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신료의 습격
지독한 풀떼기, 무서운 향신료 녀석
음식의 호불호를 가르는 큼직한 기준이 몇 가지 있다. 익혔거나 덜 익혔거나, 음식 특유의 향이 좋거나 나쁘거나, 비주얼이 심각하게 끔찍하거나 등등의 기준이 있는데 내게는 무엇보다 음식의 향이 중요하다. 워낙 후각이 예민해서 향이 너무 짙거나 독하면 도무지 입에 가져가기가 어렵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며 학비를 벌기 위해 1년간 회사에 다닌 적 있다. 작은 사무실에서 무역사무를 맡았는데, 재수로 수능을 치고 얼마 안 된 12월 회사에서는 전 직원에게 송년회와 워크숍을 겸해 태국으로 8일간 여행을 보내줬다. 이제 생각하면 참 파격적인 대우였는데(게다가 나는 2달 후면 퇴사 예정이었으므로), 당시에는 세상 물정을 몰라서인지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모르는 상태로 난생처음 비행기를 탔다.
태국에 도착해 공항으로 마중 나온 가이드의 차량을 타고 호텔로 이동했다. 여직원과 남직원으로 나눠 호텔을 이용했다. 기내식으로 저녁까지 먹었고, 한밤중에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잠시 쉬던 중 노크가 들렸다. 남직원 중 한 명이었던 과장님이었다.
“우리 다 같이 쌀국수 먹으러 나갑시다! 더 늦으면 나가기 어려울 것 같아요.”
출장으로 여러 번 태국에 왔던 과장님은 늦은 밤 노점에서 먹는 쌀국수 맛이 기막히다며 다 함께 밤마실을 요청했다. 전 직원이 모여 쌀국수 노점으로 향했다. 나도 환전한 태국의 바트를 넣은 주머니를 손에 꼭 쥐고 얼떨떨하게 따라갔다.
노점의 메뉴는 단출했다. 세 가지 정도의 메뉴가 있었고, 옆의 선배들이 주문하는 것을 따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 앞에는 쇠로 된 우리나라의 냉면 대접 같은 그릇에 뽀얀 쌀국수와 맑은 국물, 몇 가지 야채가 곁들여져 있었다. 다들 국수를 후루룩 먹고 국물도 시원하게 마시며 즐거워했다. 그 맛과 향에 당황한 건 나뿐이었다. 쌀국수가 내 앞에 놓인 순간부터 극심한 당황이 시작됐다.
‘이게 무슨 냄새지. 약간 발 냄새 같기도 하고. 우리 중에 누가 발 냄새나는 건가. 다들 샌들 신은 것 같은데.’
옆에서 먹듯 나도 국수를 입에 넣고 국물을 마셨다. 국물에서는 내가 발 냄새라 표현했던 그 냄새가 났다. 당황스러웠다. 내 음식만 잘못된 모양인지 다들 맛있게만 먹는 국수에 두 번째 젓가락을 도저히 댈 수 없었다. 얼굴이 새빨개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내게 선배들이 말을 걸었다.
“란이 씨, 쌀국수 처음 먹는구나?”
“네, 근데 이상해요. 국수에서 발 냄새 같은 게 나는 것 같아요. 식재료가 상했나 봐요.”
내 말에 국수를 먹던 모든 일행이 떠나갈 듯 웃었다.
“고수가 들어가서 그래.”
“고수요?”
“태국 음식에 많이 들어가는 향신료인데, 고수 처음 먹어본 사람들은 냄새난다고 느낄 수 있어.”
“아…….”
“고수 향을 맛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쌀국수 되게 좋아하는데, 우리 막내는 안 맞나 보다.”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고 온 외국인 데다 처음 먹어본 쌀국수와 고수의 향에 쩔쩔매는 나를 직원들은 귀엽게 대해줬다. 나름 사람들에 맞추느라 열심히 먹으려 애썼지만 나는 절반도 먹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잊을 수 없는 것은 그 푸짐한 국수 한 그릇이 고작 500바트였다는 것. 우리나라 돈으로 약 1500원 정도에 사람들이 그토록 즐겨 먹는 국수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는 놀라움과 노점에서 먹는 쌀국수는 밤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질 것처럼 가득한 별과 함께 후루룩 들이켠다는 사실이었다.
태국에서의 여행은 7박 8일간 이어졌는데 이후 일정 중 하루에 한 번은 한식이 제공됐지만, 그 외 두 번의 식사는 보통 태국 식이었다. 모든 요리에는 고수를 비롯한 향신료가 듬뿍 들어가 있었고, 땀을 잔뜩 흘린 누군가 내 음식에 발을 담갔다 뺀 게 아닐까 상상하며 힘든 식사시간을 보내야 했다.
여행 중에 가이드와 함께 있던 직원들로부터 귀동냥한 바에 따르면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에서는 더위로 인한 식욕 감퇴를 해결하거나 열대기후로 인해 음식에 벌레가 잘 생기고 금방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향신료를 많이 넣는다고 했다. 그래서 평소 식사에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다 보니 사람들이 숨 쉬는 공기에서도 향신료 냄새가 많이 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호텔이나 차량이 아닌 거리에서는 향신료 냄새가 어렴풋이 코를 건드렸다. 대신 시간이 갈수록 공기 속에 은근히 퍼져있는 향신료 냄새는 처음 쌀국수를 입에 댔을 때처럼 지독하지 않았고, 개성과 박력이 넘치는 풋내로 느껴졌다.
여행에서 돌아올 무렵 나는 체중이 3kg 정도 빠졌었다. 사람들 곁에서 싫은 티 내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먹었건만, 양껏 먹을 수 없어서인지 체중이 조금 빠진 상태로 돌아왔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에 밥을 비벼먹었던 기억이다.
이후 나는 향신료가 들어간 동남아 음식을 먹을 때 나름의 팁이 생겼다. 평소 자유롭게 메뉴를 고를 수 있다면 문제가 없는데, 직장에서 단체로 식사를 하러 베트남이나 태국 요릿집에 가거나 배는 고픈데 선택권이 없는 지역에서 동남아 요리를 먹게 되면 면 대신 볶음밥을 고른다. 대부분 볶음밥에는 고수를 안 넣거나 아주 소량만 넣는다. 어쩔 수 없이 향신료가 들어간 면 요리를 먹을 때도 볶은 면이 조금 낫다.
어쩔 수 없이 국물로 이루어진 쌀국수나 똠양꿍 등을 먹어야 할 땐 건더기를 먼저 조금 먹고 국물을 먹을 때 잠시 숨을 멈추고 빨리 삼켜버린다. 그러면 그 향을 덜 느낄 수 있다. 전혀 느끼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태국에서 느꼈던 바와 같이 향신료는 개성과 박력이 넘치니까 말이다.
이렇다 보니 자발적으로 향신료를 먹을 일은 별로 없었는데 얼마 전 예기치 못한 습격을 당하고 말았다. 점심시간마다 회사 동료와 마라탕을 즐겨 먹는 남편이 마라탕 극찬을 하면서였다. 마라탕을 먹고 온 날이면 집에서 “마라~ 마라~”라고 노래를 부를 정도였다. 평소 중식을 좋아하는 남편은 식성이 비슷한 회사 동료와 일주일에 1~2번은 꼭 마라탕을 먹었고, 내게 와서 정말 맛있다고 소리 높여 극찬했다.
“마라탕 진짜 맛있어. 주변 식당 중에 제일 맛있는 것 같아.”
“마라탕이 뭐야?”
“중국 샤브샤브 같은 건데, 여보도 좋아할걸?”
“중식이면 기름질 것 같은데?”
“아냐, 담백하고 매콤해. 여보 매운 것 좋아하니까 잘 먹을걸. 언제 한 번 퇴근 시간 무렵에 회사 근처로 오면 안 돼? 같이 마라탕 먹으러 가자.”
하도 맛있다고 하니 궁금해져 어느 평일 저녁 나는 정말 남편 회사 근처에 출몰했다. 퇴근한 남편과 도착한 식당은 우리가 흔히 동네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 먹던 ‘중국집’이 아니라 정통 ‘중식당’이었다. 거기서 남편은 능숙하게 마라탕에 들어갈 재료를 골랐다. 고기는 소고기와 양고기 중 선택할 수 있었다. 양고기가 국물에 들어가면 향이 너무 짙을 것 같아서 소고기를 골랐다. 어떤 맛일까 궁금해하며 테이블에서 기다렸다.
‘완전 맛있어서 나도 만날 마라탕 노래 부르는 거 아냐?’
이윽고 등장한 새빨간 국물의 마라탕. 일단 국물을 한 입 먹었다. 남편은 내 얼굴을 살피며 호들갑을 떨었다.
“맛있지? 맛있지? 완전 여보 스타일?”
실은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이렇게 지독한 향신료를 너무 오랜만에 먹어서인지 입안이 얼얼하고 코를 후려치는 향에 할 말을 잃었다. 생각해보니 언젠가 갔던 상해 여행에서도 나는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에 손을 거의 못 대고 퓨전 중식만 먹었다. 중식에도 분명 향신료가 듬뿍 들어가는 게 많은데, 왜 나는 그동안 동남아 요리만 기피하는 우를 범한 걸까.
맛있냐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남편 얼굴에 재를 뿌릴 수 없어서 적당히 둘러댔다.
“응, 여보 맛있네. 담백하다.”
담백은 개뿔. 울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그래도 너무 안 먹고 있으면 남편이 무안할까 봐 면을 두 줄기쯤 먹고, 야채를 몇 개 건져먹었다. 대신 물을 많이 먹으며 남편이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렸다. 식사가 끝나면 당장 가게에서 뛰쳐나가리라. 몇 개 건져먹은 면과 야채를 통해 내 몸에 들어온 향신료는 찰나의 순간에 입 안 구석구석에 일격을 가했다. 방심한 틈을 노린 향신료로부터 배신의 한 방을 당한 기분이랄까. 한동안 잊고 있던 향신료의 습격이었다.
집에 돌아와 ‘마라탕’을 검색한 후에야 ‘마라’는 중국 향신료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 이 메뉴의 이름은 정직하게 향신료의 존재감을 드러낸 것인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촐랑거리며 남편을 따라가 엄한 식사를 하고 온 것이다. 아, 지독한 풀떼기, 무서운 향신료 녀석. 음식이란 즐거움이나 따뜻함,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이처럼 억울함과 당혹을 줄 때도 있다는 걸 오랜만에 복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