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귀리밥 Sep 15. 2017

미완의 유언장

내 생을 한 장의 일기로 남긴다면


혼자 생활하던 시절, 유언장을 작성했다. 자취를 시작한 지 몇 달 지난 깊은 가을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던 중 고독사 한 중년 남성의 소식을 접했다. 일용직으로 일하던 중년의 남성은 작은 원룸인지 빌라인지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일용직 일이 끊기고 생계가 어려워진 남자는 베란다에 목을 매 자살했다. 마침 가을바람이 잘 불어 통풍이 잘 되는 베란다였고, 시체 썩는 냄새도 나지 않을 정도로 시신은 잘 건조돼 ‘미라’ 상태가 됐다고 한다.


건조가 잘 된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이유로 남자는 죽은 지 몇 달이 지나 발견됐다. 집세가 몇 달 밀린 채 연락이 안 되자 집주인이 문을 열고 들어가 발견한 것. 어찌나 건조가 잘 됐는지 집주인이 처음에 마네킹인 줄 알았다고 증언했다. 유서는 없었다. 중년의 남자는 그렇게 건조한 고독사를 맞이했다.


그 뉴스는 굉장한 충격이었다. 하필 자취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에 ‘고독사’라는 개념이  나를 옭아맸다. 고독사, 주변과 단절된 채 홀로 살다 죽음에 이르는 것. 나처럼 친구가 많지 않고,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사람이 죽으면 그게 바로 고독사가 아닌가. 게다가 애인도 없었다.


열심히 나이를 먹어 서른을 넘겼는데 애인은 없고, 이대로 나이를 더 먹으면 지금보다 애인 발생률은 더욱 낮아질 거라 판단했다. 더 문제는 앞으로도 애인을 없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슬프지만 인정해야 했다.

‘나는 고독사 할지도 모른다.’


얼른 컴퓨터를 켰다. 부팅되기도 전에 눈물이 고였다. 내가 생각하는 고독사는 절대 자살은 아니었다. 자살할 일이 없는 이유는 나는 누구보다 겁이 많아서 절대 스스로 몸에 해를 가할 리 없었다. 가능성 높은 고독사 사유는 ‘욕실에서 넘어져 뇌출혈이 온 경우’, ‘고열에 시달려 끙끙거리다 그대로 사망’, ‘가위에 눌렸는데 풀리지 않아서 그대로 심장마비’ 정도였다. 그 광경을 상상하니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문서 화면을 켜고 심호흡을 한 뒤 유언장 작성을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유언장을 작성하던 당시의 모습과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모습이 매우 비슷하다. 원피스 잠옷을 입고 컴퓨터 앞에 앉아 유언장을 쓰던 나의 모습. 같은 컴퓨터를 앞에 놓고 당시에는 유언장, 지금은 에세이라니. 과거의 내가 조금 부끄러워진다.


하여간 당시 빈 문서에 유언장을 작성하는데, 무엇을 쓸지 일단 생각해 봤다.

‘보통 유언을 남기면 유산을 누구에게 줄지 쓰지 않나?’

그래, 일단 내가 가진 것을 누구에게 배분할지 써야겠다고 정했다. 당시 보유한 예금, 은행명, 비밀번호를 적었다. 갖고 있는 옷과 가방 중 값이 비싸거나 구하기 힘든 물건들을 적어놓고 누구에게 줄지 썼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이런 내용은 굳이 안 써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보유한 것이 생각보다 너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없어도 너무 없었다. 예금을 나누느라 잔고를 확인해 보니 다음 달 생활비 정도가 남아있었다. 카드값나가고 나면 그나마도 없어질 예정이었다.


당시 살던 원룸의 보증금을 떠올렸는데, 그나마도 얼마 안 돼 장례를 치르고 나면 몇 백 남지도 않을 돈이었다. 옷과 가방 중 값진 것을 적어봤는데 네다섯 개 밖에 되질 않았다. 아, 금전적으로 굉장히 빈궁해 보이는 삶이다. 얼굴이 화닥화닥해져 지금까지 쓴 내용을 지웠다.


‘그럼,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겨야 하나?’

그렇다. 별로 없는 재산을 꾸역꾸역 나누느니 생전의 인연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는 편이 차라리 좋은 유언이 될 터였다. 유레카를 외치는 기분으로 다시 유언장 작성을 시작했다.


‘엄마, 먼저 가서 미안. 너무 슬퍼하지 말고, 술 마시지 마세요.’

‘언니들, 엄마를 잘 부탁해. 특히 둘째 언니는 조카 때리지 마. 언니 아들이지만 내 조카이기도 해.’

‘오랜 친구인 **아, 전 여자 친구는 그만 잊고 새 출발 하길 바란다.’



이런 식으로 쓰다 보니 그다지 감동도 알맹이도 없는 유언장 2 페이지 정도가 나왔다. 문제는 후반부였다. 쓰다 보니 내가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할 말이 엄청 쌓였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회사 사람들에게는 주로 ‘정신 차려라’, ‘인생 그렇게 살지 마’, ‘치사한 놈’ 등의 악담이 대부분이었다. 생각보다 내 인간관계가 별로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2 페이지였다.


이대로 유언장을 남기면 죽기 전 사람들에게 불만만 잔뜩 토로하고 떠난 속이 꼬인 사람이 될 지경이었다. 실패한 유언장은 다시 삭제.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가 원하는 장례방식에 대해 간단히 쓰기로 했다. 유언장다운 유언장은 역시 원하는 장례식 구상이 아닐는지.


한 시간 정도 고민하고 썼는데 거창하게 유언장이라 부를 것도 없었다. 단 한 줄이었으니까.

수목장으로 처리해 주세요.’


한 줄 쓰고 나니 딱히 할 말이 없어 끝내 날짜와 이름, 주민등록번호를 쓰고 저장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렇게 수정, 변경이 가능한 파일 형태의 유언장은 효력이 없다고 한다. 정확한 서명까지 들어간 뒤 공증을 해야 한다나. 유언으로 남길 게 별로 없다는 걸 안 뒤 유언장을 더 이상 쓰진 않았지만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해 가족들과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것을 잊지 않기로 했다.




나의 유언장 작성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유언장을 작성했다는 사실을 주변에 털어놓으면 그 순간 사람들은 나를 ‘우울한 사람’,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 정도로 인식했다. 죽음에 대비한다고 해서 꼭 우울한 것은 아닌데 말이다. 다만 당시에 고독사를 걱정하고, 불안해한 것은 맞다.


유언장을 쓰기 시작해 수정하고 삭제하고 다시 쓰고 저장하기까지 걸린 몇 시간 동안 나는 부끄러움과 초라함을 느꼈고, 단 한 줄의 장례방식만 적고 마무리했다. 다 쓰고 침대에 누워 생각해보니 유언은 내 삶을 통틀어 쓰는 일기였다. 하루의 일과를 적는 일기는 어렵지 않다. 기억하는 대로, 그에 맞는 생각을 적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유언장은 달랐다. 삼십 년 넘게 지속된 삶이 끝난다는 가정 하에 남길 수 있는 삶의 함축, 그리고 원하는 바를 분명하게 적어야 했다. 다시 유언장을 써야 한다면 꽤 오랜 시간 유언을 고민한 뒤에 작성할 예정이다. 인생의 마지막 글일 것이다. 유언장엔 가진 것을 적당히 배분하고, 덕담이나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가진 것은 살아있는 동안 배분하고 나누면서 살아도 되고, 덕담은 유언이 아니라 평소에 연락해 말해도 되는 것이었다. 그저 죽음이라는 게 서글프다며 꺼이꺼이 하면서 푸념하는 유언장을 쓰진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직 새 유언장은 쓰지 않았다. 남편에게는 몇 가지 당부만 해둔 상태다. 남편은 그런 소릴 왜 하냐고 뭐라 하는데, 유언장에 그 내용을 쓰지 않고 평소 말하는 이유가 있다. 유언장에 쓰기엔 부끄럽고 째째해서 내 인생 마지막 글로 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은 유언장이 아니니 먼 훗날이라도 남편이 잊지 않도록 당부글을 몇 줄 남기겠다.


‘나 죽고 재혼 바로 하지 마!’

‘최소 3년은 재혼하지 말고 날 추모해! 안 그러면 귀신이 되어 찾아오겠어!’

‘나 없다고 밥 대신 아이스크림 먹지 말고, 밥을 먹어.’

‘잔소리하는 사람 없어도 잘 씻어야 해. 알았지?’

‘고기 먹고 오면 옷은 장롱에 바로 넣지 말고 탈취제를 뿌리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