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잃지 않고 읽어나가는 삶

나아가다 그리고 날다

by 여느

시험기간이 되면 당장 해도 부족할 공부는 뒷전으로 미뤄두고 책상 위 청소를 하거나 필기구를 정리하고 싶어 진다. 평소엔 관심도 없던 책장 속 책들도 어찌나 재밌어 보이는지.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경험하고 공감하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래서 독서가 나의 여가시간을 재밌고 만족스럽게 보내는 방법이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나의 취향을 제대로 발견할 때까지 이것저것 남들이 하는, 혹은 유행하는 취미활동을 잠깐씩 발을 담가보곤 했다. 캘리그래피도 몇 달이나마 강좌를 들으러 다녔고, 혼자서 컬러링북을 사보기도 했으며, 일렉기타와 앰프까지 사서는 아주 잠깐 맛보기도 하였는데 그나마 오래 지속한 것은 미국과 영국의 드라마를 정주행 하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육아와 그에 수반된 집안일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다른 것을 다 제쳐두고서 간절하게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바로 독서였다. 그저 막막한 공부량 앞에서 회피하듯 찾게 되는 것이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극한으로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독서임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도 책을 좋아하는 편이긴 했지만 다른 취미들을 다 제치고서도 으뜸으로 꼽을 수 있다곤 생각지 못했다. 나의 취향을 뒤늦게서야 확신하게 된 것이다.


틈틈이 책을 읽고 라디오를 들으며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욕망이 조금씩 충족이 되자 잊고 있던 다른 욕구가 꿈틀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늘어나고 입 속에서 빙빙 도는 말도 쌓여가는데 이를 풀어낼 방편이 필요했다. 글로 내 의견을 정리하고 또 글을 씀으로써 다른 생각의 실타래를 이어가 보고 싶었다. 그동안 시험문항에 대한 답지로, 업무 보고서로 글을 계속 써왔지만 그것은 목적이 있었고 답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순전히 내 생각을 자유롭게 쓰는 글쓰기는 안 한 지 십여 년이 넘은 시점에, 그것도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나를 표현하고 스스로를 찾는 창구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이를 재우고 체력이 허락하는 시간까지 독서와 글쓰기를 절반 정도로 비중을 나눠 여가를 보내는 일상을 점차 루틴으로 만들었다. 책을 읽으니 쓸거리가 떠오르고, 쓰다 보면 나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달아 책을 잡게 되는 것의 반복이었다.


이러한 일상은 나에게 엄청난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첫째로 아이들 앞에서 보여주기에 바람직한 취미이므로 마음 불편할 것 없이 늘 편안했으며, 둘째로 내가 즐거운 것을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취미이기에 나의 내면을 체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지금 내가 궁금하거나 갈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고르게 되는 서적이 달랐다. 책을 통해 지적으로 배우기도 하고 정서적으로도 못난 생각을 갈고닦으며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마음속에 머무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글로 풀어내면서 보다 명확해지며 글로 쏟아냈기에 다소 진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남은 일생을 즐겁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 확고한 방편을 찾았다는 것은 과거에 취미 유목민처럼 이것저것 기웃거리던 나에겐 의미가 크다. 올 한 해 어림잡아 50여 권, 많아야 60권 정도 읽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30대인 내가 5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하더라도 평생 3천여 권 밖에 읽지 못한다는 사실은 내게 조급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렇기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명확하게 아는 이상 다른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단 몇 쪽이라도 새로운 책 그리고 작가를 만날 수 있다. 그것이 내게 확실하고도 커다란 행복이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보통의 직장인들은 퇴직 후에 작가가 된다고. 사진작가, 수필작가, 시인, 화가 등 수많은 작가로 전향한다고. 갑자기 주어진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퇴직 후에 열심히 찾다 보니 너도 나도 어떤 작가가 되어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일 수 있었다. 드넓은 여가시간의 바다에 던져진 것처럼, 허우적거리며 나의 여생을 이끌어줄 취미생활이란 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옆에 나무널빤지라도 붙잡아보고, 통통배에 올라보기도 하겠지만 오래가진 못 했을 것이다. 게다가 갑자기 주어진 길고 긴 자유시간 앞에서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건 오히려 어려웠을 테다. 결핍이 욕망을 만들기 때문이다. 시간이 극도로 부족한 상황에 놓이자 최상의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취미생활을 찾게 되었다. 60대가 되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수도 있었을 텐데, 감사하게도 미리 알게 되어 시간을 무한정 번 기분이다.


사람들은 육아하면서 자기 시간이 없지 않냐고 묻곤 한다. 사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이가 없을 때는 도리어 시간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여유시간이 지금보다 수십 배는 되었을 텐데 내가 흡족하게 시간을 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느낀 듯하다. 질 나쁜 주전부리로 배를 채운 것처럼 허하면서 살만 찌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아이를 만나고 나서 내가 평생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취미생활을 깨달았고 여가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게 되었다. 내 시간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단 10분을 보내더라도 내가 읽은 책, 적은 글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남아있기에 행복하다. 아이 덕분에 그 자체로 행복하고, 또 아이 덕분에 새로운 삶을 살고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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