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마음은 느리게 몸은 빠르게

나아가다 그리고 날다

by 여느

한국인이어서일까,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기질 탓일까. 다혈질적이고 급한 성미 때문에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방해가 되면 쉽게 화가 나고 짜증이 솟구쳤다. 크게는 회사 중요업무에서부터 작게는 이동 중에 만나는 교통신호까지, 중요도를 떠나 빨리 내가 원하고 생각한 대로 잘 되지 않으면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 어려웠다. 특히나 사소한 것이지만 반복적으로 해도 안 될 때 - 로그인에 실패한다든지 엉킨 끈을 풀어봐도 더 엉키는 것만 같을 때 - 분노는 더욱 컸다. 이런 것에 감정을 주체 못 하는 나 자신이 우스웠지만 자제되지가 않았다.


모순적이게도 스스로에게는 너그러웠다. 너그럽기보다는 이왕 하는 거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빠릿빠릿 움직이지 않았다. 빨리 하기보다 계획을 철저하게 세우고 난 뒤에야 실천하는 식이었다. 우선 시작을 했다면 계획한 대로 하면 되기 때문에 크게 어려울 건 없었지만 그 시작까지가 오래 걸렸다. 머릿속으로 과정을 시뮬레이션을 하고 결과까지 그림을 그려본 후 진행했고, 내가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쉬이 출발하기가 망설여졌다. 예를 들어 이사를 하고 나서 짐 정리를 할 때 보이는 대로 조금씩 치운 후 배치가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옮길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 어느 방에 어떤 가구를 배치하고 그 가구에는 무엇을 어떤 순서대로 넣을지 등 크고 작은 것을 다 정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정리하기 시작했다. 만사에 있어 계획도 계획이거니와 마음의 준비까지 단단히 마치고 나서야 달려 나갈 수 있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이러한 틀이 깨졌다. 아이는 내가 원하는 대로 빨리 움직여주지 않았다. 아니, 빨리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존재이다. 처음엔 마음속에서 열불이 났다. 급한 성격이 금방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옷 한 번 갈아입고 외출 준비 하는 것도 세월인 상황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면 안 되는데 심적인 여유가 없을 땐 아이에게 화도 버럭 냈다. 그러나 이내 이 어린 아기한테 무엇을 바라는 것이냐며 자책했다.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아이는 아이이니 그럴 수 있다, 어른이자 부모인 내가 기다려주자, 여유를 가지자고 되뇌었다.


그리고 점차 그 대상이 확대되었다. 어딘가로 이동할 때도 아이랑 함께 하다 보면 안전이 우선이기 때문에 빠르게 가는 것은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보폭이 어른만큼 크지 않을뿐더러 뛰다간 넘어지기 쉽고 생각해 보면 아이가 뛰어야 할 만큼 급한 일이 대관절 무엇이 있겠나 하는 통찰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 다닐 때도 점멸하는 초록불을 아쉬워하며 달리지 않고 다음 신호를 차분히 기다리게 되었다. 비단 신호등을 건너는 것 외에도 서두르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때론 예전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아이를 재촉하기도 했으나 아주 천천히, 조금씩 변화에 젖어들었다.


아이와 주변 상황에는 여유를 갖기 시작한 반면 나에게는 채찍질을 가했다. 더 이상 완벽하게 계획한 후 실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이는 로봇처럼 때맞춰 먹거나 자는 것이 아니었으며 예기치 못하게 아프곤 했다. 예상되는 낮잠 시간에 밀린 집안일이나 잠깐의 여가를 보내려던 계획은 깨어지기 일쑤였다. 깊이 잠든 아이를 두고 살며시 빠져나와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도 엄마를 찾으며 찢어질 듯 우는 아이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옆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계획을 세워야 하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 앞에서 이성적이기 어려운 타입이었기에 이럴 때마다 무척 힘들었다. 만사에 있어 슬로스타터인 내게 시련이 닥친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울먹이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장에 해야 할 일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방치해도 어질러지는 집과 시시때때로 돌아오는 끼니 준비, 아이가 내년부터 다닐 유치원도 알아봐야 하고 떨어져 가는 생필품도 주문해야 하는데 모든 것을 아이가 잠든 시간에 미뤄둘 수가 없었다. 곤히 져준다는 보장도 없고 설령 그런다 할지라도 새벽 늦게까지 일만 하다 곯아떨어지길 반복해야 했다.


그러던 중에 뇌리에 스친 문구는 나이키의 'just do it'이었다. 잠시일지라도 틈이 있다면 그때 일단 하자는 것이었다. 완벽하진 못할지라도, 부족함이 많더라도 일단 행동하고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면 조금 더 손보는 식으로 해보자는 각오가 생겼다. 언제까지고 시간이 넉넉할 때 완벽하게 해내자는 방식을 고수할 수 없었다. 상황도 상황이거니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을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할 수 있을 때 하고, 쉴 수 있을 때 쉬면서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진종일 애매하게 아이에게 매여있으면서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식이 아니라 아이가 혼자 놀 땐 일하거나 쉬고, 아이가 나를 찾을 땐 몰입해서 놀아주는 식으로 바꾼 것이다.


물론 카멜레온처럼 바로 일단 하자는 모드로 변할 수는 없었지만 차차 변화를 이끌어갔다. 바뀐 습관 덕에 정신적인 피로가 누그러짐을 느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완벽할 수도 없으며,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할 일을 하고, 그렇지 않다면 안 해도 된다는 생각만으로 압박감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과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면서 실행력이 올라가자 오히려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었다. 할까 말까 할 땐 하고, 계획하느라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것보단 일단 하고 나서 고쳐나가는 것이 낫다는 말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마음만 급하고 몸은 굼뜬, 혹은 움직이지조차 않았던 과거를 탈피하고 따로 놀던 속도의 차이를 좁혀나갈 수 있었던 건 역시 아이들 덕분이다. 정신은 여유롭게, 그러나 몸은 부산하게 움직이는 삶은 아이에게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심신을 건강하게 하는 방향이다. 아직도 갈 길이 남아있지만 이 변화 역시도 일단 시작했기 때문에 나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전 17화#16 소통의 주파수를 높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