도 않고 매일 먹었다. 공원으로 오르던 길의 떡볶이집은 사라졌고, 과거의 가게들도 없어졌으며, 인파도 함께 사라졌다. 지금의 길목엔 하릴없는 노인들의 목소리만 남아있다. 한참 걷다 돌아보니 그 거리에 사람은 나뿐이었다.


자유공원으로 오르는 입구에 야구 게임장을 만났다. 두더지 게임기도 여전히 있다. 야구 게임장은 많이 허름해져 영화에서처럼 로맨틱한 데이트를 하기엔 무리일 듯싶다. 잘 자란 나무들을 보며 자유공원에 올랐다. 가을엔 단풍이 예쁘고, 봄엔 벚꽃이 예쁜 그 길이다. 겨울철 헐벗은 나무들이 빼곡한 길도 꽤 좋아한다.


수업이 끝난 저녁, 친구들과 자유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야, 넌 뭐 할 거야?”, “졸업하고 뭐 할지 생각한 거 있어?” 이런 식의 질문과 답을 서로 주고받은 적 있다. 당시엔 하고 싶은 게 특별히 없었고, 성적이 워낙 나빴다. 솔직히 앞날이 캄캄했다. 캄캄한 것보다 장래에 대한 욕망조차 없는 나 자신이 한창 미운 나이였다. 그게 딱 16년 전이었다. 16년 후의 나는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이렇게 멀쩡히 잘 지낼 걸 알았으면 그때 자신을 그리 미워나 하지 말걸. 타임머신이라도 있으면 전해줄 수 있었을까.

“성적이 나빠도, 하고 싶은 게 없어도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하고 싶은 건 생기게 마련이니까.”




자유공원에서 내려와 홍예문까지 걸었다. 낡아빠진 구멍가게가 곳곳에 있다. 여전히 사람은 별로 없고, 막 수업을 마친 여중생들이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는 학교 앞을 지나 마음먹은 카페를 찾았다. 가정집을 개조한 그 카페는 결혼 전 남편과 동인천에 놀러 왔다가 우연히 들어간 곳이다. 그곳이 아직 있다면 한번 와보고 싶단 생각으로 걸었는데, 카페 구조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가정집 대문에 간판이 붙어있고, 현관문을 지나면 거실에 해당하는 곳에 카페 주방이 있다. 거실 큰 창에 해당하는 곳엔 큰 테이블이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작은 방들이 있었을 자리를 크게 터서 테이블을 배치했다. 내 어릴 적 살던 고향의 주택과 구조가 참 닮아있는 카페다. 들어서면서 내 어릴 적 집을 상상할 수 있었다. 내 어릴 적 집의 대문을 들어섰어, 블록을 깔아 둔 마당을 지나서, 그다음 나무벽의 거실에 들어서면 큰 창이 있고, 그 앞에 회색 소파가 있잖아, 그리고 내 작은 방으로 가서 창문을 열지.


테라스에서 더치커피, 잠시 책 읽기


작은방들이 모여 있던 2층 테라스 자리에 가방과 겉옷을 풀고, 더치커피를 주문했다. 올 가을 마지막 아이스커피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커피를 마셨다. 커피의 끝 맛이 고소했다. 테라스 아래로 보이는 길에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흐린 날씨였고, 곧 태풍이 올라온다더니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카페 건너편에 있는 교회의 잘 자란 나뭇잎들이 제각각 움직이며 바람을 탔다. 교회의 담장과 주황색 지붕 색이 나무와 함께 따뜻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고향에 오길 잘 했어. 다녀오면 늘 드는 생각이다. 길게 있진 않되, 여유 있게 있고 싶은 곳. 자주 가긴 싫지만, 멀어지기 전에 한 번씩 가고 싶은 곳. 그런 고향이 있어 내 타향 생활도 건강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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