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다 그리고 날다
극내향의 표본이었던 나는 낯선 이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불편했다. 그것이 꼭 대화를 나누거나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더라도 길을 오가다 마주치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마저 괜스레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멀티가 어렵고 목적지만 바라보는 성질도 좁은 시야를 갖게 했는데, 사람들을 대하는 게 불편한 성향 탓도 있었다. 그저 걸어갈 방향만 직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이로 인해 오해를 사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고 앞을 향해 가기 때문에 아는 사람을 만나면 인사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되는데, 상대방은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든지 만나도 먼저 인사하지 않는다고 언짢게 받아들이는 일이 생겼다. 일련의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자 나는 스스로 안면인식장애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후에 사람들에게 나의 장애에 대해 알리면서 양해를 구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의 이러한 특성은 정말로 장애물이 되었다. 신입직원이 상사를 만났을 때 인사를 드리지 않고 지나친다면 단순히 오해로 끝나지 않고 인사고과에도 반영될 수 있기에 심각한 문제였다. 안면인식장애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래서 회사 건물 내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단 먼저 고개를 숙였다. 외부인이든 아니든 간에 인사를 해서 나쁠 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눈을 마주치고 얼굴을 알아본 다음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는 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지도 않고 삐뚜름하게 인사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적어도 예의 없다는 평은 듣지 않을 수 있었다.
퇴근 후 저녁이나 주말에는 집에서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고 쉬는 것이 회복이었다. 친하게 지내는 회사 동료도 있었으나 그 관계는 회사 안에서만 유지하는 친목일 뿐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낼 수는 없는 사이라고 여겼다. 가끔 학창 시절 친구를 만나기는 해도 회사 동료를 밖에서 따로 만나지는 않았다. 나의 집에 초대해달라거나 반대로 집에 놀러 오라는 얘기도 몇 번 들었지만 입으로 수긍만 할 뿐 행동하지는 않았다.
아이를 낳고 휴직을 하면서 그토록 좋아했던 집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쉽게 외출하기가 힘들고 코로나가 덮치면서 자연스레 집에 머무는 일상을 보내게 된 것이다. 원체 활동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러한 일상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집순이일 것 같은 나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움텄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매체와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라디오였다. 지금은 텔레비전을 집에서 없앴지만 텔레비전이 있더라도 어린아이가 있는데 하루종일 틀어놓고 있기가 어렵다. 영아부터 자극적인 영상에 노출하기가 꺼려져서다. 그러다 우연히 떠올린 것이 음성만으로 채워지는 라디오 방송이었다. 아이가 깨든 깨어있지 않든 하루종일 틀어놔도 괜찮았다. 특히 다른 방송국도 좋았지만 광고가 없는 EBS 라디오가 최적이었다. 광고 음악소리가 현란하다 보니 때론 소음처럼 느껴졌는데 EBS는 공영방송이라 그런지 프로그램 소개 광고나 공익광고 외에는 없었고 그마저도 매우 짧다. 그리하여 생전 처음으로 라디오 방송이라는 세계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라디오는 들을수록 매력이 넘쳤다. 텔레비전은 미리 녹화된 영상을 편집해서 방송하기 때문에 일방향성을 띤다. 반면에 라디오는 대부분 생방송으로 진행되며, 청취자가 문자나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참여를 할 수 있다. 방송을 듣고 간단한 감상을 보내거나 사연이나 고민을 보내기도 하고,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음악을 청취자가 신청한 곡으로 틀며, 전화연결을 통해 방송에 직접 출연하기까지 한다. 방송내용의 상당량을 청취자가 채워나가는 셈이다. 이 점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물씬 채워줬다.
예전의 나라면 가만히 라디오를 들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을 텐데 소통의 즐거움을 더 맛보고 싶었던 나는 문자나 앱으로 방송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방송내용에 대해 나만의 감상을 보내거나 퀴즈 정답을 맞춰보고, 사연을 실어보기도 했다. 내가 보낸 글이 전 세계로 송출되는 라디오 방송에서 진행자의 목소리로 읽혀나가는 짜릿함은 전에 느껴본 적 없던 유희였다.
주파수를 통해 비대면으로 소통하다 보니 대면으로 대화하는 욕구도 싹텄다. 엄마란 존재로 다시 태어나면서 이 세상의 엄마들에 대한 유대감이 생겼다. 그 유대감은 내성적인 내가 비슷한 또래의 아이와 엄마가 지나가면 반가움을 주체하기 힘들고 먼저 말을 걸고 싶은 오지랖이 발동할 정도였다. 그건 나뿐만이 아닌지 다른 엄마들도 내 아이나 나에게 말을 거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의 눈에는 아이가 더욱 귀엽고 예뻐 보이는지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처음엔 나도 아이도 어색하고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갈지 난감했는데 이제는 이러한 관심이 감사하다. 그러면서 일명 '스몰톡'이라 불리는 낯선 이와의 대화가 어느덧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출산 전의 나를 떠올렸을 때 상상도 하기 힘든 변화가 차츰차츰 찾아온 것이다.
초면인 사람들과의 너스레가 늘어난 것 외에도 변화가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라 여겨서 친한 친구도 오지 않던 나의 집에 회사 동료를 초대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어려 식당이나 카페에서 편안하게 얘기 나누기가 힘들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마음속에 선을 긋고 있던 이전의 나였다면 그런 점을 떠나 아예 초대하지 않았을 터였다. 엄마들에 대한 동질감과 워킹맘에 대한 존경심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자녀가 있는 직장동료는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기에 거리낌 없이 서로의 집을 오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미혼인 동료도 오고 싶어 한다면 언제든지 대문을 열어주었다. 전과 달리 회사 동료를 한층 가깝게 여기며 나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오게 허락하였고, 그렇게 만나다 보니 마음속 거리감은 더욱 사라졌다. 낯선 이뿐만 아니라 지인과의 소통 방법도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싫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가 기쁨으로 다가왔다. 그것도 처음으로 느끼는 달콤한 감정이었다.
무엇보다 한층 가깝게 그리고 자주 소통하며 행복감을 느끼게 된 대상은 바로 양가 부모님이었다. 가장 가깝고 편안한 가족이지만 어른이시기에 때론 어렵게 생각되기도 하는 부모님. 때문에 죄송스럽게도 찾아뵙기는커녕 평소 연락을 자주 드리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면서 이 세상 모든 엄마들에 대한 동질감과 유대감, 동병상련이라는 복합적 감정이 자리 잡으면서 특히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나는 나대로 경외하는 마음에서, 양가 부모님은 손주를 보고 싶은 심정으로 만나거나 영상통화를 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또 그러다 보니 심적 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신기하게도 자주 보고 만날수록 할 얘기는 언제나 있고 아주 오랜만에 만난 사이는 그간 못다 한 이야기가 산적해 있을 것 같지만 서먹하게 대화가 오갈 뿐이다. 양가 부모님과 전엔 무소식이 희소식일 정도로 지냈던 때가 언제였는지, 요즘은 아이가 커가는 얘기만 해도 충분할 정도로 화젯거리가 풍성해졌다.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관계인 자녀를 만남으로써 라디오라는 매체를 만나게 해 주고 기존의 인간관계를 재정립하게 되었다. 나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화살의 과녁처럼 주변부로 원을 그려나갔을 때 가장 바깥의 세상 사람들과 차차 가까워지면서 중심부의 관계까지 차례로 돈독해지는 경험은 일생에 다시없을 것 같다. 본래의 소극적인 성향을 전복시켜 준 아이 덕분에 소통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외향적인 사람들에 비해서는 아직도 내성적인 면이 있겠지만 스스로에겐 아주 놀라울 정도의 변화이다. 인간이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임을 체감하며 한 단계 성숙해지고 행복한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