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네 탓 아닌 나 때문에

나아가다 그리고 날다

by 여느

부끄럽게도 나는 자신에겐 너그럽고 타인에겐 엄격한 사람이다. 모순되게도 그런 류의 사람을 무척이나 싫어하면서 스스로가 해당이 된다니 동류가 싫은 건지 이조차도 나에겐 너그럽기에 빚어지는 결과인지 헷갈릴 정도다. 인간이면 응당 가질 법한 방어적 기제일 수도 있겠으나 유소년기에 원체 지적받거나 혼난 경험이 거의 없던 탓도 있다. 부모님은 전혀 체벌하지 않으셨고 학창 시절 선생님들께 혼난 기억은 단체 기합 정도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혹은 타고난 이기심 때문인지 잘되면 내덕이요 안되면 남 탓을 하게 되었다. 심지어 내가 그런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살았다. 조금이나마 자아를 객관화할 수 있었던 건 결혼 덕분이다. 부모님 품에서 철 모르고 크다 자취를 하며 혼자 편할 대로 살다 보니 부부끼리 함께 맞춰가는 과정은 아주 순탄치만은 않았다. 자주는 아닐지라도 크고 작은 일로 부딪히곤 했는데, 내 잘못으로 빚어진 것일지라도 남편 탓으로 돌렸다. 이성적으로는 스스로 인정하고 사과하면 끝날 일임을 알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남자이니, 이런저런 이유로 남편이 너그럽게 받아주고 넘어가면 될 텐데 굳이 조목조목 이유를 들며 지적을 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에 울화가 터졌다. 그야말로 내 생각만 하는 것이다.


많진 않더라도 누차 비슷한 일이 반복되자 남편은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알려주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사과를 하고 상황을 종결시키라고. 자기는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조심하겠다. 간단한 말이지만 입에서 뱉어지는 건 결코 간단치 않았다. 옹졸한 자존심에,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서, 머릿속에 맴도는 말을 목 뒤로 삼켜내고 있었다. 내 잘못마저도 밀어내고 탓하는 대상은 아마 남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 누군가와 갈등이 생길 때 상황과 타인에게서 문제를 찾으려 애썼을 뿐 나 스스로를 반성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를 기르며 나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자초하고 잘못한 것이 너무나 명백했기에 순진무구한 아이에게 화살을 돌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물을 쏟았다든지 넘어졌을 때 아이에게 화를 내고 탓을 낸다면 정말 못난 부모이다. 아이의 손이 닿는 곳에 물컵을 둔 내가, 걸어 다니는 길목을 치워두지 않은 내가 잘못한 것이지 아이는 전혀 잘못이 없다. 아이가 넘어져서 울고 있으면 얼른 안아 올려서 엄마가 미안하다고 외치게 된다. 바르지 못한 방어기제로 사과의 한마디 앞에서 그렇게 꾹 닫혀있던 입술이 아이 앞에서는 금세 떨어지는 것이다. 나이만 먹고 몸만 컸다뿐 남편이 타일러 가르칠 정도로 떼쓰던 내가 아이 앞에서 순식간에 어른으로 성숙하게 되었다. 화를 내어서 무엇하겠냐는 말을 되내이고, 미안하다고 하루에도 여러 번 사과하고, 이런 말과 행동으로 혹여나 아이의 마음이 상하진 않았는지 살피게 된다.


이전부터 훌륭한 인격을 가진 분들도 많겠으나 나는 흔히 '애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말의 표본이다. 어려서 말을 못 하거나 말문이 트여도 발음이 분명치 않아 표정과 어투, 전후 상황 등으로 짐작하고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물어보며 확인하다 보니 공감능력도 발전하게 되었다. 거듭 물어도 아이가 원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할 땐 나도 답답하지만 엄마가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서 아이도 얼마나 갑갑할지 헤아리게 되었다. 신기한 것은 어느 순간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것이 굉장히 많아졌다는 점이다. 정확하게 얘기하지 않아도 아이가 이것 때문에 기분 나빴겠구나, 지금은 이런 추억을 꺼내면서 공감을 구하는 중이구나 하고 와닿는 순간이 잦아졌다. 엄마와 아이가 한 몸이었고 또 애착관계가 쌓일 만큼 많은 시간을 함께 했기에 아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것도 있지만 공감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해의 폭도 자연히 넓어진 듯하다.


공감능력의 확대는 비단 내 자녀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토록 남을 힐난하고 내 잘못마저 그들에게서 찾으려던 내가 타인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 애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상황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감히 옳다 그르다를 속단할 수 없다는 신중함이 생겼다. 아이를 키워보며 세상 모든 엄마들에 대한 유대감이 생겨났듯,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시도하자 세상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 나와 떨어져 지낸 시간이 극히 적은 내 아이조차 의도하지 않게 내 언행에 상처받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깔깔거리며 즐거워하기도 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나도 내 마음 모를 때가 있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을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교과서에서부터 서적까지 숱하게 접한 맹자의 측은지심을 나는 부모가 되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예전엔 이래서 싫고 저래서 미웠던 사람도 이제는 그 사람의 행동에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여지가 생겼으며 미운 마음을 가진 것이 미안해졌다. 과거엔 갖가지 범죄 뉴스에 혀를 끌끌 차곤 했다면 요즘은 범법행위 자체는 분명 잘못한 일이나 저 사람이 살아온 내력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내가 섣불리 비난할 수 있을까 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일었다. 기부처럼 선행을 누군가 했다는 소식에는 저 사람이 여유가 있으니 가능하겠다는 못난 생각이 아니라 아무리 거부도 여러 복잡한 상황에 얽혀 막상 큰돈을 쉽게 남을 위해 내는 것이 어려울 수 있는데 대단하다는 감탄이 나왔다.


사람마다 사연이 있고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이 얼마나 오만한 발언인지 체득하게 된 것은 아이를 기르면서 가능했다. 내가 사랑을 주고 시간과 에너지를 쓰면서 정성으로 기르는 것 이상으로 엄마인 나를 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하는 고마운 아이들. 부족한 점이 여전히 많지만 한번 더 나를 돌아보게 하고 탓이 아닌 감사를 배우게 되었다. 잘못된 방향에서 전환할 수 있었던 만큼 고마운 존재들을 위해 그리고 나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나날이 갈고닦으며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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