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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리터러시

by 딸리아

'잘 생겼다! 서울20' 프로젝트가 재밌다.

도시재생 사업으로 시작하여 서울의 곳곳이 ‘서울시립과학관’, ‘서울하수도과학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생활사박물관’, ‘서울기록원’, ‘서울식물원’, ‘서울도시건축전시관’, ‘봉제역사관’, ‘돈의문박물관마을’ 등 박물관이 주를 이룬다. 이렇게 생겨난 박물관을 포함해서 36개의 박물관이 서울에 있다고 한다. 흔히 베를린을 박물관의 도시라 하는데, 이쯤되면 서울 역시 박물관의 도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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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많은 박물관이 있다는 건 그 쓸모를 생각해봐야 한다. 뮤지엄 리터러시가 높아야 하지 않을까.


'리터러시'는 문해력으로 통용하기도 하는데, 문자를 읽고 쓰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글을 읽고 쓰는 기초적인 능력을 ‘최소 문해력’으로 보고, 사회적 맥락 안에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기능적 문해력’으로 구분한다. 좀 더 들어가서 ‘최소 문해력’은 문맹율과 상관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5년 문맹율이78%, 1958년 4.1%, 1966년(통계청 공식적 마지막 통계) 이후 1% 미만으로 보고 있으니 온 국민이 최소 문해력은 가지고 있다. 반면 ‘기능적 문해력’은 독서율과 상관이 있는데, OECD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 국민들의 독서율은 평균보다 낮다고 하니 사회적 맥락 안에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은 떨어진다 하겠다.


리터러시는 비단 문자에 한해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IT 기기와 결합하여 Digital Literacy, IT Literacy 등 정보의 원활한 소통을 가름하는 역량으로, Digital 기기, IT 기술을 이해하고 사용할 줄 아는 능력으로 전세계 시민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이다.


자 이제부터 '뮤지엄 리터러시'를 정의해보자. 문자로 소통하고, IT기기로 소통하는 것과 같이 원하는 정보를 얻고 사용하는 도구로 '박물관'을 생각해볼 수 있다.


국제박물관협회는 박물관이란 '인류와 인류 환경의 물적 증거를 연구·교육·향유할 목적으로 이를 수집·보존·조사연구·상호교류(교육·전시)하는 비영리적이며 항구적인 기관으로서, 대중에게 개방되고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구별하고 있는데, 박물관은 '문화·예술·학문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 향수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역사·고고·인류·민속·예술·동물·식물·광물·과학·기술·산업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하는 시설'을 말한다. 또한 미술관은 '문화·예술의 발전과 일반 공중의 문화 향수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박물관 중에서 특히 서화·조각·공예·건축·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하는 시설'이라 정의하고 있다.


위의 정의를 토대로 뮤지엄 리터러시를 정의해본다면, 박물관을 활용하여 문화 예술 학문의 발전과 관련된 모든 분야, 대중 문화 향수 증진과 관련된 자료, 정보를 읽고 쓰고 활용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박물관 시설을 이용하고, 박물관의 전시물들과 소통하고, 박물관을 통해 학습이 이루어지는 등 박물관 활용 능력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박물관 활용'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그 이유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가려 해석하고, 취할 것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매슬로우의 욕구 중 생리적, 안전, 애정의 욕구를 넘어서 지금의 시대는 자아실현, 즉 성장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셋째, 100세 시대, 주 52시간제, ‘문화가 있는 수요일’ 등 환경적으로 가치있게 시간을 보낸다는 것, 논다는 것이 새삼 삶의 과제가 되었다.


요즘 박물관은 단순히 전시하고 진열된 전시물을 관람한다는 소극적인 일방향 소통에서 벗어나고 있다. 작품과 관객이 작품이 되고, 작품과 관객, 관객과 관객이 상호소통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박물관에서 인류의 문명을 접하고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현재를 되돌아보고 나를 생각한다. 박물관에서 진짜(?) 정보와 물적 증거를 토대로 학습이 일어난다. 박물관을 나설 때면 뭔가 모를 충족감, 채워짐을 느낀다. 한층 성장한 나를 발견한다. 그러기에 박물관은 시간을 향유하는 공간으로서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이다.


얼마 전 세종문화회관 ‘야수파 걸작선’ 전시를 관람했다. 드랭의 ‘빅 벤’을 비롯하여 프랑스 트루아 현대미술관 소장품들을 대거 전시되었다. 도슨트 운영이 없는 요일이라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듣고 있는데 갑자기 ‘특별 도슨트 운영’을 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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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큐레이터라고 소개한 도슨트는 이번 전시의 성격과 의미, 작품들이 전시된 순서 등 기획적인 측면을 설명하면서 안내를 시작했다. 노랑방, 빨강방, 초록방 등 중요사건을 중심으로 색깔로 구분 지은 방들을 돌며 후기 인상파 – 야수파 – 입체파 등의 태동 배경과 대표 화가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화가의 작품성향이나 대표적 일화나 야수파와 입체파를 가름짓는 특징 등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1시간 남짓 설명을 듣는 내내 알고 있는 지식과 갑자기 쏟아진 어마어마한 정보 사이에서 인지과부하가 되었고, 그만 끝냈으면 하는 마음까지도 들었다. 나 말고도 관람객이 많았어서 그냥 그 무리에서 잠깐 빠져 나올 수도 있었을텐데 끝까지 들었다. 도슨트가 '들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끝내주었을 때 알 수 없는 희열감, 성취감, 만족감이 밀려왔다.


한 시간 내내 무의미하게 목에 걸쳐져 있던 오디오 가이드를 다시 켜고 찬찬히 둘러보면서 특별 도슨트의 설명과 오디오 가이드 속 도슨트의 설명을 비교해볼 수 있었다. 전시물들 중 두 도슨트가 공통적으로 설명한 작품들이 꽤 있었는데, 그들을 대하는 도슨트들의 감회와 설명 역시도 비슷했다. 각자가 느낀 감정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나 예시가 좀 달랐을 뿐이다. 그림의 배경에 사용된 색을 설명할 때, 한 사람은 스카프 같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당장에라도 바람에 흔들릴 것 같다는 표현을 썼다. 어찌 되었건 그림 속엔 하늘하늘 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의 정보가 한정적이다. 현대물처럼 작가의 철학을 담은 시기가 아니다 보니, 작가가 살았던 세상에 대해 보고 느낀 것을 사조로 표현되고 그에 따라 해석하는 한정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뮤지엄 리터러시가 높은 사람은 일반인과 어떻게 다를까? 뮤지엄 리터러시가 낮은 사람은 박물관을 어떻게 활용할까?

초보자, 아마츄어, 프로페셔널로 나누거나 또는 구체적 행동을 들어 그 수준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을 보고 캡션을 읽는 사람은 초보자, 작품을 보고 시대적 배경이나 재료, 사조 등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츄어, 작품을 보고 인류사에 끼친 영향, 의미, 예술성 등을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프로페셔널로 분류할 수 있겠다.


도슨트의 뮤지엄 리터러시는 어느 정도의 수준일까? 도슨트가 되어 그 작품들을 설명하고 안내하려면 아마츄어 수준은 넘어서야겠지? 도슨트가 되어 작품을 선택하고, 그 작품 속의 무엇을 읽어서 관람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뮤지엄 리터러시를 높이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더 키워야 할까? 뮤지엄 리터러시 지수(Index)라는 것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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