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시간들이 머리 한 켠에 계속 자리한다면 머리 속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까.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지난 기억과 지금 말하는 것 사이에서 일관성을 이루려고 애를 쓰겠지, 생각만 해도 고생스럽다. 그래서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는 말이 생겼나.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고 있다. 오늘은 맞고 내일은 틀릴 수 있는 요즘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내가 기억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머뭇댄다.
망각.
내 머리 속 장기기억 장치 어딘가에 묻혔을 지식과 경험, 기억이 추출되지 않는 순간을 말한다. 망각한다는 것은 메모리 내 데이터가 너무 오래되어 추출되지 못하거나 물리적으로 이상이 생겨 추출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간혹 시스템 날짜를 바꾸거나 파일 속성을 변경하여 잊혀진 데이터를 되살리기도 한다.
학창 시절에 배웠을 수 많은 지식들이 직장에서 쓸모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교육하는 입장에서는 새로운 직무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잊혀진 지난 날의 기억들을 되가져와야 한다. 특정 용어나 연도는 기억나지 않더라도 대략의 이미지나 흐름은 쉽게 잊혀지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경험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직무지식을 보태고 그러면서 업무지시를 내린다.
요즘 친구들의 특징 중 하나라 해야 할까,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잘 모르겠는데요’ 하며 단번에 덮는다. 많은 다양한 경우 중에 특정 사례에 대해 배운 바가 없다고 나는 모른다 한다. 이럴 때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경우의 수를 일일이 알려줘야 하는 것인지, A를 배웠으면 A’과 연결지을 수 있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는 그들이 때로는 괘씸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을 컴퓨터 데이터에 비유한다면, 하드적 속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바래어 기억나지 않지만, 관계성이나 논리와 같은 소프트적 속성은 머리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 요즘 말하는 ‘하드스킬’, ‘소프트스킬’로 표현할 수 있는데, 기술적 능력이나 전문 지식을 ‘하드스킬’로, 변화에 대한 유연성이나 활용력, 대인관계, 의사소통, 비판적 사고 등과 같은 능력이 ‘소프트스킬’이다.
하드스킬(기술적 능력이나 전문 지식)은 6-3-3-4 학제를 통해 지속적으로 양적으로 질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사회에 나와서도 직무교육을 통해 기존의 지식과 직무상황 간 관계를 이루어 이론에서 실제로 전이하며 확장한다.
반면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 유연성이나 기술활용력, 대인관계, 비판적 사고 등의 소프트스킬은 배울 기회가 적었다. 사회에 나와서도 변화하거나 행동으로 보여지는데 오랜 시간이 든다는 이유로,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등한시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소프트스킬’이 미래핵심역량으로 자리잡음에 따라 대학들마다 비교과를 통해서라도 다루고 있다. 학생들에게 사고의 유연성과 기술 활용력, 융합적 사고 등을 장착하여 핵심역량을 가진 학생이라고 인증서를 발급하고 있다.
모기업에서는 직무/직렬 관련된 전공자를 선발하여 직무교육을 시킬 것이 아니라 핵심역량을 가진 사람을 선발하여 직무/직렬에 필요한 교육을 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 효과적일꺼라 계획하고 있다. 하드스킬을 잘 갖춘 사람보다 소프트스킬을 잘 갖춘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다.
탱고 음악가 피아졸라는 망각(Oblivion)에 대해서 ‘모든 인간의 행위에는 망각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살아 숨 쉬는 유기체의 생명에는 망각이 필요하다.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묻혀 잊히는 것뿐이다. 나를 기억에 묻고 너를 그 위에 다시 묻는다.’고 했다.
인간이 살면서 겪었던 많은 지식과 경험이 용량을 초과하면 지난 기억 속에 하나씩 묻혀 사라진다. 하드스킬은 소프트스킬에 비해 데이터의 개수, 양이 많다 보니 용량 초과가 더 쉽다. 자연히 망각의 속도도 빠를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망각이 필요하지만, 건강한 망각을 생각한다면 망각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
컴퓨터 파일 2개를 합쳐 한 개의 파일로 만들면 '1+1 > 2'와 같이 합친 파일의 양이 작다. 오랜 기억, 지식을 새로운 지식, 경험과 결합하여 다시 저장하는 것이다. 즉 새로운 지식과 결합하여 해석된 정보로 기억한다면 기억해야 할 용량이 작아져서 망각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
기존의 지식과 새로운 지식을 결합하여 해석된 정보로 기억하는 것, 이러려면 평소에 유연한 사고, 지식의 활용과 융합력, 비판적 사고 등의 소프트스킬을 길러 두어야 한다. 적시에 발휘할 줄 알아야 한다.
수 없이 넘쳐나는 정보와 지식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해석하고 기억 속에 묻을 수 있는 능력, 소프트스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