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안에서 밖으로 향하다

나아가다 그리고 날다

by 여느

아이를 낳고 삶의 국면이 바뀌면서 변화에 적응하고자 부단히 애쓰다 보니 자연스레 '나'라는 사람에 대하여 알아가게 되었다. 예전 같았다면 주변 사람들이 말하고 평가하는 것들로 나를 규정하고 받아들였다면 이제는 스스로 발견해 나간다는 큰 차이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틀에서 점차 바뀌어가는 나 자신을 확인하기도 했다. 아이를 양육하기에 좋은 특성이라면 그것을 고수해도 되겠으나 대개는 부딪히는 것이 많았다. 바뀌지 않으면 나와 아이들 모두 힘들어지기에 불가피한 면도 있지만 그 변화는 나에게 한 단계 나아가는 것이었고 발전이었다. 또한 성장하기까지 기간도 짧았기에 의미가 더욱 컸다. 빨리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렇기에 금방 발전할 수 있었다. 일례로 극히 내향적인 성격에서 외향적으로 변했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지금은 MBTI가 유행하면서 내향성이나 외향성에 대해 긍정이나 부정하지 않고 성향일 뿐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내향성은 극복해야 하는 대상과 같았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아닌 척해야 하는 상황이 있지만, 내가 학생 때만 하더라도 내향적인 성격은 지적당하거나 놀림감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도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무척이나 내향적인 성격이었으니 말이다.


타고난 기질 자체가 낯을 많이 가리고 말수가 적은 편이다. 말하기보단 듣는 것을 잘하고 사람들을 두루 사귀기보단 몇몇의 절친을 두는 타입이다. 주목받는 것이 싫고 불안감이 드는 정도이다. 어느 순간엔 무대공포증도 생겨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때면 숨이 잘 안 쉬어지고 갈라지고 떨리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호흡도 주체할 수 없이 들썩거렸다. 본래 성향이 그러한 데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그것이 강화되는 몇 번의 경험 때문에 외향성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한 선생님은 나를 신기하게 여길 정도였다. 내가 입을 떼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대체 말을 하긴 하냐고 물었다. 학급 친구들은 내가 친해지면 말이 많다며 대신 대답을 해주었지만 주목받는 상황이 되자 당황한 나는 더욱 입을 닫아버렸다. 그러면 그 선생님은 아이들의 말을 믿지 못한 채 여전히 말수 없는 나를 재확인할 뿐이었다.


대학생이 되니 학과 활동이나 동아리 모임 등을 하며 조금씩 노력하곤 했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취업 준비생이던 시절 면접 연습은 나에게 쥐약이었다. 처음 지원한 기업에 면접까지 올라가는 행운이 있었는데, 떠올리기 민망할 정도로 망쳐버렸고 한 면접관께서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며 면접 연습을 많이 해야겠다며 다른 지원자들 앞에서 조언까지 해주실 정도였다. 그분의 조언을 새겨듣고 혼자서 노력도 하고 면접스터디를 통해 어떻게든 면접의 턱을 넘으려고 애썼다. 감사하게도 노력 끝에 지금의 회사에 합격할 수 있었다.


직장인이 되니 전화를 할 일도 많고 회의나 심지어 발표를 할 기회도 생기다 보니 조금씩 내향성을 극복해야만 했다. 아주 개선된 건 아니지만 자주 부딪히는 상황에서 익숙해진 탓인지 괴로울 정도는 아니었다. 무뎌진다고는 해도 내향성은 여전히 내 안에 단단히 자리해서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뻗기 일쑤였다. 주말에도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가능하면 누워서 에너지를 회복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정식 MBTI 문항지를 입사 직후 연수 때 해보았던 기억이 난다. 전체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당연한 I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랬던 내가 최근에 약식이긴 하지만 인터넷을 통해 MBTI를 테스트해 보니 (또 정확하게 전체가 기억나진 않지만) E가 나왔다. 믿기지 않아서 다른 사이트에서 해보니 또 같은 결과가 나왔다.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문항을 곰곰이 떠올려보니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며 외향성이 길러진 결과였다.


외부에서 방출한 에너지를 집에서 채우던 나는 좋든 싫든 간에 아이들과 함께 매일 오후 집 주변을 외출하고, 주말에는 조금 더 멀리 나가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일상 속에 살고 있다. 아이가 지루해하기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끔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인지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된 외출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집에 있을 때 차분한 느낌이라면 외부에 있을 때는 생기가 돌면서 기분도 좋아진다. 아이 덕에 나도 층고가 낮은 집을 나서서 끝을 알 수 없이 높은 하늘도 바라보고, 바깥공기도 마시고, 덩달아 나도 가보지 않은 곳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웃음이 나기도 한다.


마치 작은 여행을 하고 온 느낌이다. 해외로 향하는 것만이 여행이라 여겼던 때도 있었는데, 달리 여행이랄 게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국내 관광지를 재발견하며 가치가 달라진 면도 있겠으나 나는 순전히 아이들과 집 주변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놀이터와 키즈카페, 공원이나 동물원, 작은 도서관 등 아이에게 맞춰진 장소이지만 역으로 아이 덕분에 가보는 곳이었다. 처음 가 본 공간에서 일상과 다른 기분을 맞이한다면 그것이 곧 여행이지 않겠나 하는 생각으로 약간의 설렘도 안고 나선다. 자녀가 없을 때는 집 근처에 혹은 근교에 이런 곳이 있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으나 어느덧 틈날 때마다 관광지를 검색하게 되고 방문 후에 나름대로 그 장소에 대한 평도 하면서 지내게 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그리고 이후 수십 년 간 살아온 성격이 단기간에 손바닥을 뒤집듯 바뀔 수 있는 사건이 또 있을까? 나는 아이를 만난 일 말고는 앞으로의 인생에서 없을 것 같다. 엄청난 변화가 감사하게도 내가 한 번쯤 이렇게 살아보면 어떨까 하고 궁금했던 방향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내 안에 없는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었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하고 끄집어내 준 내 아이들에게 또 한 번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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