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의 재분류

by 최하루



밤사이 화이트존 상공에는 차가운 시선들이 내려앉았다. 평소보다 더 많은 감시 드론들이 소리 없이 고도를 낮췄고, 낡은 건물들의 외벽 틈새와 부서진 가로등 갓 안쪽에는 먼지 크기의 나노 카메라들이 활성화되었다. 정우가 가동한 '레벨 3' 감시는 한결과 윤하의 모든 것을, 그들의 숨결과 체온까지도, 무감각한 데이터로 변환하기 시작했다. 존재는 이제 숫자가 되었다.



중앙기억관리국(CMA) 본부, 정우는 자신의 워크스테이션에서 한 인간의 내면이 데이터로 해부되는 과정을 밤새도록 지켜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영상 기록이 아니었다. 한결의 옥탑방에서 새어 나오는 미세한 소리 - 뒤척이는 소리, 억눌린 잠꼬대, 불안정한 호흡 패턴 - 가 실시간 음성 스펙트럼으로 변환되어 모니터에 그려졌다. 정우는 한결의 뇌파가 급격히 요동치는 순간, 감정 동기화 수치가 카페에 있는 윤하의 뇌파와 미세하게 공명하는 것을 확인했다. 98.7%라는 불가능한 수치로 얽힌 두 존재가 서로를 인지하지 못한 채, 어떻게 서로의 꿈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정우는 데이터로 환원된 고통을 냉정하게 관찰했다. 같은 시간, 화이트존의 옥탑방에서 한결은 악몽의 가장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평소와 같은 불꽃과 비명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모든 감각이 너무나 생생했다. 유리가 깨지는 날카로운 파열음이 고막을 찢을 듯이 파고들었고, 화학 물질이 타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러 숨이 막혔다. 누군가 '한결!'하고 절박하게 부르는 목소리.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 누군가의 이름을 절규하듯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름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울부짖었는지는 여전히 안갯속이었다. 망각이라는 두꺼운 얼음 밑에서, 삭제된 진실이 필사적으로 표면을 두드리는 듯했다. 한결은 식은땀에 젖은 채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났다.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세차게 뛰었고, 방 안의 공기가 희박하게 느껴졌다. 왼팔의 흉터가 마치 꺼지지 않은 불씨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단순한 통증이 아니라, 그날의 열기가 피부 위로 되살아난 듯한 감각이었다. 기억은 지워졌으되, 고통은 몸에 새겨져 있었다. 그렇다면 이 고통을 느끼는 자신은, 기억이 없는 자신과 같은 존재인가? 알 수 없는 혼란이 그의 호흡을 가쁘게 만들었다.



불안감은 아침까지 이어졌다. 약국으로 내려온 한결은 조제실의 청결 상태를 강박적으로 확인했다. 평소의 루틴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조제실의 새하얀 타일들이 마치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공백처럼 그를 압도했다. 약병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거슬렸다. 그는 이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평소보다 더 세게 조제 테이블을 닦아냈다.



"한결아 너, 안색이.."



수현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얼마 전, 그가 지워버린 거대한 진실을 엿본 수현에게는 한결의 그 피곤함조차 다르게 보였다. 그것은 단순한 불면이 아니라, 한결이 그토록 큰 대가를 치르고 닫아두었던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한결은 애써 태연한 척하며 약병을 집어 들었다. 마침 노인 손님 한 명이 파킨슨병 처방전을 내밀었다. 한결은 익숙하게 약을 조제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저울에 약을 올리고, 약포지 기계에 처방을 입력했다. 하지만 손끝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어젯밤 꿈속의 유리 파열음이 이명처럼 다시 울렸다. 눈앞의 손님과 약병들이 순간 흐릿해졌다. 자신이 그토록 신뢰했던 완벽한 질서와 통제력이, 손가락 끝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감각이었다.



그때였다. 한결은 무의식적으로 파킨슨병 약이 정리되어 있는 선반이 아닌, 그 옆 선반의 짙은 갈색 병을 집어 들었다.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가 들은 병이었다. 한결은 약병의 뚜껑을 열고, 저울 위 접시에 정해진 용량의 알약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한결아!"



수현의 날카롭지만 억눌린 목소리가 한결의 손을 멈추게 했다. 그 목소리에는 단순한 놀람이 아닌, 진실을 알고 있는 자의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한결은 그제야 자신이 집어 든 약병을 내려다보았다. 전혀 다른 약이었다. 손님의 불안한 시선과, 수현의 경악한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 꽂혔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의지를 배신한 것이다. 만약 수현이 보지 못했다면, 끔찍한 의료 사고로 이어질 뻔한 순간이었다.



"미안... 잠깐 딴생각을."



한결은 황급히 약병을 내려놓았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차가운 배신감이 온몸을 감쌌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또 다른 자신이, 자신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수현은 아무 말 없이 한결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무언가 더 깊은 사실을 알고 있는 자의 슬픔이었다. 한결은 그 시선을 피하며 거칠게 마른세수를 했다. 자신의 몸과 정신이 통제 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같은 시각, 정우는 CMA 최상층, 국장의 사무실에 불려 가 있었다. 통유리창 너머로 도시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유리 감옥 같은 공간이었다. 국장은 정우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도시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화이트존에 대한 보고서, 잘 받았습니다."



국장의 목소리는 텅 빈 사무실에서 낮게 울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이한결과 채윤하의 양자 얽힘 현상은 시스템의 중대한 오류입니다. 레벨 3 감시를 통해 그 원인을..."

"중단하세요."



국장의 말이 정우의 보고를 끊었다.



"화이트존은 특별 관리 구역입니다. 한 요원이 파악한 것 이상으로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고요. 이 건은 여기까지입니다. 손 떼세요."

"하지만 국장님, 98.7%입니다. 이 수치는..."

"데이터가 전부가 아닙니다, 한 요원."



국장이 정우의 방향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지만, 입은 미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때로는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용인되어야 하는 오류도 있는 법입니다. 시스템의 평화가 한 개인의 진실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

"화이트존은 건드리지 마세요. 충고입니다."



정우는 얼어붙었다. 이것은 단순한 충고가 아니었다. 명백한 협박이자, 은폐 시도였다. 자신이 오류라 보고한 것을, 국장은 용인된 것이라 말했다. 시스템의 오류를 보고한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상이 아니라, 진실을 덮으라는 명령이었다.



"알겠습니다."



정우는 경례를 붙이고 사무실을 나왔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 균열은 돌이킬 수 없이 깊어지고 있었다. 상부의 압박은 정우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CMA가, 국가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그들이 지키려는 사회의 안정이란, 과연 누구를 위한 안정인가? 진실을 덮고 세워진 질서가 과연 정의인가?



자신의 워크스테이션으로 돌아온 정우는 국장의 명령을 정면으로 어겼다. 그의 손가락은 분노로 떨리는 대신, 차갑고 정확하게 움직였다. 그는 한결의 로그가 아닌, '기억 양자 얽힘'이라는 현상 자체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CMA에 입사하며 구축했던 시스템의 뒷문, 아무도 모르는 백도어 알고리즘을 가동했다. 수백만 개의 데이터 로그를 우회하여 시스템의 가장 깊은 곳을 접근했다. 그리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최고 보안 등급으로 잠겨 있던 파일 하나를 발견했다.



[AMES-9_Phase1_Internal_Report_CLASSIFIED]



AMES-9의 초기 개발 단계에서 작성된 비공개 연구 보고서였다. 정우는 망설임 없이 그 보고서를 열었다. 모니터의 차가운 빛이 정우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반사되었다. 보고서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부작용 고지: 대상 간의 감정적 유대가 깊을 경우, 시냅스 삭제가 동기화된 타 대상의 뇌신경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 (일명 '기억 양자 얽힘 (Memory Quantum Entanglement)'). 위험 등급: Alpha. 조치: 전략적 이점을 위해 '위험'에서 '특성'으로 재분류. 대외비 처리.]



기억 양자 얽힘 현상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AMES-9 약물이 가진 치명적인 의도되지 않은 부작용이었다. 정부는 이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 이를 고의로 은폐했던 것이다. 정우의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듯했다. 자신이 평생을 바쳐 헌신하고 완벽하다고 믿었던 시스템 전체가, 거대한 거짓말 위에 세워진 탑이었다. 기억을 지우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했지만, 그 선택이 타인의 기억까지 함께 지워버릴 수 있다면?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타인의 영혼에 가해진 일방적 폭력이었다. 자신은 그 폭력적인 시스템의 가장 충실한 집행자였다는 자각이 그를 덮쳤다. 키보드 위의 정우의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결함이 아니었다. 국가가 모든 시민을 상대로 벌인 거대한 기만극이었다.



정우는 결심했다. 이 진실을 세상에 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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