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하루 Dec 27. 2022

크리스마스를 부탁해


크리스마스 주말에는 Acute Assessment Unit (진단과 치료를 기다리는 임시 병동)에서 근무를 했다. AAU는 응급실과 병동 사이에 있는 개념으로 담당 병동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거나, 진단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머무는 곳이다. 일반 병동을 3개 정도 합쳐 놓은 규모이며, 응급실에서 바로 넘어온 환자들이기에 대부분 위급한 상태로 들어오신다. 일반 병동과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침대 회전율이 높다는 점이고, 그런 점을 반영해 전자 처방 시스템이 아닌 종이 차트를 쓴다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연휴는 아마 모든 3차 병원에게는 두려운 날일 것이다. 모든 병원과 약국이 문을 닫기 때문에, 환자가 몰릴 수밖에 없는 기간이다. 올해는 더욱 걱정이 많았던 이유가 저번주까지 응급구조사와 간호사들의 파업이 이어졌던 바람에 복도까지 쭉 임시베드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원래도 부족했던 인력이 더 부족해지면서 환자와 의료진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최근 전국적으로 성홍열 (주로 3세 이상의 소아에서 발생하는 급성 감염성 질환)이 확산되어 항생제 부족 사태를 겪고 있기도 하다. 약제부에서는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 일주일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했다. 병원 내에 미리 보유하고 있던 항생제들을 정리하고 모든 현탁액 제제는 1세 이하 소아 환자들에게만 쓰이도록 소아 응급실에 따로 보관했다. 3차 병원은 일반 약국에 비해선 약 부족 사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기에, 크리스마스 주말에도 문을 여는 25km 반경 약국들에 한해서 비상 재고를 보내놓았다. 정제형이나 캡슐형을 삼키지 못하는 환자에게는 현탁액이 가장 좋은 선택이나, 전국적인 재고가 다시 일반화될 때까지는 약을 으깨서 물에 녹이는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른 지침이 새로 발행되었고 지침에 따라 처방전을 검토하고 최선책을 찾는 것이 이번 근무의 주된 업무 중 하나였다.


창문도 없는 임시 병동에 오래 머물고 싶은 환자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얼마나 답답하실까, 환자 입장을 생각해보면 늘 마음이 무겁다. 병원은 항상 침대가 부족하기에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복용 이력을 확인하려 환자에게 인사를 건네면 화부터 내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크리스마스이브날 입원하신 한 환자분도 그랬다. 독감으로 인한 급성 저혈당증으로 들어오신 젊은 여성분이었는데, 말도 잘하시는 것으로 보니 겉으로 봤을 땐 퇴원하셔도 괜찮겠다 싶었다. 곧 담당 의사로부터 퇴원 보고서를 받았고, 진료 기록과 약물 차트를 검토하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당뇨 환자가 저혈당증으로 입원을 했고, 기존의 근육 인슐린 주사 대신 정맥 주사로 혈당을 조절할 정도로 상태가 불안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퇴원이 결정된 6시간 전부터 검토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퇴원 수속에 필요한 처방전 마저 제대로 작성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바로 간호사 선생님께 혈당 체크를 부탁드렸고, 수치는 17.8로 매우 심각한 고혈당증 상태였다. 약사로서 환자의 퇴원을 막을 수는 없지만, 안전하지 않은 퇴원이라고 판단될 시 환자 차트에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 이건 명확히 섣부른 퇴원이었다. 그 퇴원 보고서로 환자가 퇴원을 한다면, 혈당이 전혀 조절되지 않는 당뇨 환자가 아무런 인슐린 주사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침대를 기다리는 환자 리스트가 점점 늘어나는 압박과 미뤄지는 퇴원에 화가 난 환자 앞에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건 언제나처럼 어려웠지만, 나는 나의 일을 해야 했다. 섣부른 퇴원은 곧 환자가 다시 응급실로 돌아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당일, 뇌졸중 의심으로 들어오신 노인 환자분이 계셨다. 환자 앞을 지나갈 때마다  이름을 부르며 밥은 먹었냐, 물은 마시고 일하는 것이냐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셨다. 잠시 짬이 났을 , 통증은 어떠시냐 물어보러 갔는데 대뜸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셨다. 돈이 필요하시다기에 여기는 병원이고 여기에 계시는 동안은 돈은 필요 없으시다 말씀드렸다. 혹시 어디불편하시냐 물으니 나에게  용돈이 필요하셨다고 한다.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그날 처음으로 웃었던  같다. 조금만 한가했더라면 말동무도 충분히 해드리고 싶었는데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대신 나도 지나갈 때마다 열심히 손을 흔들어 드렸다. 의심 증상 말고는 혈액 검사도, MRI 좋아 보였기에 금방 집으로 돌아가실  있을 것이라 믿는다.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아프지 않으라는 법은 없다. 뇌졸중 의심 환자 분도 그러셨다. 자기 아들은 3년 전 크리스마스에 장모를 잃었고,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자신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크리스마스에도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남은 이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소중한 사람의 기일이 된다. 산타이던, 신이던, 그 누구이던, 크리스마스에 죽음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세상을 떠나는 환자에게 편안하고 축복스러운 마지막을 선물해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의 끝, 죽음으로 향하는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