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른다.
얼마 전 친구로부터 기이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교회의 친한 지인의 이야기였다. 지인은 3년간 교제한 남자 친구와 결혼식을 올렸다. 연애 기간과 결혼 준비과정은 순탄했고, 좋은 날짜에 식을 치렀다. 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위해 공항으로 가는 채비 중에 남편이 두고 온 물건이 있다며 잠시 집에 들른다고 했단다. 중요한 물건인데 집이 멀지 않으니 금방 찾아서 바로 공항으로 간다며 지인에게 먼저 공항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고. 지인은 남편의 말을 듣고 공항에 가서 기다렸고, 10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남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남편이란 사람은 대체 왜 안 온 거야?”
“신혼여행 직전인데 어이없지? 그런데 안 온 이유가 더 어이없어.”
남편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양다리 때문. 결혼식을 올린 지인 외에 깊이 사귀고 있던 여자가 있었고, 식까지 치른 후에 신혼여행을 앞두고 돌연 ‘내 진짜 사랑은 그녀인 걸 알았다’며 도망을 친 것이다. 촌스럽지만 ‘사랑의 도피’다.
“와, 그럴 거면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지!”
“내 말이. 그런데 그 남자도 자기 마음을 잘 몰랐던 것 아닐까? 그러니까 큰돈 들여서 결혼식도 치르고 말이야.”
생각해봤는데 연애 기간 내내 조용했고, 식도 잘 치른 마당에 도망을 친 남자는 어느 지점에서 도망을 결정했을까? 식장으로 가득 들어오는 햇볕, 진심이 담기지 않은 혼인 서약, 마음과 동떨어진 축가, 피곤함. 어디쯤엔 도망을 결정하게 한 어떤 포인트가 있을 것이다.
나도 가끔 도망을 가거나 도망을 상상한 적 있다. 헤어지고 싶은 남자에게 예의를 차려 조심스레 이별을 말했는데 상대가 알아듣지 못해서 화장실에 가는 척 도망을 친 적 있다. 그날 밤늦게까지 전화와 문자가 왔지만 이미 도망간 마음은 세상 무엇보다 빠르게 멀어졌다. 도망친 그날 밤 나는 아주 달게 잤다. 아침에 일어나 전화기를 보니 아주 뜨끔할 정도로 상스러운 욕 문자가 가득 와있었다. 욕설을 하나하나 읽으며 개운한 아침식사를 먹었다.
또 한 번은 도망을 치진 못하고 상상만 한 적 있다.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도망은 삶과 현실에 직접 닿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봄, 가을에 자주 도망을 가고 싶었다. 봄은 걷기만 해도 꽃이 흩날리고, 어느 커다란 꽃나무 근처를 지나갈 때면 화사한 향기가 길게 늘어져 있다. 마음이 들뜨지만, 들뜸은 회사로 향하는 길에서 짙은 안색을 내보인다.
‘꽃도 보고, 예쁜 것도 보고, 즐겁게 살기 위해 일을 시작했는데 왜 즐겁지 않지?’
이런 생각이 가득했던 시절이다.
가을도 마찬가지다. 온통 단풍이 들고, 매년 보는 붉은색과 노란색인데도 매년 설렌다. 단풍이 막 물들기 시작할 무렵엔 가을이 당도했다는 사실에 설렌다.
‘올 가을엔 원 없이 여행을 다녀야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매일 늦게 끝나서 집에 가면 쓰러져 자고, 주말에도 그나마 재충전하지 않으면 월요일에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황에 무슨 여행을 가나.’
이런 생각을 하며 우울해지곤 했다.
회사생활이라는 게 가끔 주인이 누군지 모르는 생활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나라는 존재를 위해, 보람을 느끼고 배움의 가치를 사용하기 위해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보람과 배움과 관계없이 어떤 조직, 타인의 수익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표로 삼은 수익, 결과물을 위해 배움과 존재의 가치와 관계없는 수단과 방법을 쓰고 있다. 조직에 속해있다 보면 나의 두 발이 딛고 있는 지점, 좌표를 수시로 잃게 된다. 잠깐 숨을 고를 틈이 있으면 그제야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지?’
‘이렇게 고단하게 한 일은 누굴 위한 걸까?’
라며 깜짝 놀란다.
도망도 그렇기 때문에 상상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른다. 정말 집중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한 올 한 올 살피지 않는다면,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알기 어렵다. 잘 숨겨져 있던 마음이 어떤 사소한 순간에 실수로 본모습을 드러냈을 때,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반응한다.
그 반응 중 하나가 도망이 아닐까. 그래서 도망 역시 앞일을 모른 채 일단 나가버리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되든,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어떻게 되든, 일단 앞으로 나가버리는 것. 그래서 도망은 순수하지만 충동적이기에 따라오는 결과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마음의 본모습을 마주했다고는 하나, 마음이 사건을 책임져 주진 않으니 말이다.
친구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랑의 도피라니, 얼마만의 드라마인가.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됐어?”
지인 쪽에서 소송을 걸었고, 몇 년 간의 법정싸움 끝에 승소해 금전적 보상을 받았다고 한다. 남자 쪽에서 잘못한 게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으니 보상하지 않겠다고 버틴 모양이었다. 3년의 연애는 걷잡을 수 없이 혼탁해졌고, 법정싸움으로 인해 도망의 손길을 내민 제3의 여자도 곱게 살진 못했을 것이다. 여러 모로 고단한 사랑을 선택한 게 분명하다.
여자 입장에서도 보상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구분이 어려운 결말이었다. 마음을 잘 살피지 않은 남자로 인해 3년의 기억과 결혼식의 추억을 모조리 잃었으니, 새로운 사랑을 하는 것도 괴롭지 않을까.
친구는 말을 이어갔다.
“다른 여자가 있었다면 차라리 결혼 전에 털어놨어야지. 그럼 일이 이렇게 커지진 않았을 텐데. 양쪽 다 몇 년 동안 힘들었잖아. 누구를 위한 도망일까? 그 상대 여자는 그렇게 남자가 돌아왔다고 해서 행복할까?”
도망은 마음을 몰라서 하는 행동. 도망의 불길을 당기는 것은 마음의 농간. 마음이 하나의 인격이라면 그 인격은 육체에 장난을 친 것이다.
상상은 현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탈, 도피 등의 단어에 짜릿함을 느낀다. 어떤 관계에서나, 어느 장소에서나 도망치고 싶은 순간은 수없이 마주하게 된다. 친구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앞으로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생기면 마음을 똑바로 마주 보기로 다짐했다.
사소한 충동이 사건으로 번지기 전에 ‘도망치고 싶다!’고 느껴지면 ‘이건 마음이 주는 신호!’라며 먼저 자신을 관찰부터 하기로 했다.
이런 나의 다짐도 마음이 들었겠지? 도망 대신 꼭 다급한 마음의 신호를 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