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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Jun 11. 2020

외로움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그 물건들은 노인들의 행복을 얼마나 유예해줬을까.

얼마 전 막을 내린 화제의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남편이 정신 못 차리고 지른 소리는 충격이었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아, 저 캐릭터는 진정 미쳤구나. 그래,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다. 천지분간 못 하고 가정 파탄 낸 게 잘못이지. 세상에 아름다운 것으로 최고로 치는 사랑에 무슨 죄가 있을까. 그렇게 어떤 감정과 상황에 푹 빠진 사람이 외치는 핵심, 그 사랑이라는 단어에 충격을 받은 이유는 사랑이란 그토록 절대적이며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가치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3월이면 끝날 것 같던 전염병이 벚꽃철을 지나 소풍철을 또 지나고 이제 여름휴가의 계절까지 당도했다. 아무리 조심하려 해도 나 역시 집에만 있기는 어렵다. 마스크를 쓴 채 업무상 자리에 나가고 생활에 필요한 무언가를 사기 위해 집 앞 마트에도 나간다. 반려견 산책도 나가야 한다. 평소처럼 활발하게 활동하진 못하더라도 집 밖에 아예 발을 못 내미는 상태는 아니다.


그럼에도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아쉬움에 젖어 마음이 무겁게 끌리고야 만다. 봄부터 초여름이면 곳곳으로 다니던 여행, 간단히 도시락을 만들어 남편과 동네 공원에 앉아 나눠 먹던 날들이며, 함께 독서모임을 하는 사람들과 나누던 대화라던가. 아쉽고 그리운 게 너무 많은 데다 더위에 취약한 몸뚱이는 마스크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러다 찰나의 고비가 찾아왔다. 여느 때처럼 재난문자가 도착하던 오후, 옆 도시의 확진자 주민이 우리 동네를 알차게 방문하고 다닌 바람에 알림 문자가 연달아 전화기를 울리고 있었다. 문자에 적힌 건물의 이름은 생소했고, 지도 위에 건물 이름을 올렸다. 지도상의 좌표는 낯익은 어느 구역을 가리켰다.


그 건물의 한 층에는 우리 반려견이 종종 가는 반려견 놀이터가 위치했다. 그리고 확진자가 다녀간 그 날 그 시각, 남편은 반려견을 놀이터에 맡기고 왔다. 카드결제 문자를 다시 확인하며 시간대를 확인하자 하늘이 노래진다는 말이 무엇인지, 푸르고 하얀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하늘이 노래지려면 어느 정도의 일이 벌어져야 하는지 온몸으로 깨달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철푸덕, 앉아 일단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하니 남편 역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기억을 곱씹은 남편은 함께 승강기에 탄 여성 동승자들이 있었고, 그들이 2층에 내렸다고 말했다. 건물의 2층은 확진자가 나왔던 문제의 그 장소였다.


남편과 전화를 끊자마자 반려견 놀이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날 그 시간에 방문했는데 방역당국에서 따로 연락이나 안내받은 게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질병관리본부와 보건소에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 남편도 확인 차 다시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남편은 검사대상이나 접촉자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는 건 아닌지 채비를 하던 나는 연락을 받고 다시 안정을 찾았다. 감전됐던 전기가 빠져나가는 촉감이 몸 언저리마다 남아있었다.


그렇게 당황과 절망을 경험하며 같은 건물에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에 대해 이후 자연스레 알게 됐다.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는 걸 짐작할 수 있는 장소의 이름으로 떴다방이니 다단계방이니 그런 것에 대해 말이다. 추가로 받은 안내 문자에 노인층을 대상으로 홍보관, 떴다방 등 집합 판매장소 출입을 자제하라고 온 걸 보면 암암리에 활약하고 있는 불법적인 장소가 전염병 확산에 큰 몫을 한 건 분명했다.


어딘가에서 불법적인 상품 판매와 투자유치가 벌어지기야 하겠다만 그게 내가 사는 동네의 어디에서 벌어질 줄은 몰랐다. 게다가 그게 나와 내 가족의 안전에 균열을 줄 거라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확진자의 동선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이게 뭐지?’라고 의문을 가진 그 장소는 연령이 어느 정도 높은 이들을 상대로 건강보조식품이나 생활용품 등을 판매하는 곳이라고 했다. 사은품을 많이 준다고 현혹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고가의 물건을 강매한다고도 한다. 부동산 투기도 벌어진다고 하니 온전한 정신으로 발을 들일 곳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주 오래전 일하던 회사 건물 지하에도 그런 곳이 있었다. 한 번씩 외근을 다녀오거나 건물을 드나들 때면 지하 사무실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나오던 할머니들과 숱하게 마주쳤다. 가슴팍이나 손에 물건을 바리바리 들고 나오던 할머니들을 보며 직원들은 수군거렸다.

“저기 다단계 하고 그런 곳이래.”

“외로운 노인들 대상으로 저럼 안 되지.”


그렇게 혀를 끌끌 차며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으며 지하에서 빠져나온 노인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다시금 외로운 골방으로 돌아가는 할머니들의 어깨는 여렸다. 그래도 꿈에 부풀어 오른 그 표정만큼은 당당하고 건강했다. 충분한 감정교류와 소통이 없는 노인들은 비위를 맞춰주고 기분을 살살 달래 가며 손에 물건을 쥐어주는 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을 터. 무언가에 홀린 듯 한가득 가져간 그 물건들은 노인들의 행복을 얼마나 유예해줬을까.


나의 하늘을 노랗게 만들었던 이번 해프닝은 오래전 그 행복에 심취한 할머니들의 얼굴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외로워서, 너무 심심해서 그곳에 모였을 사람들. 혹은 일확천금이 남 얘기가 아닌 내 얘기가 될 것 같아서 방문했을까. 생에 대단한 행운과 행복을 진정 그 장소에서 얻어낼 수 있을 거라 믿은 걸까?


혹여나 확진자 당사자를 만나기라도 한다면, 하고 상상해봤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 방문하느냐고 따져본다면 말이다. 그렇게 따져 물었을 때 상대가 천지분간 못 하던 <부부의 세계> 속 남편처럼 대답한다면 나는 뭐라 대응할 수 있을까?

“외로운 게 죄는 아니잖아!”


그래, 외로운 게 죄는 아니다. 외로움에 시달리다 못해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의 죄를 어디에 묻겠는가. 사랑에 빠진 자체가 죄는 아니듯 외로운 건 죄가 아니다. 외로운 나머지 할 짓 못 할 짓 구분 못한 채 푼푼거리며 돌아다닌 게 잘못이라면 잘못일까.


떠들썩했던 드라마 <부부의 세계>를 보며 극 중 인물의 불륜 배경을 모두 이해하기 어려웠던 만큼, 확진자의 동선과 행동 역시 이해하긴 어렵다. 불법적인 집합장소에 드나드는 바람에 최근 확진자의 수를 늘렸던 그들이 내 예상대로 외로워서 그랬는지, 혹은 욕심이 나서 그랬는지 그 속내는 영영 모를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지도록 가족의 안전에 위협을 느꼈기에 나는 이런 소식에 눈을 흘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린 너무 덥다. 얼굴을 덮은 천조각 속에서 땀이 흐르고 열감이 피어오르는 통에 몹시 덥고, 뜨겁고, 원망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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