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새로이 보다
자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환경보호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찬탄해 마지않는 자연이 언제까지고 지금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할 수 있으려면 우리가 보호해야만 한다. 자연을 위해서만도 아니다. 당장 나 자신이 그리고 내 아이가 장래 살아나갈 터전이 위협받고 있는 지금, 더 나아지기는 힘들지라도 악화되지는 않도록 지켜나갈 의무가 생겼다.
우리 인간이 원시시대로 돌아가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지 않는 이상, 애석하게도 환경과 자연에 빚지며 살아간다. 돌고래와 같은 고등동물도 자연 그대로 순리에 따라 생을 보내건만 인간은 언제부터 욕심을 끝없이 내게 되었을까. 동식물은 배출하는 배설물이나 사체까지 온전히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생태계의 순환에 보탬이 될 뿐 몇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쓰레기라든가 환경호르몬을 남기고 떠나지 않는다. 대자연의 평화로운 순환의 고리와 자정작용을 위협해서 미처 다 파악하기도 힘들 만큼 다양한 종을 멸종시킨 것은 오로지 우리 인간의 업이다. 그리고 그 업으로 인한 재앙의 결과를 온몸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존재도 우리다.
비록 인간의 무지막지한 이기심으로 수많은 동식물의 개체가 종적을 감추게 되었지만, 그렇지 않고 인간과 부대끼며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 나가면서 꾀를 내어 미세하게 진화하는 종들도 존재한다. 우리가 자초한 위기 앞에서 이들은 헤쳐나갈 방도가 있을 것이다. 당장 코로나만 해도 어땠는가. 초기 바이러스의 치명률은 10%를 상회하며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갔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각국은 크게는 국가별 빗장을 작게는 각 가정의 대문까지 걸어 잠그는 봉쇄정책을 펼쳤다. 전 인류는 자연의 단죄 앞에 재갈을 문 죄인처럼 마스크를 달고 살았다. 하지만 인류를 제외한 생명체는 어떠했는가. 조용히 그들의 생을 이어나갔다. 인간이 피운 재앙의 불씨가 인간에게만 화마가 되어 닥쳤던 것이다.
코로나의 위기는 몇 년 만에 넘긴 듯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다. 모든 종을 뛰어넘는 왕처럼 군림하고 있으나 한편으론 유약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먹거리, 토양, 물, 공기까지 청정한 영역이 없다. 오염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부족하니 더 걱정이다. 지금은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만 겪고 있다고 넘겨버리는 물 부족과 식량난이 언제 전 지구적 문제로 번질지 모른다.
혹자는 인류의 수명이 활시위와 같을 것이라 한다. 당기는 활시위처럼 인간의 기대수명은 점차 늘어왔다. 그러나 자연이 견딜 수 있는 한계점을 넘는 어느 시점에, 화살을 쏘고 난 활시위처럼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처음 인류가 지구의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했던 때와 유사하게 말이다. 이를 듣는 순간 설마, 하는 마음보다 정말 그럴 것만 같아 가슴이 철렁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온난화와 이상기후, 잦은 태풍과 지진 등 종말이 다가오는 것만 같은 징조가 숱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자연에 대한 부채의식, 생태계의 다양한 생명들에 대한 미안함도 모두 좋지만 그런 이타적 감정을 차치하더라도 생존을 위해서 환경보호는 급선무의 과제가 되었다. 하물며 자녀가 생긴 나는 어떠한가. 나 자신의 안위도 중요하지만 나보다도 소중한 존재의 미래가 잿빛처럼 여겨지는 오늘날, 다급한 마음을 부여잡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그리고 그 영역을 차차 확대해 나가기로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도 나름대로 환경보호를 실천하고자 했다. 공익광고에서 흔히 등장하는 ‘후손들을 위해 자연을 보호하자’라는 문구를 보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곤 했으니까 말이다. 다만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어떤 것을 더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그러나 내 자식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기 위해서라도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했다. 친환경 제품을 먼저 찾아보고 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며 체계화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거창한 것이 아닐지라도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이나마 자연에 단비가 될 수 있다면 생활 속에서 꾸준히 실천해 나가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