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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Apr 22. 2019

우리 헤어지지 말자

담담하게 이별할 친구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 남편이 친구 예식에 다녀온 날의 얘기다. 

남편의 친한 대학 동기 중 한 명의 결혼식이었다. 저녁 예식에서 식사를 하고 식을 마친 후에는 다 같이 커피를 한 잔 했단다. 기분이 좋아진 남편은 귀가길에 전화로 술 한 잔 하자고 제안했다. 나도 한가했던 터라 냉장고를 털어 안주를 만들었다.

남편이 집에 돌아온 시간은 밤 11시. 무언가를 먹기에 늦은 시간이지만 주말은 매듭 한쪽 풀어도 괜찮다며 나는 술상을 차렸다.


술을 마시며 남편은 예식장에서의 일을 들려줬다. 스무 살 때부터 붙어 다니던 친구들 중에 반 이상이 결혼을 했고, 그중 한 명인 친구는 이날 결혼식에서 몹시 행복해 보였다고 했다.

“언젠가 다들 결혼할 거라 생각은 했는데, 한둘씩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게 신기해.”

“맞아. 스무 살 무렵에는 결혼이 되게 막연하잖아. 그런데 하나둘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기도 하고. 아주 먼 미래에 벌어질 것만 같았던 결혼이었는데 말이야.”


풋풋한 시절을 공유한 친구들의 경사를 숱하게 지켜보며 언젠가 막연했던 미래를 현재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 와중에 세월이라는 쌀가마니에는 옹골지게 작은 구멍 하나가 있고, 그곳으로 시간이 충실히 빠져나가고 있다. 뒤늦게 쌀가마니를 들여다보면 텅 비어있지는 않을까. 그저 앞만 보고 걷고 있다가 문득 돌아봤을 때 빈 공간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건 아닐까. 행복한 이야기 속에 그런 쓸쓸한 상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20대에서 30대로 건너오며 희소식이 비보를 훨씬 뛰어넘었다. 친구의 결혼식과 출산, 사회에서의 결실, 내내 앓았던 일의 해결과 같이 사는 동안 비보에 비해 희소식이 더 많았다. 언젠가 읽은 책에서 노년기로 넘어가면 친구의 부고가 낯설지 않은 때가 온다고 했는데, 나는 부고가 낯설 나이가 아직 멀었다. 그래서 벚나무 한 그루가 피고 지면 옆의 나무가 이어서 피고 지듯 늘 희소식이 화창하다고 느끼고 있다.


나와 남편은 친한 친구를 먼저 보낸 경험이 있다. 나는 20대에 친구 한 명을 먼저 보냈는데, 친구는 마지막 순간에 내게 도움을 청했다. 남의 일에 끼면 안 된다, 오지랖 부리면 욕만 먹는다는 주변의 조언에 잠시 외면한 찰나 친구는 떠났다. 이후 나는 한 번도 죄인의 자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또 누군가 욕을 할지 모르지만 사실 나는 가족 구성원의 부고보다 그날의 부고가 아직도 마음속 말뚝이다.


남편의 친구는 먼 길을 운전해 우리의 비좁은 첫 신혼집에 방문한 적 있었다. 그날 뜻하지 않게 퇴근이 늦는 바람에 계획했던 손님상을 못 차려주고 배달음식을 대접하고 말았다. 나는 몹시 민망해 헤어질 때 “다음에 꼭 놀러 오라. 정말 맛있는 거 준비하겠다.”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남편의 친구는 우리 집에 다시 놀러 오지 못했다. 남편에게도 친구의 부고는 처음이었다. 이런 슬픔을 어찌 감당해야 할지 모르는 남편은 조금 멍해 보였고 내내 허둥댔다.


희소식이 많으니 비보가 옅어진다. 경사는 웃을 수 있는 기억으로 남는데 부고는 물기 어린 기억이다. 기분 좋게 친구의 경사를 이야기하다가 어쩌자고 나는 떠나간 사람들이 떠오른 건지, 술상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남편이 깜짝 놀란 모양이다.

“여보, 우는 거야? 갑자기 왜 울어.”

“이렇게 좋은 소식이 많은데 앞일은 모르는 거니까 언젠가 우리 친구들이 떠나는 날도 있잖아. 그런 슬픈 소식을 들으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핸드폰 목록을 보니 친한 친구, 덜 친한 친구, 연락하기 무색한 친구들이 뒤섞여 있다. 서로 번호는 알아도 기색 없이 지낸 지 몇 년이나 된 친구라든가, 암만 바빠도 계절이 바뀌면 얼굴을 보는 친구도 있다. 그런데 그들 중 누군가 떠난다고 생각해보면 연락이 뜸하다 해서 덜 슬프고 자주 연락한다고 해서 격렬히 슬프진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말과 감정을 나눈 곁의 사람이 떠남을 나는 끝끝내 못 받아들일 것 같다. 15년 전 떠난 강아지는 아직도 내게 슬픔이고, 떠난 지 십 년도 넘은 친구의 마지막 전화는 여전히 귀에 쟁쟁거리는데 담담하게 이별할 친구가 세상에 대체 어디 있을까? 누굴 감히 마음에서 보낼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이별은 이렇게 아프다. 노년에 부고가 낯설지 않다고 읽은 그 책의 구절은 반박해야만 한다.


이제 와서 연락하자니 어색하고 할 말도 없는 친구. 서로 바쁘다고는 하지만 사실 혼자 있을 때 텅 빈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친구. 근거는 없지만 서로를 너무나 잘 안다고 느끼는 친구. 우정과 신뢰를 재는 저울은 의미가 없다. 나는 그 모두와 헤어질 수 없을 것 같다. 상상만 해도 뼈가 덜덜 떨리는 그런 이별, 내 친구들과는 도저히 못 할 것 같다.


덜 친하든, 많이 친하든 우리 모두 이별하지 말자.

이 세상에서 헤어지지 말자.

우리 영영 헤어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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