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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Oct 07. 2021

will you still loveme tomorrow

인상적인 음악은 기억이 주렁주렁 달린 크리스마스트리와 같다.

십 년쯤 전이었다.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인이라고는 해도 남녀 사이의 적정한 호감이 있는 사이였다. 남들이 말하는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그와 서른을 코앞에 둔 나는 서로를 ‘괜찮은 이성’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확고한 감정이 생기지 않아 지인 너머로 발을 내밀지 못한 상태였고, 그 역시 내게 호감을 표현하고 상당히 친절했지만 깊이는 없었다.


어느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는 출근길에서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오늘 아침 출근하는 차 안에서 어떤 노래를 들었거든. 근데 너무 오랜만에 마음이 들뜨는 거야. 정말 너무 들뜨고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눈물이 날 것 같더라. 그 감정이 조절하기 어려워서 운전이 힘들 정도였어.”

“어떤 노래기에 그 정도로 들떴어?”


그 곡은 잉거 마리(Inger Marie)의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곡을 찾아 틀어봤다. 평소 재즈를 좋아하던 터라 금세 그 곡에 마음이 녹아들었다. 피아노 건반이 녹진한 소리가 만들어내는 감각이 좋았다. 피아노 곁의 타악기가 잔잔하게 곁들여지는 것도 좋았다. 잉거 마리의 담백한 목소리는 이미 몇 차례 사랑에 빠져봤으면서도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에 빠져드는 처럼 굴었다.


이 곡을 들으며 마음이 몹시 들뜨고 설렜다는 그의 말을 되새겨봤다. 하지만 그와 달리 나는 이 곡의 들뜸 아래 숨겨진 씁쓸함이 크게 다가왔다. 왠지 모를 들뜸과 함께 알 수 없는 씁쓸함이 듣는 내내 주위로 흘렀다.

특히 일요일 아침이면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를 틀어놓고 씁쓸함을 만끽했다. 운전이 힘들 정도로 들뜨게 했던 그 남자의 마음을 이해할 틈 없이 나는 씁쓸함에 잠식돼 그 뒤로 일요일 오전을 내리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로 보냈다. 실컷 늦잠을 잔 뒤 푹신한 거위털 이불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뭉근하게 받으며 내일이 돼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줄 거냐는 노래를 답 없이 반복해 들었다.


그리고 이 노래가 전조가 된 듯 그와는 불미스러운 일로 멀어졌다. 격한 호감을 드러내면서도 못내 깊이가 없던 그는 나 말고도 다른 여성과도 교류하고 있었고, 급기야 이름을 헷갈리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서로의 관계망에서 삭제되고 말았다. 당시에는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지나고 나서는 실패한 연애담이나 우스갯소리를 나누는 자리에서 소재로 활용됐고 이젠 그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일상에서 그가 사라졌음에도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를 들으면 영문도 모른 채 각자에게 찾아온 감정들이 떠오른다. 같은 곡을 듣고도 설렘과 들뜸을 주체하지 못하던 그가 있고, 주말 아침을 간결한 씁쓸함에 휩싸여 홀로 지내던 내가 있었다. 그리고 십 년이 넘은 지금도 나는 일요일 아침이면 거실 오디오에 이 곡을 틀어두고 커튼을 젖힌다. 늦은 아침 식사를 할 때도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는 끝나지 않는다.      


Tonight the light of love is in your eyes But, will you love me tomorrow.

오늘 밤 당신의 눈 속엔 사랑의 빛이 반짝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내일도 나를 사랑할 건가요?

Will you still love me tomorrow

내일도 변함없이 날 사랑할 건가요?     


사람은 기억하기에 너무 많은 경험을 훗날 잊지 않도록 음악이나 사물 따위에 부여하는 걸까? 인상적인 음악은 기억이 주렁주렁 달린 크리스마스트리와 같다. 얼굴도 이름도 남아 있지 않은 그는 내게서 휘발됐지만 20대의 한 시기에 각자에게 찾아온 감정은 내내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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