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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하루 May 30. 2022

겨울잠


침대에 누워 창 밖을 바라봤다.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고민했다. 내 선택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면 끝 또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수도 없이 상상 회로를 돌렸다. 떨어지는 속도에 감각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내 촉각에도 선택이 있다면 인간의 이기심으로 통증만을 삭제하고 싶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상관없었다. 지구의 중심으로 끌려내려 가는 걸 자처한 인간에게는 신은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었다.


흔들리는 물결 속에서 잔잔함을 찾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바람이 되어 흩날리는 꿈을 꿨다. 아니, 꿈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그를 발견하고 깃털로 변하게 하는 세상의 딸. 그 깃털은 사뿐하게 딸의 손바닥 위에 앉았다. 딸의 손에 그가 올라왔을 땐, 이미 눈으로 시간을 읽을 수 없을 만큼 남아있는 숨결이 없었다. 죽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4월이 아니라 이미 11월을 넘기고 있었다. 딸은 양손으로 깃털을 포개어 겨울의 얼음을 재빠르게 녹였다. 손의 온도에 녹은 얼음은 곧 물이 돼서 깃털을 적셨다. 그러나 부족했다. 어떠한 것으로도 간절함을 억지로 만들 수는 없었다. 자연의 순서 중 하나였다. 딸은 눈물을 죽죽 흘리며 하늘을 바라봤다.


"한 번만 도와주세요."


인간의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건 너무나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초단위로 사라지고 태어나는 생명 중 하나인 이 깃털이 도대체 뭐라고 이런 감정에 휘말리는지 딸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이 가엾은 자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만이 머릿속을 가득 울렸다.


번개가 쳤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딸은 가엾은 깃털을 햇빛이 잘 드는 토양에 묻어두고 자신을 부르는 곳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딸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깃털은 스스로 싹을 피우기에는 힘이 없었다. 마음이 어두워 겨울잠을 자기가 어려웠다. 딸의 간절한 부탁으로 해, 달, 별이 깃털이 묻혀있는 토양에게 다가와 빛과 어둠을 건네었다. 깃털은 숨 쉬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힘에 폭발할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요. 살고 싶지 않아요. 힘들어요. 그 작은 것은 초자연적인 힘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정도의 부정적인 기운을 온 힘을 다해 뿜어냈다. 힘이 빠졌다.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것이냐, 호통을 치며 비바람을 일으키는 세상에 딸은 바짝 엎드려 엉엉 울음을 토했다. 잘못했습니다. 비바람을 멈춰주십시오. 겨우 올려놓았던 깃털의 온도가 차가운 공기에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울부짖었다.


태초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하라 라는 세상의 명령이 울려 퍼졌다. 그 고함은 바람을 타고 흘렀고, 하늘은 수채화 물감이 도화지에 젖은 듯 울긋불긋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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