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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r 03. 2020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나는 멋진 신세계가 아닌 진짜 신세계에 살고 있다.

연초의 나는 뭐든 잘 풀리고 있다 느꼈다. 두 번째 책이 나왔는데 나름의 반응이 있었고, 비수기라 생각한 시즌이 왔는데도 뭔가 자꾸 일이 생기는 바람에 되레 안정감을 느꼈다. 게다가 1년 가까이 기다린 나의 꿈, 방탄소년단 콘서트 당첨! 이 일은 정말 굉장한 호재라서 오랜만에 연락 온 업무담당자가 “작가님 생일보다 콘서트 당첨이 더 축하할 일”이라고 할 정도였다. 물론 내 돈 주고 가는 콘서트지만 자리 당첨이 하늘의 별 따기와 같기 때문이다.      


그랬던 나날 중에 어떤 전염병의 소식이 들려왔다. 처음 그 보도를 들었을 때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곧 종식될 일이라고 여겼다. 몇 번의 전염병에 우리나라는 잘 대처해왔고 나는 확고히 우리나라를 의료선진국으로 인지하고 있다.


사태가 커진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내게 이민을 가지 않고 이 나라에 사는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가장 첫 번째가 의료보험을 포함한 의료선진화라고 말할 정도다. 그 혜택을 아주 감사히 생각하며 가끔 납득되지 않는 세금의 분배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래서 믿었고, 가끔 연로한 확진자의 소식을 들으면 사망자 없이 이 사태가 끝나길 내심 바랄 따름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고 2월 말부터 믿을 수 없는 소식들이 전해졌다. 나는 2월 하반기부터 글쓰기와 관련해 원데이 클래스를 시작했는데 왠지 불안하기도 하고, 혹시 내가 유해한 자리를 만드는 게 아닌지 걱정이 돼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또다시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이어졌다. 콘서트가 취소된 것이다. 작년에 티켓팅에 실패하고 올해는 꼭 가고 싶다고, 입대를 앞둔 멤버가 있어 어쩌면 7인의 모습을 눈에 담을 절호의 기회였던 콘서트가 취소되고 말았다. 이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내가 자부하고 있던 의료선진국에서 이게 무슨 일일까? 게다가 특정 종교 때문이라는 게 과연 2020년에 벌어질 일인가? 아니 벌어져도 되는 게 맞나? 다시금 달력을 본다. 2020년이 맞다. 그런데 세상의 종말을 믿는 특정 종교를 중심으로 전염병이 번지고 있다고 한다. 흑사병이 번지던 중세 유럽이 아닌데, 역병이 번지던 조선시대가 아닌데. 2020년에 벌어질 만한 일이 이게 정말 맞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됐다.      

머릿속이 윙윙 울리고 현재가 현재답게 자각되지 않는 시간,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읽었다. 1930년대에 작가가 미래를 상상하며 쓴 글이지만 현실과 신기하게도 닮아있다는 그 책 말이다.      

멋진 신세계에서 설명하는 세계관에서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며 아이를 낳지 않는다. 아이는 공장에서 신분에 맞춰 생산된다. 현시대에 갖고 있는 도덕적 잣대와 달리 소설에서는 어릴 때부터 성적 유희를 즐기며 일부일처제는 끔찍한 논리다. 누구든 원한다면 성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 가족 등의 가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부모와 자식은 수치스러운 뜻이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소마다. 슬픔, 괴로움, 외로움, 아픔 등 보편적 감정을 없애기 위해 사람들은 수시로 소마를 먹는다. 마약의 비유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고통 없이 사는 삶을 상상해봤는데 어떤 다큐에서 통증을 못 느끼는 병에 대해 본 뒤로 고통의 양면성을 알게 됐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그런 통증을 과학으로 해결한다. 항상 쾌적하고 젊은 외모와 건강을 유지한다. 물론 건강은 유지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수명은 짧다. 낡은 것은 버리고 늘 새 것을 사용한다. 이들을 문명인이라 부른다.


그리고 현시대의 우리와 같이 사는 이들은 야만인이라 불리며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산다. 하지만 연약한 분열이 시작된다. 멋진 신세계에서 일률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일부가 생기고,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문명으로 넘어온 야만인이 생긴다. 그리고 그 간극에서 비극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벌어진다.      


성공했다는 생각이 버나드의 뇌리를 스쳤다.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그는 이제까지 불만스러웠던 세계와 완전히 타협하게 되었다. 세계가 그를 중요한 존재로 인정하는 한 세계의 질서는 훌륭했다. 그러나 그의 성공으로 인해 세계와 화해는 되었지만 버나드로서는 이 질서에 대해 비판을 가할 특권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239p.    


우리의 세계는 <오셀로>의 세계와 같지 않기 때문이야. 강철이 없이는 값싼 플리버 승용차도 만들 수 없어. 사회의 불안정이 없이는 비극을 만들 수 없는 것이야. 세계는 이제 안정된 세계야. 인간들은 행복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단 말일세. 얻을 수 없는 것은 원하지도 않아. 그들은 잘 살고 있어. 생활이 안정되고 질병도 없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복하게도 격정이니 노령이란 것을 모르고 살지. 모친이나 부친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내라든가 자식이라든가 연인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대상도 없어. 그들은 조건반사 교육을 받아서 사실상 마땅히 행동해야만 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뭔가가 잘못되면 소마가 있지. 자네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창밖으로 집어던진 것 말일세. 336p.     


책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줄곧 인용된다. 오셀로와 같지 않은 세계는 고통을 원치 않는 이들에게 완벽한 신세계다. 안정된 건강과 외모를 유지하고 쾌락을 누릴 수 있다. 모친과 부친, 자식과의 관계에서 갈등하고 아파할 필요, 출생의 비밀 따위도 없다. 썸을 타며 애간장을 태울 이유가 없고 연애하다 헤어지거나 바람을 피운다며 상대를 힐난하는 게 더 이상하다. 발전한 과학이 인위적으로 만든 평화, 그들만의 신세계다. 그곳에서 인간들은 확실히 행복하다. 다만 우리가 지금 ‘보편’과 ‘상식’이라 생각하는 삶과 다를 뿐이다.      


실제의 행복이란 것은 불행에 대한 과잉보상에 비하면 항상 추악하게 보이는 법일세. 또한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안정이란 것은 불안정처럼 큰 구경거리가 될 수 없는 법일세. 따라서 만족하는 생활은 불행과의 처절한 투쟁이 지니는 매력이나 유혹과 투쟁이 지니는 장관이나, 정열 내지 회의에 의한 치명적인 패배가 지니는 장쾌함을 갖추지 못하는 것이야. 행복은 결코 장쾌한 것이 아니야. 338p.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무언가를 증명한 뒤에 결혼을 치러야 하는 이른바 ‘야만인’은 이러한 신세계에서 구경거리다. 야만인을 문명에 데려온 키 작은 문명인은 순식간에 인기가 좋아진다. 야만인은 성장과정에서 슬프고 아팠던 순간을 소마로 잊을 수 있었지만 복용하지 않았다. 첫눈에 반한 여자와 쾌락을 즐길 수도 있었지만 마음을 증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는 결국 문명국의 낡은 등대를 은신처로 삼고 숨어들어 자급자족을 시작한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만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368p.     

나는 마지막에 총통이 묻는 것처럼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떠는 현생을 살고 있기에 <멋진 신세계>가 보여주는 디스토피아를 멀리 내다보는 야만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소마를 먹는 문명인들이 야만인과 섞일 수 없는 그들만의 끔찍한 세계관이 최근 일어난 사태와 닮아있다고 느꼈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확진자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자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살았다고 궤변을 늘어놨다. 도대체 어떤 세계관을 갖고 살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민주국가에 사니까 개인의 의사와 삶을 존중해야 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아픔이 없어야 하므로 필요한 약과 식품을 먹는다. 그래서 60대가 돼도 소년소녀의 모습을 유지한다. 젊음을 유지할 수는 없지만 특정 종교로 인해 확진된 이들에게도 공평하게 치료가 이루어진다. 국가재난에 따른 복지비용은 공평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 정치적 자유가 있으니 31번이 태극기 집회에 가도 할 말이 없다.     


이렇게 시국이 지나가면 다시 그들은 다닥다닥 끼어 앉는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고 정치집회에도 나가고 아주 튼튼한 세계관에 따른 거짓말을 일삼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금 반복되지만 누구도 그 개인의 자유를 침범할 수 없다. 그들이 취해있는 세계는 한없이 공고하다.


나를 비롯한 아미들은 일 년을 기다린 인생의 이벤트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특정 종교 신도들을 해할 수 없다. 3월 말에 결혼이 예정돼 있던 남편의 친구는 결혼식이 취소됐다. 예식장을 쓸 수 없고 신혼여행도 갈 수 없단다. 어떤 가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생업을 중단한다. 기쁘게 마무리해야 할 졸업식이 사라지고, 화훼업자들은 울상이다. 어떤 공무원의 사인은 과로로 추정된다. 아무리 국가에서 제지해도 마스크 값은 오르고, 공적 판매가 이루어진다고는 해도 그 마스크가 내 손에 떨어질 가능성은 0%다. 거리는 텅 비었다. 곳곳이 유령도시다. 게 우리가 처한 디스토피아다. 이런 아이러니가 내겐 멋진 신세계다. 반어법이 가득한 신세계다.      


그리고 내가 속한 세계에서는 취소된 콘서트 티켓 값이 통장으로 돌아오자 국가 재난에 보탬이 되겠다며 기부 행렬이 이어졌다. 가해와 피해가 명백해 보이는 이 순간에도 피해자들은 선행을 베풀었다. 반어법이 모두 증발한 신세계다. 불행할 권리가 있지만 자유와 선을 원할 권리도 있어서 참을 만한 진짜 신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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