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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Jul 12. 2024

[오늘의단상] 남겨진 것들의 기록

당신은 고독에서 자유로우십니까

며칠 전 동네 도서관엘 갔다.  

구 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지만, 동네에 있는 작은 도서관이리라 생각했던 도서관은 예상보다 넓고, 쾌적하고, 시스템도 잘 갖추어져 있고, 무엇보다 빈자리가 하나 없을 정도로 공부하거나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사람들, 간간히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 놀랐다. 

예전 학교 도서관에서만 맡아지던 오래되고 쌓여 있는 책의 퀘퀘한 종이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아쉬웠다. 

드문드문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의 여백, 나도 다른 이들과 같이 책을 한 권 찾아들고 그 여백의 어느 귀퉁이에 자리하는 것을 기대했었다. 이번에는 실패다. 


구경삼아 검색대 앞에 섰을 때 생각나는 책을 두 권 검색해 보았으나, 없었다. 

그럴 있지 뭐.

서고로 무작정 들어가 맘에 드는 섹션에서 후루룩 책등의 글자들을 스치며 지나가다가 맘에 드는 제목의 책을 두 권 골랐다. 앉아서 볼 빈자리는 없었기 때문에 회원가입을 하고, 대출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중 한 권이 ⌜남겨진 것들의 기록⌟(김새별/전애원 작, 2024)이다.  


넷플릭스에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라는 드라마가 있다. 

심심해 드라마를 찾아 헤매던 몇 달 전 친구의 추천이 있었지만 어렴풋한 짐작으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다는 이유로,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울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시청을 미루어 왔다. 

책을 몇 장 읽다 보니 문득 이 드라마가 떠올랐고, 검색해 보니 역시 두 작가 분의 전작인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이 이 드라마의 원작이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책은 담담하게 적혀 있었다.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이 본인들에게는 감정소모가 매우 큰 일이겠지만 그 감정의 세세한 나열과 표현보다는 자신들만의 직업윤리를 바탕으로 지나치게 개인사에 깊이 파고들지 않는, 고인과 가족 또는 주변인들에 대한 배려 덕에 절제된 글이 나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고인이 된 사람의 공간 그리고 떠나간 후 남을 수 있는 몸의 흔적, 그대로 남겨진 물건 또는 사람들에게서 파악할 수 있는 파편적인 조각들은 수많은 죽음과 죽음의 수만큼 많은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그 안의 큰 공통점은 고독사 그리고 많은 경우에 발견되는 쓰레기집. 


하지만, 작가는 유품정리사로서 그들이 직접 경험한 사연들을 통해 분명히 말하고 있다. 

빈부 차이는 있지만 훨씬 많은 비율로 가난을 넘어서는 빈곤에서 많이 발견되는 고독사, 

하지만 가난 사이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닌 고독사, 

정신적 또는 신체적 질병에서 비롯되는 고독사, 

각각 어떠한 이유로든 장/노년층에서는 물건을 너무 모으고 쌓아두어서, 청년층에서는 자신이 배출하는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방치해 두어서 만들어지는 쓰레기집.

이 모든 것들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라고 말이다. 


연령층을 불문하고 1인 가구가 많아지는 현대 사회.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관계들이 조금씩 단절되어 서로가 서로의 안녕을 알기 어려운 현대 사회. 같은 층에 살아도 일 년 가야 거의 마주칠 일이 없는 요즘.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로도 충분히 기가 빨린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데면데면한 나. 


글로 적혀 있는 사연들은 상대적으로 나와는 거리가 있는 또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읽히다가, 어느 순간 지금을 숨 쉬며 살고 있는 개인이라면 누구나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다만 죽음 전이냐, 죽음 이후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죽음 이후 빨리 발견되는 것은 과연 운이 좋은 거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간의 경험으로 사람의 죽음 이후 자연스레 연상되는 절차와 감정들이 있었다. 하지만 죽음과 발견의 사이 그 몸에 대해, 발견의 현장과 그 흔적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맞다, 죽음은 고상하거나 감상적인 슬픔과 비통함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복닥한 절차 이후의 애도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를 향해 고속 질주하고 있는 지금 죽음과 질병은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와 책임이 아니다.

이는 "돌봄" 문제와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어제는 동네 길을 걷다 마주친, 닫힌 가게 문 앞에 붙어 있던 喪中(상중)이라는 새까맣고 커다란 글자가 눈에 박혔다. 


이제 드라마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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