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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r 02. 2021

인생은 돌아오는 거야

이 시대에 권선징악은 사라졌어도 인과응보는 작동하고 있다.

멀리 부산에 다녀올 일이 생겼다. 내가 사는 곳이 KTX가 다니는 북쪽의 거의 끄트머리 격이라 반도의 다른 끄트머리까지 가는 일정에 마음이 수런거렸다. 이동수단은 기차로 정했다.


예약하려고 접속해보니 코로나 19에 대응하고자 좌석을 창 측부터 배정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 나와 남편이 2자리를 예약하면 옆에 나란히 앉는 게 아니라 앞뒤 혹은 통로 건너 옆에 앉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우선은 창 측 배정이지만 예약자가 많아지면 나머지 좌석도 예약을 진행된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나와 남편의 자리를 앞뒤로 예약했다.


그리고 출발하기 전날 저녁, 동네에서 필요한 것을 구입하고 남편과 공원을 산책하던 중이었다. 늘 옆에 나란히 타고 다니던 기차를 앞뒤로 타야 하는 게 어쩐지 우리가 내외하는 사이 같아 생경했다.

“여보, 우리 내일 앞뒤로 가야 하잖아. 그런데 아까 보니 우리가 예약한 열차가 매진이더라고. 결국, 우리는 앞뒤로 앉지만 우리 옆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있겠지?”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상황 봐서 옆에 앉은 분께 바꿔 달라고 요청해봐야지.”

“싫다고 할 수도 있잖아.”

“그런가? 그런데 부부나 커플이 나란히 앉고 싶어서 바꿔 달라고 부탁하는데 거절하는 사람이 있을까?”

남편은 정말 대수롭지 않았다. 그냥 내게만 대수로웠다.

‘여보, 거절하는 사람이 당연히 있지 왜 없겠어. 바로 여기에 있잖니….’

정말 이렇게 돌아오기도 하는구나, 부메랑 같은 인생.


이미 오래전이었다. 십 년도 더 지난 듯하다. 지방 취재가 많아 KTX에 살다시피 하던 나는 따뜻한 낮 시간에 창가 자리에 앉아 서울을 오며 가며 지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날도 아침 일찍 왕복 기차표를 예약했고 어김없이 창가 자리였다.


그리고 그 일은 지방에서의 일을 마치고 올라오는 기차에서였다. 창가의 내 자리에 앉아 가방을 풀고 겉옷도 벗고 편안하게 쉴 준비를 완료하고 눈을 감으려는 찰나, 옆에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이 말을 걸었다.

“저 죄송한데요. 저희가 남은 기차표를 사서 탔더니 떨어져 앉아야 되는데요. 혹시 자리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


보아하니 커플이 구입한 두 장의 표 중 한 장은 내 옆 통로 측 좌석이었다. 무슨 사연인지는 알 수 없다만 평일의 어느 날 풋풋함을 떨궈내지 못한 젊은 커플이 봄나들이라도 다녀온 모양이었다. 여자는 수줍음이 많은지 웃으며 내 얼굴을 보기만 했고, 부탁은 남자가 하고 있었다.

아, 짐도 풀고 옷도 개어놓고 자리를 잡았건만. 귀찮기는 했지만 내 편안함이 커플의 행복한 시간을 찢어놓는 거라 생각하니 찜찜하긴 했다.

“바꾸게 되면 자리가 어딘데요?”

“아, 저기 저 자리예요.”

남자가 가리킨 다른 한 장분의 자리는 조금 떨어진 곳의 통로 측 좌석이었다.

‘창가 자리 내주고 통로 자리 가긴 싫은데.’


솔직한 속내였다. 창가와 통로가 천지차이는 아니지만, 창가는 적어도 지루할 틈을 주진 않는다. 그리고 남자분이 깍듯하게 부탁하는 내내 무슨 일인지 나는 점점 속이 꼬여가고 있었다.


커플에게 자리를 바꿔주는 건 배려일 수 있다. 커플까진 아니고 썸 타는 이들에게도 배려일 것이다. 아니면 한쪽이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사이에서는 어떠한가. 아니면 헤어지는 중인 커플에게도 배려인가. 짧은 몇 초 사이에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결론은 거절이었다.

“싫어요.”

남자는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네?”

말없이 웃고만 있던 여자의 얼굴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저는 그냥 제 자리에서 가고 싶어요. 제가 표를 구입한 이 자리에서요.”


방금까지 깍듯하게 말하던 남자는 아쉬운 표정으로 본인의 통로 쪽 자리로 돌아갔다. 당연히 바꿔줄 거라 기대했을 것이다. 고작해야 두 시간 남짓 떨어져 있어야 했지만 남자는 가기 전 내 옆자리의 여자에게 간단한 인사도 남겼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가는 내내 옆자리 여자의 얼굴에 붉은 기색은 가실 줄을 몰랐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 매섭게 대답하거나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내가 어떤 이유로 자리 옮기는 게 어렵다고 말해도 되고, 기껏해야 두세 시간 걸리니까 바꿔줘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심술이 부풀어 올라 기차표의 권리를 잔뜩 행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또 하나 솔직히 말하자면 내 자리에 남겠다고 딱 잘라 말하면서 나는 작은 쾌감을 느꼈다. 일종의 고소함. 그건 당시 내가 솔로였기 때문에 열등감이 폭주한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자리를 바꿔가면서까지 달라붙어 있고 싶은 커플에게 못되게 굴고 싶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건 분명한 어깃장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 그날 일을 떠올린 적 있다. 아마 그 커플은 나중에 내 욕을 했을까?

“아까 그 여자, 그냥 좀 바꿔주지 뭘 그렇게 거절을 하냐.”

“그 여자 남자 친구 없을 거야.”

“심성이 그래서 분명 솔로일 거야.”

물론 내 욕을 안 했을 수도 있다. 방금 적은 저 말들은 내 머릿속에서 스스로를 놀린 말에 불과하니까.

그 이후 자리를 바꿔 달란 요청을 들은 적이 별로 없지만 거절한 기억도 없다. 내 자리 하나 고집해서 그야말로 부귀영화를 누릴 것도 아니고, 고집부릴 소재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리고 당장 내일 기차를 타야 하는데 남편과 떨어져 앉는 게 싫어서 자리를 바꿔달라 요청해볼 생각을 하면서 나는 어쩐지 거절을 당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만약 거절을 당한다면 과거 어깃장의 인과응보다.


그래, 이렇게 불안하게 기차를 탈 순 없다. 남편에게 과거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남편은 설마 그런 사람이 있고, 그게 내 아내라는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진짜 그러는 사람이 있구나. 여보, 이제 좀 착하게 살아.”


앞으로 착하게 산들 내일 찾아올 나의 인과응보는 어찌할 것인가. 상대가 “저는 그냥 제 자리에서 가고 싶어요. 제가 표를 구입한 이 자리에서요.”라고 말한들 어쩌겠는가. 나는 그저 얼굴을 붉히며 “그렇죠, 이건 제 업보입니다.”라며 부메랑 같은 인생을 품어야만 하는 것을.


사람은 하는 만큼 돌려받는다. 베푼 만큼 받기도 한다. 이 시대에 권선징악은 사라졌어도 인과응보는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답은 없다. 나는 내일 기차에서 얼굴을 붉힐 준비나 하고 잠을 청하기로 했다.



* 다행히 저처럼 못된 인간은 기차에 더 없었습니다. 다들 친절하게 자리를 바꿔주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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