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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Jul 23. 2019

화투점 역사

그렇게 세상은 천지를 개벽할 예언가를 잃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있다. 작가의 부모님은 처녀총각시절 처음 만난 날 ‘뽕’을 쳤다고 한다. 뽕 치는 게 뭐냐면, 화투를 치는 거란다. 화투라는 말도 그리 격 있어 보이진 않지만 그게 ‘뽕 치다’로 돼 버리니 한결 속되고 가벼이 느껴지는 게 재미있다.


화투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내게도 화투가 몹시 친근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중학교 때였다. 친구들과 노는 시간 외엔 모든 것이 무료하고 재미없던 시절. 집은 언제나 지루했고 한 대 있는 텔레비전의 채널 선택권이 내게 올 리 만무했던 버석버석한 사춘기의 초입. 심각하리만큼 심심했다. 그 무렵 엄마는 작약도 장사를 정리하고 백화점에서 근무하고 계셨는데, 휴일이면 평소의 나 못지않게 심심하셨는지 안방에서 화투점을 치셨다. 


엄마는 어느 집에나 한 장씩 있던 빨간색 큰 꽃무늬 담요를 두 겹으로 깔고 한 면이 빨간 화투를 두 손 안에서 잘 섞어준다. 화투의 맨 위에 장부터 4장씩 뒤집어서 4열로 맞춰 나열하고, 다섯 번째 장부터는 그림이 보이게 앞으로 열에 맞춰 놓는다. 남은 화투장은 한 손에 모아 쥐고 있다.

그림이 보이는 장에서 세트로 묶이는 것은 두 장씩 짝을 지어 순서대로 위에 모아놓는다. 배열한 화투장에서 세트로 묶이는 것은 계속 위로 올리고, 없으면 손에 쥐고 있던 화투장에서 한 장씩 꺼낸다.

그렇게 열 맞춰 은 화투장이 모두 없어질 때까지 짝 맞추기를 계속 한 다음 네 묶음이 된 화투장을 펼쳐 점괘를 본다. 글로 옮겨 적으니 엄청난 기술 같지만 실제로 해보면 아주 단순하기 그지없는 짝 맞추기 놀이에 불과하다.


엄마의 화투점을 어깨너머로 보고 익힌 나는 어느덧 혼자 화투점을 칠 수 있었다. 그땐 그게 우스운 줄 몰랐건만, 지금의 내가 14살 아이가 화투점을 치는 모습을 보면 웃지 않고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매사가 지루했던 그 당시에는 화투점이라도 치며 잠시 여흥을 즐기고 싶었다.


안방 문갑 서랍에는 화투가 세 갑쯤 들어있었다. 집에 딱히 화투놀이를 즐기는 사람은 없었지만, 명절이나 집에 손님이 오면 문갑 속 화투가 바깥출입을 했다. 그리고 아주 한가한 날의 엄마가 화투점을 볼 때가 아니면 화투는 어두컴컴한 서랍에 담겨 허송세월을 보낼 따름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 화투를 구원한 거다. 나는 심심했고, 화투는 답답했을 것이라며 혼자 집에서 화투점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화투가 가리키는 점괘의 뜻도 이미 파악을 마친 상태였다. 방문을 닫고 장롱에서 담요를 꺼낸 다음 화투점을 쳐봤다. 엄마처럼 손에 화투장이 쫙쫙 들러붙진 않지만 얼추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불량스러운 어른으로. 그런 허세에 취해 혼자 화투점을 봤고, 점괘가 맞든 맞지 않든 해석이야 끼워 맞추면 그만이었다.


예를 들어 송학이 나오면 소식이 들려온다는데 성적표나 쪽지시험 결과가 나온다든가, 벚꽃이 나오면 여행이나 나들이가 있다는데 친구들이랑 학교 끝나고 햄버거만 먹으러 가도 내겐 나들이였다. 오동이 나와서 예정에 없던 용돈이 생기면 정말 좋으련만 그런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았고, 술을 뜻하는 국화 역시 중학생인 내겐 해당사항이 없었다.


어쨌든 화투점은 치면 칠수록 재미있었다. 하루에 한두 번씩 꼭 쳤고, 얼마쯤 치다 보니 어른들처럼 화투장이 쫙쫙 소리를 내며 손에 잘 맞았다. 나는 이 비밀스러운 유흥을 둘째 언니에게 몰래 말했다.

“언니, 나 화투점 칠 줄 안다?”

언니는 화들짝 놀라 대꾸했다.

“정말? 그럼 나도 봐줘.”


나는 어른스럽게 화투점 실력을 뽐냈다. 4살이나 많은 언니에게 지시라도 내리듯 “섞어!”라고 지른 다음, 섞은 화투를 고수의 손길처럼 차르르 깔아 점을 쳐줬다. 타인의 점괘 역시 끼워 맞추면 그만이었다.

“언니 홍싸리 나왔네. 좋은 일 생기겠다.”

“어머, 진짜?”

“진짜지 그럼! 벚꽃도 나왔으니까 어디 나갈 일 생길 거야.”

“어머, 나 내일 학교 끝나고 친구들하고 옷 구경 가기로 했는데!”

“내 화투점 완전 잘 맞지?”

그날부터 언니는 꼬박꼬박 내게 화투점을 봤고, 나는 그 대가로 일주일에 과자 한 봉지 정도를 받았다.


이쯤 하다 보니 좀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어 졌다. 고민 끝에 나는 화투를 책가방에 넣고 학교로 갔다. 아침자습시간에 나는 당당하게 화투를 꺼내 주변 애들을 불러 모았다.

“야, 내가 화투점 봐줄게. 나도 힘들어서 많이는 못 봐주고 딱 세 명만.”


크게 말도 안 했는데 교실에 ‘화투점’이라는 단어가 부유하자 너나 할 것 없이 내 책상으로 몰려들었다. 나는 능숙하게 책상에 체육복 윗도리를 깐 다음 내 마음에 드는 친구부터 점을 쳐줬다.

“너 오늘 난초 나왔다. 국수 먹겠네.”

“진짜?”

“그리고 달도 나왔어. 이건 밤에 어디 나가는 거야.”

“나 밤에 학원 가는데?”

“그게 그거지! 학원도 가긴 가는 거잖아?”

친구들은 나의 마구잡이식 점괘 해석에 입을 살짝 벌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나의 화투점은 다음날 더욱 빛을 발하게 됐는데, 첫 타자로 화투점을 본 친구가 학교에 오자마자 큰소리로 엄청난 발견을 한 듯 소리쳤기 때문이다.

“야, 니 점 진짜 잘 맞아. 완전 잘 맞아! 네가 어제 나 국수 먹는댔지?”

“그랬지. 왜?”

“나 어제 저녁에 라면 먹었어!”


친구의 라면 간증이 교실에 울려 퍼지자 내 주변에 앉은 아이들은 모두 탄성을 질렀고, 갑자기 의자 끄는 소리가 잔뜩 들리면서 내게 화투점을 봐달라고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기가 빠져서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근거를 대며 하루에 딱 세 명만 봐준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내게 돌팔이 화투점을 받은 친구들은 과자나 사탕 따위를 대접했다.


집에서는 언니로부터, 학교에서는 친구들로부터 천지를 개벽할 예언가 대접을 받으며 화투점을 치고 다녔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에게 꼬리를 밟히게 된다. 여느 때와 같이 즐겁게 등교 준비를 하고, 오늘 하루 운세를 보기 위해 내 방에서 문을 닫고 화투점을 치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예언가라 한들, 자신의 운세만큼 궁금한 게 또 있을까.


담요 위에서 화투를 쫙쫙 맞춰가며 점에 집중하고 있을 찰나 갑자기 문이 열렸다. 내 방에서 뭔가 가져가려고 들어온 엄마였다. 나는 기겁을 하며 담요 위에 철퍼덕 앉았는데 아뿔싸. 교복 치마 밑으로 화투 한 장이 삐죽 나온 것을 엄마가 목격하고 말았다.

“너 이게 뭐야? 학생이 아침부터 뭐 하는 짓이야!”


나는 그날 아침 등짝을 펑펑 소리 나게 맞고, 예상대로 화투도 뺏기고, 있다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다시 얘기하자는 으름장을 들으며 울상으로 학교에 갔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친구들은 “오늘은 나부터 봐 달라!”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봐줄 화투는 없었고, 나는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슬펐다.

‘오늘 내 화투점엔 아마 단풍(근심, 악재)이 있었을 거야.’


엄마에게 뺏긴 화투는 영영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아쉬운 대로 연습장에 화투를 그려서라도 점을 칠까 생각도 했지만 얇고 빨간 카드가 들러붙는 그 ‘손맛’은 결코 재현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나의 화투점 역사는 막을 내렸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화투로 이 세상을 유랑한 추억을 되새기듯 흥겹다. 조금 촌스러운 빨강이 입혀진 카드를 쫙쫙 소리 나게 치면서 멋대로 풀이해주는 점괘에 나와 친구들은 감탄하고 웃고 떠들었다. 그 흥겨운 순간이 떠오르면 가끔 즐겁고 실없이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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