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노마드의 향유 #30 _ 독서노트
젊은 날의 독서는 언제나 치열했다. 시험을 위한, 성취를 위한, 사회적 경쟁을 위한 도구였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지식을 쌓고, 나를 무장시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독서는 취미라 부르기엔 무겁고, 여유라 하기엔 벅찼다.
그러나 나이가 쌓이고, 삶을 돌아보게 된 시점에서 만난 ‘유리알 유희’는 다른 얼굴로 다가왔다.
난해하면서도 숭고한 그 언어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그리고 내가 걸어온 길을 비추어 보게 되었다.
‘유리알 유희’가 전하는 중심에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관점이 있다.
헤세가 그리고자 한 ‘유리알 유희’는 단순한 학문적 훈련이나 엄격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다.
수학과 음악, 철학과 예술이 서로 얽히며 자유롭게 흐르는 고도의 놀이, 곧 삶을 즐기듯 행하는 사유와 창조의 행위이다. 인간은 지식을 축적하는 존재를 넘어, 지식을 유희로 승화할 때 비로소 성숙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학문의 전통과 그것을 지키려는 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명인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함께 어울려 하모니를 이루며, 그 자체로 전통의 계승자가 된다.
하지만 동시에, 높은 지위로 오를수록 자유가 제약되고, 권위와 책임이 커지는 모순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나’를 놓지 않는 태도가 진정한 명인의 길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명인들은 떠날 줄 아는 이들이다.
오랜 시간 학문의 세계를 지키고, 제자의 세대를 키운 뒤에는 또 다른 길을 향해 미련 없이 떠난다.
이는 학문과 전통이 영원히 개인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흐름임을 보여준다. 학문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놀이이자 유산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삶의 전통을 지키고, 또 어떻게 그것을 유희로 승화시킬 것인가?”
이 책을 통해 얻은 두 가지
첫째,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인생에 대한 자각이다.
50이 넘도록 살아온 나, 그리고 분야 전문가로 살아온 나를 돌아보며, 작품 속에서 드문드문 공감되는 장면을 만났다. 명인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만나 함께 펼치는 아름다운 하모니, 명인의 길이 결코 자유롭지 않음을 알면서도 충실히 그 직을 감당하는 태도, 그리고 또 다른 ‘나’를 찾아 미련 없이 떠나는 모습까지.
그런 장면들을 따라가며
“나는 나대로 살아왔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유리알 유희’가 안겨준 가장 큰 울림이었다.
둘째, 책 읽기에도 작품을 만나는 때가 있다.
마음 한 켠에,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노벨문학상, 읽어야 한다.
나이가 쌓이고 삶을 돌아보는 이 시기에 만난 ‘유리알 유희’는, 책 읽기에도 작품을 만나는 데에도 때가 있다는 것을 깊이 느끼게 해 주었다.
독서는 유희다.
유희로서의 독서는 나와 세계를 깊이 사유하게 하는 관통의 경험이다.
책은 더 이상 무거운 의무가 아니라, 시간을 누리는 값진 놀이이다.
‘유리알 유희’는 인생의 수용과 독서의 유희를 동시에 안겨준다.
독서는 나를 채우는 도구이고, 나를 비추는 거울이자, 시간을 즐기는 놀이이다.
이제 ‘삼국지’를 펼치려 한다.
이 역시, 도무지 다가오지 않던 책이었고, 몇 번을 붙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드디어 열릴 듯하다.
‘유리알 유희’를 통해 정신의 높은 봉우리에서 인생을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땅 위에서 피와 땀으로 쓰인 역사를 읽으며 현실의 삶을 바라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