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새로이 보다
나의 작은 데미안과 나는 다시 태어났다. 굉장히 거창해 보이는 문장을 제목으로 삼은 이유는 그것이 내 오롯한 진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라는 존재로 거듭나는 정도가 아니라 재탄생했다.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전혀 나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상적이다. 그렇기에 나의 아이는 데미안과 같은 내 삶의 선지자이다. 덕분에 바른 방향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새로이 태어났는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써나가고 있지만, 그중 하나로 예전에는 없던 시각과 감수성을 갖추게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야말로 새로운 눈과 심장으로 교체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신생아 때부터 같이 대화를 나누게 되는 시점을 지나서까지 계속해서 아이에게 일방적인 혹은 상호적인 대화를 걸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아이의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보게 된다. 그래서 순수한 아이의 감수성도 따라오게 된다. 나의 유년시절 세상을 바라보던 시선과 감성은 기억나지 않기에, 처음으로 아이가 된 듯하다. 그래서 주변 사물이나 자연이, 사람이, 세상이 새삼 경탄스럽다.
아이를 재우며 그간 잊고 지냈던 동요를 기억에서 끄집어내어 부르다 보면 순수한 아이의 감수성을 절로 채우게 된다. 입에 붙어 줄줄 외기만 했을 뿐 가삿말을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아이에게 천천히 불러주며 곱씹어보니 세상을 이러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음에 감탄하게 된다. 동요 ‘반달’이 그렇다. 반달을 보며 돛이 없는 나룻배를 떠올리고, 토끼가 달에 산다고들 하는데 홀로 타고 가는 것일지 궁금해한다. 달이 지는 것을 서쪽 나라로 반달 모양 배가 흘러가는 것으로 표현한 것도 놀랍다. 한편 어른의 마음으론 용납하기 힘든 가사로 웃음을 주는 동요도 있다. 코끼리 아저씨가 그 예다. 육지에서 최고의 덩치를 자랑하는 코끼리가 가랑잎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간다는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이들이나 가능할 법한 재미난 발상이다. 이런 기발한 재치도 아이와 함께 동요로 배우며 나까지도 창의력을 길러나가는 느낌이다.
동화는 또 어떠한가. 국내외 동화작가들의 무궁무진한 상상에 나도 같이 웃고 감탄하게 된다. 구름으로 구운 빵을 먹고 하늘을 난다는 설정이나 아이 눈에 들어간 벌레의 눈에 더 작은 벌레가 들어간다는 구성처럼 때론 즐겁고 때론 으스스한 이야기에 사실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고전문학이나 과학 서적 위주로 읽었을 것이다. 이러한 책에는 동화에서나 볼 법한 스토리는 담겨 있지 않다. 있을 법한 이야기 혹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매일 놀이처럼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 보니 다소 굳었던 어른의 뇌와 감성이 몽글몽글 부드러워지면서 깨어나는 듯하다.
아이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다 보면 수십 년간 익숙하게 써온 우리말도 생경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기본적인 예절을 가르쳐주고자 ‘안녕’부터 ‘잘 먹었습니다’ 혹은 ‘안녕히 주무세요’ 같은 인사말이 동화책에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안녕이라는 인사가 갑자기 따뜻하고 감동스럽게 느껴졌다. 우리는 만날 때도 상대의 안녕을 묻고, 헤어질 때도 안녕을 바란다. 만남과 헤어짐에 있어 동일한 인사를 주고받는 언어가 또 있을까? 내가 아는 한은 없다. 같은 단어이지만 물음표와 느낌표 하나로 의미가 달라진다. 하나는 만나지 못한 날들을 무탈하게 잘 지냈는지 궁금해하고, 또 다른 하나는 헤어짐에 있어 다음에 볼 때도 지금처럼 웃으며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한자어지만 발음할 때 운율이랄까 소리도 의미만큼이나 따뜻하고 밝다.
전엔 이런 고찰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동요도 동화, 그리고 우리말 단어들까지 있는 그대로 습득했던 것 같다. 창의적인 발상에 놀라거나 단어가 주는 느낌을 되새겨본 적이 있었나 싶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내 성격도 한몫했겠지만 모국어를 배우는 단계에서는 무비판적으로 흡수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평생 눈을 감을 때까지 ‘안녕’이라는 말의 깊이와 말소리의 아름다움을 곱씹어볼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다.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한다는데 우리말마저 다시 공부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전혀 귀찮지 않다. 덕분에 미처 몰랐던 부분도 깨닫고 메말랐던 감성을 채워나가기 때문이다. 혹자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순간 우리는 시인이 된다고 했다. 엄마이자 시인으로 거듭난 지금, 매일 마주하는 일상이 즐겁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