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나는 21살까지 키가 자랐다. 여자아이는 고등학교 무렵 성장이 멈춘다는데 나는 계속 컸다. 고등학교 때도 1년에 3cm 정도는 꾸준히 컸고, 졸업 후에는 1년에 2cm 정도 큰 것 같다. 고3 신체검사 때 잰 키가 163cm였는데, 21살을 넘긴 후 잰 키는 167.7cm였다.
내 성장 속도가 다른 것을 느낀 것은 스무 살 여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잘 입고 다니던 여름 청바지를 꺼낸 날이었다. ‘올여름에도 입어야지.’하고는 입어봤는데 길이가 좀 이상했다. 바닥에 닿을 듯 말 듯하던 청바지 밑단 주위로 복숭아뼈가 살짝 보이는 거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얼마 뒤 병원에 갔을 때 키를 재봤다. 1년 사이에 2cm가 컸다. 그다음 해에도 조금 더 컸고, 167.7cm가 된 이후로는 더 크지 않았다.
키가 계속 크고 있다는 사실을 안 뒤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얼굴에 볼살이 통통히 오른 내 몸무게는 표준에서 비만으로 넘어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키가 크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 다이어트를 하다가 키가 클 기회를 박탈하면 어쩌나 싶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일단 성장이 멈출 때까지 열심히, 정성껏 음식을 먹고 다이어트를 미뤄두기로 했다.
대학에 입학하면 다들 살 빼고 예쁜 옷을 입는다던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재수를 하느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에 입학한 뒤로 늘 운동화에 편한 옷을 입고 다녔다. 걸어서 통학했기 때문이다. 다른 동기들은 예쁜 구두에 블라우스에 짧은 치마를 입고 다녔다. 게다가 책은 왜 불편한 자세로 안고 다니는지. 나는 책가방에 책과 물건을 넣고 운동화를 신고 다녔고, 아직 키가 크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다이어트는 생각조차 안 했다.
이윽고 성장이 멈췄다. 시간이 많이 흘러 167.7cm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음을 확인했을 때 내 몸매는 젖살과 뱃살이 푸짐한 상태였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젖살 빠진다는 말 그거 다 뻥이다. 하나도 안 빠진다. 물론 내가 잘 챙겨 먹어 그리된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곧 취업준비를 시작할 졸업반인데 내 몸은 너무 둔해 보였다. 적어도 날렵해 보여야 취업에 유리할 게 아닌가.
미뤄뒀다고는 하나 애초에 하고 싶지도 않았던 다이어트를 이때 시작했다. 몸무게가 비만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나름 효과적이면서 변비에 문제가 없고, 식단을 준비하느라 많은 돈을 쓰지 않아도 되는 메뉴와 방법을 고심했다. 이윽고 찾은 방법은 ‘양배추’였다. 시장에 가보면 양배추는 사람 머리만 한 것을 천 원 정도에 살 수 있었다. 양배추 한 통을 사면 3~4일 정도 식단에 사용할 수 있었다.
아침에는 주로 삶은 양배추를 먹었다. 쌈장도 살찐다고 해서 거의 넣지 않고, 양배추의 참맛이 나는 삶은 양배추를 아침에 양껏 먹었다. 말이 양 껏이지, 많이 먹을 순 없었다. 이미 두 세장 먹고 나면 코로 양배추 특유의 향이 올라오기 때문에 더 먹을 수 없다.
점심은 학교에서 일반식을 먹었다. 하루에 딱 한 끼, 맛있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순간이라 정말 신나게 먹은 것 같다. 학교 수업이 끝나는 네다섯 시경이면 가방에 담아온 페트병에 물을 채운다. 물을 채운 페트병을 책가방에 넣고 무겁게 만든 다음 당시 과외하던 집으로 걸어간다. 편도 한 시간, 왕복 두 시간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나를 기다리는 양배추를 만난다. 삶은 양배추를 먹거나 생양배추를 먹기도 한다. 정말 미칠 듯이 양배추에 질리면 프라이팬에 물을 조금 넣고 양배추를 썰어 넣은 다음 소금을 뿌려 볶는 것도, 끓이는 것도 아닌 음식을 만들었다. 그것도 질리면 생양배추를 먹었다. 케첩과 마요네즈를 가득 뿌리면 그럭저럭 치킨 집 양배추 샐러드 맛이 나겠지만, 그 칼로리를 감당할 순 없었다.
아무것도 뿌리지 않은 하얗고 탄탄한 생양배추를 씹으면 어금니들이 서로 부딪혀 우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양배추에서 단맛이 난다고 좋아도 하던데, 나는 단맛보다는 뱃속을 훑고 지나는 맛을 느꼈다. 그렇게 먹고 나면 삼십 분쯤 버틸 만하지만, 허기가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와 유혹을 했다.
“과자 먹고 싶지? 버터 바른 빵은 어때? 냉장고에 뭐가 있더라?”
좀 전까지 열심히 먹은 양배추는 어디로 사라진 건지, 허기는 참 금방도 찾아왔다. 돌이켜보면 식단 조절은 내 인생에서 손에 꼽히는 고통 중 하나였다. 정말 배가 고프지만 참지 못하고 뭔가 먹게 되면 겨우 빼놓은 몸무게가 훌쩍 올라가 있었다. 그러니 물을 마시거나 양배추를 조금 더 먹는 식으로 참았다. 양배추를 삶고, 볶고, 생으로 먹다가 다시 반복하고 걸어 다니고, 주말에는 3시간씩 달리기를 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나는 11kg을 빼고 저체중이자 날렵해 보이는 몸매를 얻게 됐다.
더불어 양배추에 대한 혐오를 얻었다. 그날 이후로 양배추를 먹기도 싫었고 바라보기만 해도 울렁거렸다. 양배추는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코를 갖다 대면 특유의 들뜬 냄새가 난다. 그래서 양배추 채를 썰 때면 양배추만의 독특한 체취가 불편했다. 양배추를 삶아 먹는 건 더욱 싫었다. 아침마다 삶은 양배추를 먹던 기억 때문에 구역질이 났다.
양배추가 질리면 고구마나 호박 따위를 먹기도 했는데, 이것저것 재보면 양배추만큼 칼로리가 낮고 변비를 해결하는 야채가 없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기에 양배추를 3개월간 고수한 것이다. 다이어트를 마친 후 약 8년 정도 양배추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양배추는 내 흑역사의 마지막 페이지이자, 스스로를 학대한 기억이 됐다.
다시 양배추를 먹기 시작한 것은 결혼 후였다. 일본 요리 중에 ‘롤케베츠’라는 게 있다. 언젠가 봤던 영화 <하와이안 레시피>에서 요리를 잘하는 할머니가 젊은 청년을 위해 만든 음식이다. 삶은 양배추에 고기와 야채를 다져 넣고 돌돌 말은 다음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고 그 위에 양배추 롤을 굽는다. 이것을 냄비로 옮긴 뒤 닭 육수와 생크림, 샤워크림을 섞은 것에 넣고 뭉근하게 끓여 만든 음식이 롤케베츠다.
영화 <하와이안 레시피>에서 롤케베츠 만드는 장면. 저는 이 영화를 호노카아 보이로 기억합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남편은 나의 다이어트 역사를 잘 몰랐고, 요리책에서 발견한 이 메뉴에 눈을 반짝거렸다. 나는 다음날 장을 보러 가서 양배추를 사 왔다. 그리고 만들었다. 손이 조금 많이 가는 롤케베츠를. 뭐랄까, 롤케베츠는 돌돌 말아둔 양배추 안의 온기가 꽤 오래가는 음식이었다. 양배추 속재료들이 핫팩이라도 품은 것처럼 뜨끈함이 오래가는 게 신기했다. 그날 이후 이따금씩 찾아오는 겨울이면 롤케베츠를 만든다. 그렇게 양배추를 향한 묵은 미움도, 혐오도 조금씩 씻겨나갔다.
시간이 지나서 양배추를 향한 미움이 덜어졌지만, 부연을 보태자면 마른 몸에 대한 미련과 강박에서 벗어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날렵해 보이고, 좀 더 예뻐지기 위해 채찍질하며 마른 몸을 만들었건만 요요가 올까 봐 계속 불안하게 지내야 했다. 살은 빼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더 어렵고, 정말 독한 사람만이 해낼 수 있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2년이 지나서부터 1년에 1~2kg씩 늘기 시작했다. 운동을 계속했음에도 살은 성실하게 늘었다. 지금의 몸무게는 11kg을 빼기 전의 몸무게에 거의 가까워졌다. 12년 전의 넉넉한 몸으로 돌아온 것이다.
영화 <하와이안 레시피>에서 롤케베츠 만드는 장면.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지금도 날씬해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이지만 자신을 학대하면서까지 마르고 싶진 않다. 그러니까 양배추만 먹는다고 내가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분명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거다. 뭘 먹든 어제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어제보다 오늘이 즐거울 거라 기대한다. 내일은 또 얼마나 재밌는 일이 생기고 맛있는 음식을 만나게 될까. 이렇게 마르지 않은 나라고 해서 미워하고 학대할 필요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스스로를 마른 몸의 우리에서 풀어줬더니 미운 음식이 없다. 겨울에 만들어먹는 롤케베츠와 직접 만든 쌈장과 삶은 양배추에 쌈밥을 해 먹는 시간, 돈가스에 곁들이는 채 썬 양배추엔 케첩과 마요네즈를 듬뿍, 볶음우동을 만들 때도 양배추를 넉넉히 넣으면 달콤한 맛이 감돈다. 살찐 내가 싫고, 살찐 몸에 연연하는 내가 싫었으면서 엄한 양배추만 혐오하던 때보다 오늘의 내가 편안하다면 스키니진을 못 입더라도 충분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