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에는 없는 나폴리탄

맛있는 녀석이 재밌기도 하지.

by 귀리밥

중화요리 집에서 파는 새카만 짜장면은 중국에서 팔지 않는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나라에서 ‘현지화’한 메뉴라 그렇다. 중국에도 비슷한 메뉴가 있긴 한데 생김새가 마치 미트소스 스파게티와 같다. 현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흔히 주고받는 농담 속 ‘붕어빵엔 붕어가 없다.’는 진실처럼 나폴리탄도 그런 메뉴였다. 스파게티만 전문으로 다룬 요리책을 사서 들춰보다 알게 된 나폴리탄 스파게티. 놀랍게도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이탈리아 요리가 아니었다.

저는 월간 수퍼레시피의 <소박한 파스타>를 참고했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개발한 곳은 일본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일본의 요코하마 일대를 점령한 미군은 본거지로 삼은 어느 호텔 주방에 대량의 스파게티와 토마토케첩을 들여왔다. 차마 스파게티 소스까지 공수하지 못했는지, 미군은 스파게티를 삶아 케첩에 비벼먹고 있었단다. 케첩에 비빈 스파게티라니, 생각만 해도 신물이 물씬 올라온다.


이 모습을 보던 호텔의 일본인 주방장은 나름의 레시피를 개발하게 된다. 양파나 버섯 등을 케첩과 볶아 소스를 만들고 삶은 스파게티를 넣어 맛과 모양새를 갖춘 스파게티였다. 이때는 메뉴 이름이 정확치 않았으나 훗날 이 요리가 대중적으로 번지면서 스파게티의 본 고장으로 여겨지는 나폴리의 지명을 넣어 지금까지 전해져 온 것이다.

간단한 설명으로 알겠지만 나폴리탄 스파게티의 탄생 비화에 나폴리는 한 번도 참견한 적이 없다. 오히려 이 경우엔 ‘요코하마 스파게티’가 정체성을 보다 잘 보여주겠지만, 그럼에도 백 년 가까이 ‘나폴리탄 스파게티’라는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나폴리탄 스파게티로 명맥을 이어온 과정은 대강 이런 대화가 아니었을까?


A : 오, 기가 막히는 이 국수 요리는 이름이 뭐요?

B : 국수라니, 무식하긴. 이건 이탈리아에서 흔히 먹는 스파게티라고.

A : 아하! 그럼 이 요리가 이태리 음식이다 이건가?

B : 뭐, 대강 그렇다고 볼 수 있지. 개발을 여기서 하긴 했는데 스파게티는 일본 게 아니니까, 흠. 아마 이탈리아의 나폴리 같은 데 가면 이런 게 있겠지?

A, B : 오호라, 이탈리아의 나폴리!


여기에 일본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감탄사 ‘스고이~’, ‘오이시이~’를 군데군데 첨가하면 그럴듯한 재연 드라마가 탄생할 것 같은 나만의 상상이다.


세계의 모든 전쟁은 생존한 국가들에 다양한 음식문화를 남겼다. 슬픈 전설처럼 내려져 오는 전후 음식의 이야기 중에 우리 역시 부대찌개를 빼놓을 수 없듯, 나폴리탄 스파게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쟁의 흔적은 새로운 식재료로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그 땅에 심어놓는다.


또 지극히 적은 상식으로 생각하건대 전후 음식의 특징은 보통 만들기 쉽고, 누구나 거부감 없이 즐겨먹을 만큼의 자극과 대중적인 맛이라고 본다. 부대찌개가 그러하듯이 나폴리탄 스파게티 역시 그런 특징을 가졌다.


일단 재료만 봐도 ‘애들 입맛’에 알맞은 구성이다. 기본 재료는 스파게티와 토마토케첩이다. 케첩에 면을 비벼먹는 끔찍한 메뉴에서 나폴리탄 스파게티로 격상하기 위한 재료로 양파와 피망, 양송이버섯과 비엔나소시지가 필요하다. 특히 이 음식이 감칠맛 있고 재밌게 느껴지는 데는 비엔나소시지의 역할이 한몫하는데, 그럴 바엔 나폴리와 비엔나 스파게티 혹은 유럽 일본 믹스 스파게티라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또 하릴없는 생각을 해봤다.


아무튼 재료를 보면 식사의 칼로리와 나트륨 비중을 생각하는 나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구성이긴 하다. 토마토케첩은 나트륨 수치가 높은데 또 의외로 당도 높다. 케첩 특유의 새콤한 맛과 간간한 나트륨에 당의 비중을 못 느끼는 이들이 많은데, 케첩에는 꽤 많은 양의 설탕이 들어간다. 높은 비중의 나트륨과 당이 콜라보를 이루니 즐겨 먹을 수 없는 음식이지만 한 번쯤은 눈 딱 감고 먹고 싶은 ‘불량한 감칠맛’이 나폴리탄 스파게티의 최고 매력이다.

만드는 방법도 정말 간단하다. 위에 소개한 재료 중 야채와 비엔나소시지를 식용유에 볶다가 삶은 스파게티 면을 넣고 조금 더 볶는다. 여기에 토마토케첩과 굴소스를 넣어 볶고, 마지막 단계에 버터를 넣어 고루 섞어주면 완성이다.


만드는 데 1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이 메뉴는 불량한 감칠맛에 항복한 내가 점심때 한 번씩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집에서 업무를 보다가 한 번씩 스트레스가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오늘만큼은 건강과 다이어트 생각에서 벗어나 방과 후 오락실 같은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냉장고 속 언제든 쟁여둔 야채들을 꺼내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넉넉히 만들어먹는다. 15분쯤 투자해 요리를 만들어 먹고,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거실에 앉아있노라면 근본을 알 수 없는 불량한 즐거움으로 체력이 꽉 차오른다.


이 맛있는 음식을 나만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 어느 토요일, 미용실에 다녀오는 남편으로부터 점심메뉴를 묻는 전화가 왔다. 나는 당당히 메뉴를 소개했다.

“오늘 점심은 나폴리탄 스파게티야!”

“오, 왠지 맛있을 것 같은데?”


5분 이내로 도착한다는 말을 듣고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앞치마를 둘러메고 주방에 섰다. 면을 삶는 동안 양파를 채 썰고 피망의 씨를 걷어낸 다음 채 썬다. 양송이버섯도 얇게 썰고, 비엔나소시지는 촘촘히 칼집을 넣어놓는다. 소스에 들어갈 케첩과 굴소스, 버터도 준비 완료. 그렇게 준비한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접시에 담아 피클과 함께 점심상을 차렸다. 남편과 마주 앉아 한입씩 크게 말아 입안에 넣었다. 우리는 동시에 외쳤다.

“와, 맛있다!”

내가 만든 나폴리탄.

그리고 나는 굉장한 지식을 자랑하듯 또다시 나폴리탄 스파게티의 전설을 이야기한다.

“여보, 나폴리탄 스파게티가 나폴리에는 없다는 거 알아?”

“헐, 진짜?”

“응, 진짜야. 왜냐면 말이지…….”


나폴리엔 나폴리탄 스파게티가 없다는 이야기를 주섬주섬 꺼내며 우린 즐겁게 식사를 했다. 잘 익은 비엔나소시지가 입안에서 톡톡 터진다. 맛있는 녀석이 재밌기도 하지. 괜히 기특하게까지 느껴지는 나폴리탄 스파게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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