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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방, 첫 집

<내가 너의 첫 문장이었을 때>를 읽으며

by 귀리밥

나의 첫 집은 서른 살을 꽉 채우고 가질 수 있었다. 자가와 전세 여부를 떠나 내가 머무를 수 있는 나만의 집은 원룸이었기에 첫 집이기도, 첫 방이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자취라는 것을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감이 있었지만, 사실 여건이 괜찮다면 자발적으로 홀로서기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취의 사유는 대외적으로 회사와의 거리였다. 하지만 실제 사유는 정말 친한 몇 명만 알고 있었는데, 1년 넘게 엄마가 술만 마시면 결혼하지 말고 본인을 모시고 살라며 울었기 때문이다. 만약 엄마가 가볍게 “나랑 오래오래 같이 살자.”라고 했으면 생각해 볼 만했겠지만, ‘모시고 살라’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울음에 늘 숨이 막혔다.


당장 떠나고 싶었지만 워낙 모아둔 게 없는 욜로 인생이었기에 1년간 꼬깃꼬깃 모은 쌈짓돈으로 서울에 원룸 하나를 구한 사정이었다. 그런 이유로 원룸을 계약하고 집에 돌아가던 버스에서 조금 울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은 온통 빤딱이는 유리를 덮어쓴 마냥 냉랭했다.


그렇게 구한 방은 회사에서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에 위치한 원룸촌에 있었다. 엘리베이터로 6층에 내려 보이는 첫 집이었는데 방과 주방이 분리돼 있었다. 주방이래 봐야 아주 옹색하기 짝이 없는 크기라 고작 할 수 있는 음식은 볶음밥 정도가 다였다. 벽은 당시 유행이 끝나가는 연두색 포인트 벽지로 덮여 있었다. 다행히 창밖에는 다른 건물이 없어 뻥 뚫린 하늘을 볼 수 있었고 커튼을 열면 햇빛이 구석구석 들어와 방안을 소독하곤 했다.


집의 생김새는 이 정도였고, 이 집의 기능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장 큰 기능은 일상이 굴러가는 데 필요한 게 얼마나 많은지 서른이 넘어서야 날 깨우치게 했다는 점이다. 그 집으로 이사하며 처음 욕실 청소라는 일을 해봤다. 당연히 닦여있던 이전 집의 욕실이 내 집에는 없었다. 스스로 욕실을 청소해야 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나서 솔직히 말하면 네이버에 검색을 했다. 그리고 생활용품점에 가서 청소도구를 샀다.


밥을 먹을 때 으레 놓는 반찬이라는 게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그 집에서 알았다. 냉장고에 칸칸이 들어있던 반찬은 태어나 사는 내내 쭉 엄마가 해온 일이라 너무나 당연한 배경이었다. 냉장고가 있는 곳에 반찬이 있다,라고 생각할 만큼 당연했던 게 내 집에 홀로 있으니 당연하지 않았다. 집에 놓여있던 작은 냉장고에 직접 채운 거라곤 우유와 맥주뿐이었다.

그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품이 어느 만큼의 크기인지, 얼마큼의 무게인지 알려주는 기능을 충실히 했다. 딱 그 집만큼, 약 10평 남짓 방을 채울 만큼 필요했던 일상의 품. 그걸 배우기에 서른은 이제와 생각하면 그리 늦은 때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집이라는 게 생기면서 어설프게나마 책임감을 깨우쳤다. 집의 월세와 관리비를 내기 위해 회사를 옮기지 말고 열심히 일할 것, 여자 홀로 사는 집이라는 핸디캡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늘 조심할 것, 내 몸 하나 온전히 내가 먹여 살리기 위해 매사에 신중할 것.


그런 깨달음은 엄마가 청소한 집에서 엄마가 만든 반찬을 먹으면서는 두고두고 내일로 미뤄뒀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엄마의 투정과 떼는 어떤 면에서 내가 ‘어른’을 배우는 여정에 도움닫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남편과 사는 집에 내 서재방을 하나 갖고 있다. 가장 깊은 속내에 꼬불쳐둔 것들을 문자로 풀어내는 곳이 서재이기에 이 방은 내 두 번째 방이자 가장 나를 닮은 방이다. 그리고 이 방에서 여전히 어른을 배운다. 어떻게 살아갈지, 살아가고 싶은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며 아직 감이 잡히지 않는 어른을 배우고 있다.


+ 책 <내가 너의 첫 문장이었을 때>의 언젠가 방 챕터를 읽고 나의 방 이야기를 떠올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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