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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Jun 24. 2019

날 위로해준 마법의 상점

나의 모든 해답을 비춰준 일곱 청년의 성장기

며칠 전 가까이 사는 언니들과 도서전에 갔다. 표를 끊고 두 개의 홀을 이어 쓰는 행사장에 들어섰다. 높다란 부스들을 구경하고 있을 때 곁에 있던 언니가 내게 물었다.

“작가로서 이런 데 오면 기분이 어때?”


이왕이면 긍정적이고 근사한 대답을 하면 좋았으련만. 생각지 못했던 질문에 나는 날것의 속을 꺼내 보이고 말았다.

“그냥 내가 너무 나약해. 이렇게 수많은 출판사와 책이 있는 세상에서 나는 그저 책 한 권을 냈고 무명의 작가라는 게 느껴져서 자꾸 작아지고 겁쟁이가 돼.”


말해놓고 나서는 이게 무슨 배부른 투정인가 싶기도 하고 괜히 무안해져서 훅 하니 화제를 돌려버렸지만, 그건 꾸밈없는 진실이기도 했다. 나는 그토록 많은 글을 쓰고, 칭찬을 듣고, 좋은 기회들을 만났음에도 여전히 자신 없고 자존감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작은 사람’이었다.      


내가 나인 게 싫은 날, 영영 사라지고 싶은 날, 문을 하나 만들자. 너의 맘속에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곳이 기다릴 거야. 믿어도 괜찮아. 널 위로해줄 Magic shop.
<Magic shop>  


몇 달 전 방탄소년단을 좋아한다며 쓴 글에는 많은 댓글이 달렸다. 너무나 공감이 가서 가슴이 꽉 차오르는 댓글들을 확인했고, 서른일곱의 힘없는 갓아미로 나는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렵사리 친 공카 시험은 전체 메일 수신을 체크하지 않았던 이유로 탈락했지만 결국 재시험을 쳤고, 바쁜 틈틈이 방탄소년단의 스케줄을 체크하고 새로 올라오는 콘텐츠를 허기진 사람처럼 탐닉했다. 아직 아미 6기 모집이 시작되지 않아서(7월에 공지가 올라온대요!) 내가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은 제한적이었지만, 이미 누적돼 있는 콘텐츠와 멤버들의 소통능력에 끝이 없을 것 같던 허기는 조금씩 채워지고 있었다.


방탄소년단은 4월 컴백 후 한국에서의 활동을 얼추 마치고 월드 스타디움 투어를 떠났다. 미국, 브라질, 영국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콘서트를 열었다. 나는 어차피 아미에 가입하더라도 피 튀기는 티켓팅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실시간 스트리밍 유료방송을 보기로 했다. 유튜브에 조금씩 올라오는 팬들의 직캠은 소음이나 화질 면에서 현저히 떨어지고, 무엇보다 공연의 전체를 보고 싶었기 때문에 이 방송을 보기 위한 비용은 꽤 합리적으로 다가왔다.

<출처 : V LIVE>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스트리밍 관람을 할 수 있었던 공연은 ‘BTS WORLD TOUR in Wembley Stadium’이었다. 그 거대한 무대를 장악하는 멤버들의 재능은 환상적이었다. 이날 공연은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이 혹여나 큰 무대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거나, 생각보다 빈약한 콘텐츠를 선보였다면 결코 생길 수 없을 자부심이라는 게 무럭무럭 자란 계기였다. 누군가의 팬이라는 게, 내가 ‘덕질’을 하는 대상이 고농도의 재능을 압축한 존재라는 게 자랑스러울 수 있다는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생각보다 스트리밍 방송의 질이 괜찮다는 것을 체험한 나는 지난 일요일 있었던 ‘5TH MUSTER MAGIC SHOP’의 스트리밍도 보기로 했다. 대규모 팬미팅인 머스터는 아미 5기에 한해 신청해 참석할 수 있었고, 당연히 가입조차 못한 나는 현장에 갈 수 없지만 스트리밍으로 전체를 관람하는 것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출처 : 방탄소년단 페이스북>

7시 시작이니 저녁 먹기엔 이른 6시쯤 남편과 간식을 챙겨 먹고 나는 서재에 들어와 머스터를 기다렸다. 현장 사정으로 조금 늦게 시작한 머스터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겐 시간의 흐름이 평소와 달랐다. 방탄소년단과 함께하는 시간은 1시간이 1분처럼, 날아가는 연기처럼 빠르게 흘렀다. 다시 한번 방탄소년단의 팬이라는 사실이 뿌듯하고 기뻐지는 찰나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어떤 곡을 부를 때 이 흥겨운 분위기 속에 눈물이 줄줄 흐르는 작디작은 나를 만났다.


막연하게 방탄소년단이 멋있어서, 잘 생겨서 이런 이유로 운 건 결코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울었던 순간의 감정은 굉장히 복잡했는데, 일단 무대에서 충분히 노력하는 그들의 땀방울이 너무나 생생했다는 기초적인 감정과 함께 최근 몇 달 사이 내가 ‘정주행’한 그들의 역사 때문일 거다.


느지막이 덕질을 시작한 덕에 나는 그들의 2013년 흔적부터 뒤적거렸는데, 오래전 영상부터 꾸준히 정주행을 하면서 일곱 청년의 성장기를 훔쳐본 기분이 들었다. 몇 년 사이에 몇 명의 멤버는 키가 크고 얼굴의 태가 다듬어졌다. 소년들은 청년이 됐다. 청년들은 색이 짙어졌다. 구사할 수 있는 음악적 역량이 굼실거렸고, 각자 보여줄 수 있는 색깔을 찾아 비뚤비뚤 걸어가는 그들의 걸음걸이를 나는 다급하게 쫓고 있었다.


그리고 머스터에서 본 그들의 모습은 성장의 정점, 인생 최고의 아름다운 지점이었다. 박수받아 마땅한 젊음과 노력, 뜨거운 진정성이 담긴 무대는 감동이었다. 웸블리 스타디움 콘서트에서 재능, 웅장함, 기발함에 감탄했다면 머스터에서는 따뜻함, 아름다움에 감동했다. 이들의 아름다운 지점을 관람할 수 있어서, 그 꽃다운 시절에 아미라는 이름으로 함께할 수 있어서 나의 행복은 폭발했다.      


꿈인지 현실인지는 딱히 중요치 않지. 그저 니가 내 곁에 있다는 게 Thanks.
<Best of me>


사람이 힘을 내는 계기는 꼭 대단한 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기대했던 멘토를 만나거나 대장정의 여행을 다녀와서 굉장한 에너지를 얻는 방식이라든가, 영적인 존재로부터 벼락처럼 힘을 얻는다든가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홀로 서재에서 머스터 관람>

우연이라도 열렬히 좋아할 누군가를 만나 열정을 쏟고, 그 모든 순간의 초 단위까지 후회가 없을 만큼 애정을 발휘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말간 얼굴을 만나는 것. 내게는 그게 소중한 경험이자 작디작은 작가로서 소유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겁먹은 눈빛 해묵은 질문.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거야.
<Answer : love myself>


어느 수상식에서 멤버 중 태형이가(태태♡보라해) “우리 멤버들 낳아주신 부모님 감사합니다.”라고 다정한 소감을 말한 적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도 일곱 청년들을 향한 다정한 마음을 담아 머스터의 후기를 남긴다.      


자존감 낮은 나의 등에 힘을 실어줘서 고맙습니다.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노력하는 무대를 보여줘서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아름답게 성장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나의 아이돌, 방탄소년단.      



+ 감동의 스트리밍 관람을 마치고 거실로 나오니 오리처럼 입이 나온 남편이 소파에 누워 있었다.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늦어졌다며 화를 냈다. 일곱 청년의 아름다운 정점에서 현실로 넘어오는 지점은 바로 이런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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