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자연을 찬미하다

세상을 새로이 보다

by 여느

만삭에 가까워졌을 때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많이 걷는 것이 예비엄마와 태아 모두에게 좋다고 하여 매일 오전마다 근처 공원을 거닐었다. 동일한 장소를 매일같이 거닐다 보면, 나무나 산, 강과 철새 등 자연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원을 거닐며 자연의 변화를 살피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평생 없을 수도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처음이었다. 공원길을 지나거나 가로수를 보며 출퇴근하는 이들도 자연의 생동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운전에 집중하느라 혹은 핸드폰을 보느라 분주하고 천천히 오랜 시간 눈길을 두며 감상하는 이는 드물다 생각한다. 회사로 혹은 집으로 이동하기 바빠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처음 제대로 자연의 끊임없는 정중동을 관찰하게 된 것이었다.


때는 초가을이었다. 녹음은 물러갈 준비를 마쳤고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공원에는 하천이 있어 철새도 날아들었고 강을 따라 양쪽에 나무가 연이어 서있었다. 강물이 끝없이 흐르고 흐르듯 나무도 조금씩 계절에 맞춰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어쩌면 계절이 변했음을 알려주는 건 주변의 나무가 아닌가 싶다.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는 식물들 덕에 바삐 살아가는 우리가 이따금 봄이 왔음을 혹은 가을로 접어들었음을 눈치채게 되는 게 아닐까. 매 시 매 분을 부지런히 그러나 묵묵히 자신의 소명을 다해 생동하는 자연 앞에서 인간은 부끄러워진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강산이 옷을 갈아입는 데는 불과 몇 개월이면 족하다.


옛 현인들이 시조와 시가에서 자연을 노래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현대 시인들에게도 자연은 단골 소재다. 그만큼 매 순간 다시 보아도 새롭고 경탄스럽다. 커다란 산맥과 봉우리, 드넓은 바다 앞에서 숙연해지기도 하지만 작은 이파리 하나, 꽃잎 한 장, 작은 새 한 마리가 주는 감동도 대단하기에 자연은 언제나 놀라움의 대상이다. 예전엔 여행을 가면 다른 나라의 도심이나 건축물을 보고자 했다면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대자연을 찾아 떠나고 싶은 심정이다. 이처럼 자연의 싱그러운 활력과 아름다운 생명력만으로도 과히 감탄할 만하다. 질리지 않는 관찰의 대상으로 즐거움을 제공해 준다.


보이는 겉모습 이외에도 자연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놀라움은 배가 된다. 엄마가 되어서 한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내다 보니 자연이 더 가까이 느껴지면서도 경외시 하게 되는 듯하다. 우리는 흔히 자녀가 많은 부모에게 존경을 표한다. 물론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자연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생명을 싹 틔우고 길러내는 자연. 부모가 되어보니 그저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나는 한 번에 한 명씩 출산하였고 두 아이를 양육하고 있으면서 호들갑을 떨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자연은 묵묵히 그러나 누구보다도 성실히 새 생명을 품어나간다.


쉼 없이 활동하는 자연으로부터 본받을 점은 따로 있다. 바로 지속적인 성장이다. 식물은 다치거나 병들지 않는 이상 끝없이 성장한다. 동물 또한 자신의 소명을 다하지 않고 하릴없이 가만히 시간을 죽이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동물원의 개체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목적이 살아있는 것 그 자체이건 번식이건 간에 죽는 날까지 나날이 성장한다는 것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인간에겐 놀라운 일이다. 인간은 세상 만물 위에 존재하는 양 굴지만, 자연의 부지런함을 따라갈 자가 있을까. 나는 매일 성장하고 있는지 반성하게 된다. 찰나의 삶을 허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본다. 생명체 중 유일하게 이성을 갖추었다고 자랑하는 인간이지만 생은 짧다는 단순한 진리조차 잊어버린 양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만큼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임신 중에, 출산 후엔 아이와 함께 자연을 자세히 관찰하게 되면서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삶은 끝이 있기에 매 순간을 성실히 살아내야겠다는 것이다. 또한 생의 움직임 자체가 생태계 전반에 이익이 되는 자연처럼, 나의 성실함의 결과물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예전엔 자연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에 취하기만 했다면 이제는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삶의 자세를 굳건히 하는 시간으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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