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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리밥 May 08. 2024

달과 6펜스

내가 생각하는 달과 6펜스는 동의어에 가깝다

세 번째 <달과 6펜스>를 읽었다. 지난번 책모임 때 다음 책이 달과 6펜스인 걸 알고 ‘아, 나 이 책 2번 읽었는데 누가 추천했지’ 이러면서 조금 짜증이 났는데 아니 이럴 수가. 이 책을 추천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다. 불과 몇 달 전의 나는 어떤 사유를 갖고 흡족하게 이 책을 추천했던 게 분명한데 왜 이제 와서 나는 짜증을 냈을까. 민망해서 다른 누가 나의 모자람을 눈치채고 놀리기 전에 빨리 톡방에 이실직고했다. 하지만 이실직고해도 민망한 건 민망한 거다. 기억력에 있어 자부심이 대단했던 난데, 하루아침에 거리의 조약돌처럼 약소해졌다.     


그래서 다시 몇 달 전의 내 마음으로 돌아가 봤다. 어째서 달과 6펜스를 3번째로 읽자고 했나.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대학교 때였다.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가 하도 극찬을 해서 속으로 ‘재미없기만 해 봐라.’하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너무 내 취향인 거다. 이야기가 몹시도 흠잡을 데 없이 내 취향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러할 텐데 전형적인 인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전형적이라 남들이 밟지 않은 땅으로 방향을 꺾는 자가 소설에선 늘 매력적이다. 나는 그런 스트릭랜드가 좋았다. 그래서 대학교 때 남자친구랑 이 책을 갖고 수없이 떠들고 곱씹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30대 초반에 한 번 더 읽었다. 당시에도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스트릭랜드의 비전형적 성향과 더불어 화자의 생각과 태도에도 끌림이 꽤 컸던 것 같다. 조금은 관조적이면서 냉정하지만 타인의 일에 적당히 개입하고 관찰하면서 삶에 어느 정도 윤리적 선을 지켜나가는 화자의 방식은 꽤 매력적이었다. 그런 담담한 태도는 나 역시 삶에서 갖고 싶은 면모 중 하나다. 위대한 개츠비의 닉과 같은 캐릭터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위대한 개츠비도 꽤 좋아한다.      


그래서 아마도 40대에 들어서 다시 한번 달과 6펜스를 읽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20대에는 스트릭랜드의 그림을 향한 순정과 열정에 매료됐고, 30대에는 스트릭랜드와 주변인들의 삶을 멀리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매료됐다.      

그리고 이제 마흔하나가 된 내가 읽는 달과 6펜스는 어땠는가. 나는 여전히 스트릭랜드의 순정과 열정에 깊이 공감했다. 또 이상향으로 나아갈 때 윤리적 가치가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점도 짚어보고 싶었다. 스트릭랜드는 윤리적으로 보자면 인간쓰레기다. 하지만 윤리적으로 훌륭하지만 그림이 별로라면 존경받는가? 그건 아니다. 인간쓰레기라도 작품이 훌륭하다면 존경받는다. 시대를 넘고 넘어 줄곧 추앙받는다.      


오히려 스트릭랜드는 순수하다 못해 멍청한 인물이다. 스트릭랜드의 아내와 아내의 언니 부부 같은 사람이 만들어둔 사회적 틀과 외부의 시선이야말로 내 기준에서 비윤리적이다. 답답한 감옥과 같은 삶에서 오직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채워진 순수는 달처럼 빛난다.     


작품 해설을 보면 6펜스는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의 은화 값으로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라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로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본다. 동그랗고 차갑게 빛나는 달과 은화 6펜스는 닮아있다. 너무 멀어 손에 닿지 않을 것 같은 달은 동경과 이상의 세계도 돈으로 모든 걸 해석할 수 있는 세속적 세계와 거리가 멀지 않다. 그토록 열정을 쏟아부은 스트릭랜드의 그림은 사후에 전부 금액으로 환산되고 돈으로 논의된다. 사람들은 그림을 갖고 있었다면 비싸게 팔 수 있었을 거라며 안타까워할 뿐이지, 화가가 어떻게 죽어갔는지 어떤 마음으로 모든 걸 버리고 떠났는지 헤아릴 생각이 없다. 이상과 현실은 그렇게 가깝고 닮아있다. 내가 생각하는 달과 6펜스는 동의어에 가깝다. 이룰 수 없는 꿈과 같은 달도 내 손 안의 동전처럼 실상 멀지 않은 존재일 수 있는 거다.      


스트릭랜드의 모델인 폴 고갱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다. 작품의 마지막에 집 전체에 그렸다는 그림은 아마도 고갱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표현한 듯하다. 아주 오래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고갱전을 봤다. 전시의 가장 마지막 작품이 그 그림이었다. 아주 큰 작품인데 그때 그 작품 앞에서 30분 정도 있다가 나왔다. 그때의 감동이 아직도 자세하게 기억날 만큼 고갱과 스트릭랜드를 관통한 달과 6펜스의 메시지는 내 안에 두둑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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