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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y 20. 2024

그날의 피난처에서는 딱 좋은 커피와 소금빵을 팔고있었다

no more bitter

자그마치 6년이었다. 6년간 그 길목에선 소름이 돋았다. 회색 병원 건물 내부는 따뜻한 조도의 조명과 친절한 의료진 덕분에 쓸쓸한 분위기가 덜했음에도 그랬다. 아무리 친절한들, 아무리 인테리어가 포근한들, 내 몸 안에 ‘혹’은 불편한 존재였다.


6년 전 통증이 낭낭한 가운데 처음 그 병원을 찾았다. 많이 검색해 보고 간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몸 안에 혹이 여러 개 있고, 모양조차 특이해서 조직검사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종양일 가능성을 말하는 거였다.


그리고 조직검사를 할 땐 종양의 여부를 떠나서 검사 자체가 끔찍했다. 피부에 바른 마취 크림은 피부에만 효과를 발휘했다. 굵은 주삿바늘과 같은 금속이 피부를 뚫을 때는 그럭저럭 괜찮지만, 그 안에 켜켜이 자리한 근육과 혈관을 뚫고 이상한 모양의 혹에서 조직을 뜯어낼 땐 도무지 괜찮지 못했다. 뚫고 뜯어내는 모든 움직임이 생생했다. 너무 아팠다. 날카로운 데 피부가 스치면 앗, 소리를 내지만 너무 아플 땐 소리조차 낼 수 없는데 그때가 그랬다. 몸이 반응하며 눈물이 줄줄 흘렀다. 출혈도 잘 멈추지 않았다. 지혈이 은근히 오래 걸렸다.


다행히 조직검사 결과는 종양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추적검사를 하고, 추적검사 후엔 자꾸 늘어나는 혹 때문에 조직검사를 하고, 다시 고통받는 과정이 6개월마다 반복됐기 때문이다. 그게 너무 싫어서 1년쯤 병원에 안 가기도 했다. 다시 방문했을 땐 의사로부터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환자분은 추적검사 대상인데 검사를 1년이나 안 하면 어떡해요? 정말 큰일 나고 싶으세요?”

그렇지만 너무 싫고 무섭다고, 마음속에서 웅얼거렸다. 끝이 없을 것 같은 반복에도 질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6개월마다 병원 문턱을 넘었다.


그러다 지난여름 무렵이었다. 검사 날이었다. 오전에 일찍 미팅을 다녀오느라 조금 허기가 졌다. 밥을 먹고 들어가자니 거추장스러워 병원 뒤편을 서성였다. 병원 1층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는 왠지 가고 싶지 않기도 했고, 미리 들어가 대기실에서 쉬어도 되지만 최대한 예약 시간까지 밖에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병원 주변은 번화가와 관공서가 빡빡하게 자리하고 있어 어디든 갈 곳은 많았다. 그렇지만 아무 데나 가고 싶진 않았다. 검사는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쉬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러다 파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이름의 쓰인 아담한 카페를 하나 발견했다. 카페 내부는 살짝 좁으면서 긴 형태였다. 나무로 된 벽면 안쪽으로 몇 개의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테이블도 모두 아담했다. 한두 명 단위의 손님들이 머무르다 가기에 알맞은 모습이었다.

일단 들어가 소금빵 하나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커피를 마시고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긴장과 두려움을 좀 달랠 수 있을까. 검사를 앞두고 늘 작고 허우룩해지는 내가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이 지긋지긋한 검사는 언제쯤 인생에서 내칠 수 있을까.


창밖을 보며 골몰해지는 가운데 메뉴가 준비됐다. 아주 심플한 모습이었다. 외형과 같이 소금빵은 담백했고, 아메리카노는 묵직한 풍미를 담고 있었다. 내가 커피와 빵을 먹는 동안 키가 작은 카페의 여주인은 함께 일하는 직원 혹은 남주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포슬한 재잘거림이 좋았다. 걱정과 두려움으로 칙칙하게 흐트러진 나와 대조되는 웃음소리가 나긋나긋 돌아다녔다.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어딘가에서 이렇게 나긋하게 웃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잠시나마 걱정에서 벗어나 있는 거겠지. 그런 웃음소리가 이어지는 삶을 살고 싶었다.


시간이 다 되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카페 바로 앞 회색의 병원으로 들어갔고, 끔찍한 검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이날은 내가 6년 만에 추적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판정을 받은 날이었다.

“혹이 늘어나지 않았고 모양에 변형도 없어요. 축하해요. 이제 추적검사 끝나셨어요. 그래도 2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은 꼭 받아야 해요.”


이날 의사에게 “정말요?”를 얼마나 많이 물었는지 모른다. 끝이 없을 것 같은 반복이 끝났다. 6개월마다 작아지던 나도 끝났다. 병원에서 나왔을 때 얼마나 개운했는지 모른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알리고, 집에 돌아와 강아지를 껴안고 안도를 만끽했다.


이후 병원에 가지 않다가 국가 건강검진을 받으러 몇 달 뒤 다시 방문했다. 6개월 주기의 지옥이 끝나서인지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두어 시간의 검진을 마치고 나왔을 땐 아메리카노 한 잔이 너무나 절실했다. 그때 내 눈에 띈 곳은 역시 파란 바탕에 하얀 글씨의 그 카페였다.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늘은 여주인이 없고 남주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금빵과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울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앉아있던 그날과 오늘의 카페는 사뭇 다르다. 마침 읽고 있던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이어서일까.

이 장소가 마치 열차를 여러 번 갈아타고 도착한 후쿠시마현의 Z**마을에 위치한 그 카페와 닮았다고 느껴진다. 건어물점과 침구점 사이에 있는 작은 커피숍, 머핀이 맛있고 커피는 딱 좋을 만큼 씁쓸하고 뜨거워 몸에 스며들었던 냉기가 녹아 사라지는 그곳.


어쩌면 이 카페는 반복되는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반드시 도망쳤어야 할 공간 아니었을까. 쳐다보기도 싫었던 회색의 병원 건물로부터, 끝이 보이지 않는 질환의 위협으로부터,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통증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곳이자 도망칠 수 있었던 곳은 의외로 거창한 장소일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포슬포슬 웃으며 말하는 여주인의 웃음소리와 적당히 좋은 맛의 커피를 파는 작은 가게. 단순히 ‘맛집’으로 불리기보다 ‘도망칠 곳’의 몫을 해내는 그 카페는 오늘도 뚝딱뚝딱 빵을 빚으며 충실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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