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니까 잔치국수
뽀얀 국수는 친구의 앳된 얼굴처럼 맑았다.
대학 졸업반 무렵인가, 고등학교 시절 짝이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란이야, 나 결혼해.”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을 전하는 친구에게 나는 호들갑스럽게 축하를 전했다. 며칠 후 청첩장을 받기 위해 만났다. 얼굴이 하얗고 앳된 친구는 노란 잠바를 입고 와서인지 더욱 병아리처럼 귀여웠다. 거의 1년 만에 만난 친구는 예비신랑과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친구는 집안 사정이 편치 않아 고등학교 졸업 후 취직을 했고, 저녁에 재수학원에 다녔다. 마침 나도 그 학원의 재수반에 등록해 다니고 있던 터라 우린 자주 마주치곤 했다. 하지만 친구는 학원을 몇 달 다니지 못했고, 재수생활 1년을 마치고 나는 대학에 갔다. 이후 한 번씩 만나고 연락은 했지만 자주 못 보던 사이 친구에겐 연인이 생겼고 결혼을 약속하게 됐다.
“실은 내가 아이를 가졌어.”
이 말을 전할 때만큼은 친구의 얼굴이 빨개졌던 기억이다. 결혼을 약속하고 서로 믿음이 굳건한 마당에 부끄러울 소식은 아니었다. 게다가 연로하신 친구의 어머니까지 함께 모시고 살자고 먼저 손을 내민 예비신랑이었다. 친구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인 예비신랑에게 내가 다 고마울 정도였다.
결혼은 예비신랑의 집이 있는 지역에서 한다고 했다. 청첩장을 받아 열어보니 장소명이 특이하다.
‘농협? 농협에서 결혼을 한다고?’
예식을 많이 가본 적이 없는 나이라 예식장의 종류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농협에서의 결혼이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티를 낼 수 없었다. 예식에 꼭 가기로 약속했고, 예식 날이 가까워오자 친구의 결혼에 가기로 한 동창 몇 명과 연락이 됐다. 터미널에 함께 모여 가기로 했다. 터미널에서 버스로 3시간 정도 거리였다. 그래도 나름 하객으로 차림새에 꽤나 신경을 쓰고 갔다. 버스 안에서 우리는 공통적으로 궁금해하던 결혼식 장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너도 봤어? 결혼식 장소?”
“그러게. 농협에서 결혼도 할 수 있어?”
그러자 한 친구가 고심했다는 듯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내가 궁금해서 동네 농협 가서 미리 살펴봤는데 혹시 창구에서 결혼하는 게 아닐까?”
“아, 은행 업무 보는 그 창구?”
“그 창구 안쪽에 주례 선생님이 서계시고, 그 앞으로 신랑 신부가 행진을 하고, 농협 가면 의자들 있잖아. 우리가 거기에 앉는 것 아닐까?”
들어보니 그럴듯했다. 농협 창구에서의 결혼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며 3시간을 달려 터미널에 도착하고, 지도를 더듬어 다시 터미널에서 20분쯤 걸어 예정된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한 농협의 창구가 있는 건물은 문이 잠겨 있었다. 결혼식 장소는 바로 농협 마당에 있는 농협회관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떠들썩하게 웃었다.
“야, 창구에서 결혼한다며?”
“너네도 동감했잖아!”
일단 우리는 회관으로 들어가 친구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찾았고, 작은 신부대기실로 갔다. 요즘 예식장의 화려하고 꽃으로 치장된 신부대기실과는 거리가 먼 무뚝뚝한 분위기의 대기실이었지만, 그 가운데 드레스를 입고 앉아있는 친구의 화사한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항상 맨얼굴로 다니던 친구가 화장한 모습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멀리서 달려온 우리를 보고 친구는 조금 울먹이는 것 같았다.
우리는 대기실을 메우고 있다가 예식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아직 결혼한 친구가 별로 없어서 친구의 하객으로 참석하는 자리가 항상 두근거리던 시절이었다. 이윽고 신랑과 신부가 입장을 했고, 차근차근 예식이 진행됐다.
기념촬영이 순서대로 진행됐고 마지막에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단계였다. 나는 친구들 중에 키가 큰 편이라 뒷줄로 밀린 상태였다. 뒷줄에 섰더니 신랑의 친구들 사이에 끼게 됐다. 어색한 가운데 사진 찍기를 기다리는데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톡톡 쳤다. 뒤를 돌아보니 처음 본 신랑의 친구가 빤히 쳐다보다 말을 했다.
“저기, 혹시 괜찮으시면 있다가 식사하시고 차 한 잔 하실래요?”
“네? 차요?”
역시나 하객 경험이 별로 없던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고, 갑작스러운 말소리가 들리자 앞에 있던 친구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말을 걸었던 신랑이 친구는 귀까지 얼굴이 빨개졌고, 나 역시 어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사진을 찍고는 흐지부지 친구들과 식사 장소로 갔다.
요즘 수도권에서 결혼을 하면 보통 가짓수가 많은 뷔페나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가득 채운 한정식을 대접한다. 그날 친구의 결혼식에서 대접받은 음식은 잔치국수였다. 음식을 서빙해주시는 분들이 오며 가며 서로 인사를 하는 걸 보니 회관이나 식당의 직원이 아니라 혼주의 가족과 이웃들이 직접 음식 장만을 해서 상차림을 하고 하객들에게 대접하는 모양이었다.
잘 익은 국수 위에 맑고 진한 국물이 찰방거리고, 그 위에 노란 지단과 하얀 지단이 포개져 있었다. 뽀얀 국수는 친구의 앳된 얼굴처럼 맑았고, 국수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국물은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살았던 내 친구를 품은 친구의 신랑을 닮았다고 느꼈다. 국물을 한 숟갈 떠먹어봤는데 여느 식당에서 파는 국수는 델 것도 아니었다. 국물 하나를 우려도 긴 시간 품을 들여 우려낸 깊은 맛이 깃들어있었다. 살면서 국물까지 삭삭 비운 국수는 처음이었다. 마음속으로 혼자 소원 비슷한 것도 빌었다.
‘친구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라. 여기 모두가 나눠 먹는 국수처럼 오래도록 사이좋은 부부로 지내야 해.’
잔칫날에 어울리는 전과 김치 등의 반찬은 홀 가운데 테이블에서 먹을 만큼 가져가 먹는 구조였다. 동태전과 동그랑땡, 떡, 김치와 나물 등이 있었는데 이 역시 직접 만든 품이 드러난 음식이었다. 혼주의 가족과 이웃들이 예식 전날 이 많은 음식을 준비했을 거라 생각하니 하나라도 허투루 남기면 안 되는 음식이었다.
평소 동태전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그날 먹은 동태전은 정말이지 고소했다. 두툼한 동태포에 노란 달걀이 얇게 입혀져 적당히 구워진 전은 크기가 대체적으로 균일했고 자투리나 비뚜름하게 부쳐진 게 없었다. 아마 잔칫상에 내는 전이니 평소보다 더 정성스럽게 준비한 게 아닌가 싶었다. 테이블에는 유리병에 담긴 음료가 몇 병씩 놓였다. 오렌지맛이 나는 탄산음료를 비롯해 어릴 적 먹었던 향수 어린 음료들이 놓였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음료라며 친구들과 음식에 곁들여 마셨다.
그때 우리 옆 테이블에 신랑의 친구들이 자리를 잡았다. 사진 찍을 때 말을 걸었던 친구분도 나의 대각선 자리에 앉았다. 내 친구들이 속닥거렸다.
“아까 너한테 말 걸었던 분 아니야?”
“어, 맞는 것 같아.”
“네가 마음에 드나 봐. 옆 테이블에 온 걸 보면.”
“아, 그런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까 무슨 차를 마시자고 했던 것 같은데.”
“차? 근데 우리 버스 시간 때문에 오래 못 있지 않아?”
“아마도 그렇겠지?”
어색한 풋내가 감도는 가운데 옆 테이블의 신랑 친구들은 우리 일행에게 조금씩 말을 걸었고,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작은 웃음보가 터졌다. 친구의 결혼식에서 신부 친구들과 말도 섞어보고 좋은 인연이라도 만날까 싶어 조심스레 대화를 시도하는 그들의 순박함이 주변 공기를 통해 느껴졌다. 정성스럽고 따뜻한 음식과 청년들의 순박함은 한 데 어우러져 결혼식의 분위기를 즐겁게 했고, 그들의 호의에 우리는 제법 수줍었다.
하지만 그런 자리를 별로 겪어보지 않았던 나와 친구들은 피로연이나 상대의 친구들과 커피를 한 잔 할 정도의 매너를 익히지 못한 탓에 조곤조곤 대답만 하고 이내 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처음 겪어본 농협회관의 결혼식과 직접 만든 푸근한 음식에 대해, 순박한 청년들과의 대화를 소재 삼아 즐겁게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날의 기억이 내게 인상적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누가 결혼식을 한다고 하면 잔치국수를 한 사발 말아먹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왠지 냉정한 느낌의 뷔페보다 국수 한 그릇씩 테이블에 갖다 주는 예식장이 마음에 든다. 고급스러운 스테이크와 분자 음식처럼 세팅된 디저트보다 맛있다고 소문난 동네 떡집에서 맞춘 떡에 직접 만든 잔치국수 한 그릇이면 더할 나위 없는 결혼식 음식 아닐까. 또 한편으로는 점점 사라져 갈 결혼식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어 짠해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