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다 그리고 날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계획적인 편이지만 재무설계나 가계경제 관리에 있어서는 이상하게도 계획성이 발휘되지 않는다. 현명한 분들은 20대 때부터 재테크를 하고 차분히 노후 준비도 꾀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난 그런 쪽에 밝지 않다 보니 사회초년생일 적에는 월급 내에서 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가거나 공연을 보는 등 YOLO족처럼 지냈던 것 같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조금 알뜰해진 듯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저축 계획을 세우는 것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었다. 하루하루 직장에 나가서 일하다 보면 월급일이었고, 그 월급으로 생활하다가 부족해질 즈음엔 다시 급여가 들어왔다. 한 달 단위로 해바라기씨를 수급받는 햄스터가 된 마냥 쳇바퀴를 돌리며 살고 있었다.
자녀가 생기고 부모로서 아이가 독립할 때까지 양육해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막중한 책임감과 함께 현실적인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느 부모들처럼 정년퇴직을 할 즈음엔 아이가 몇 살인지 계산해 보니 대학을 마칠 때까진 아직 직장을 다니고 있겠다는 생각에 살짝 안도했다. 하지만 대학원을 간다든지 졸업이 늦어진다거나 설령 바로 취업을 한다 해도 결혼자금을 지원해줘야 한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미치자 불안해졌다. 게다가 우리 아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자력으로 건강한 노년기를 보내려면 노후준비까지 찬찬히 해둬야만 했다. 일전엔 오롯이 '내'가 잘 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다면 이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잘 살아가야만 한다. 원대한 삶의 목적과 동시에 미래의 인생에 대한 추진력을 얻게 된 것이다.
그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는 예전 방식대로 살기엔 위험이 너무 컸다. 다 큰 성인 혼자의 몸을 건사하기만 하면 상황과 앞날이 구만리 같은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은 천지차이기 때문이다. 조급함과 불안감을 애써 눌러가며 가장 먼저 계획하고 검토하게 된 것은 주거 문제였다. 아무래도 제일 큰 목돈이 들어가는 부분이기도 하고 부부만 있을 때와 달리 자녀가 있으면 여러 여건상 이사가 어려워지는 것도 있기에 주거 안정성을 최대한 빨리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전 같으면 두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에 적당한 가격의 전셋집을 구하고 운이 좋으면 계약 연장을, 그렇지 않으면 다른 전셋집을 구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임신을 하고 아이를 만나며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이삿짐 정리와 같은 일에 몇 개월씩 걸리곤 했던 내가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사를 다닌다는 건 심각하게 어려운 과제로 다가왔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2학기 중간에 이사를 가면서 이미 친할 대로 친해진 아이들 틈바구니 속에 적응의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떠올랐다. 실거주를 위한 내 집 한 채 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처음으로 지도맵에서 요리조리 살펴보고 한번 살면 오래 있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신축인 곳의 리스트를 정리해 보았다. 남편과 논의도 하고 양가 부모님께 조언도 구했다. 그 결과 학교가 인근에 있고 회사와도 멀지 않으면서 무엇보다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는 곳에 집 한 채를 어렵사리 갖게 되었다. 은행의 지분이 대부분이지만, 아이가 찾아오면서 그간은 막연하고 아스라이 멀어 보이기만 하던 집도 장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액이나마 장기저축도 시작하게 되었다. 있어도 어찌어찌 써버리고 없을 것 같은 금액이기에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재테크라 하기에는 수익률이 낮지만 주식이나 코인과 같은 투자에는 정보가 밝지가 않아서 선택하게 되었다. 좀 더 빨리 넣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아이가 없었더라면 언제까지고 나중으로 미뤄두기만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에라도 저축하게 되어 감사히 여기려고 한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종종 하는 생각은 퇴직 후 어떤 활동을 해나갈지 하는 것이다. 퇴직 후에 일을 하기에 여전히 체력이나 정신적으로 무리가 없을 텐데 아이들이 독립을 앞둔 시점에 뒷바라지를 마무리할 겸 노후대비에 보탬이 될 활동이 무엇이 있을지 일찌감치 고민하게 되었다. 관심이 있는 만큼 자연스레 관련 기사나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다. N잡으로 퇴직 전만큼이나 수익을 창출하는 분도 있고 비영리단체 활동으로 수익은 적지만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는 분도 계셨다. 남편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다음에 관심 있는 분야로 대학원 진학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비쳤다. 더 배우고 나서 향후 나아갈 길을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에 동감했다. 아이들이 삶의 부스터이자 촉진제가 되어 우리 부부에게 더욱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게 힘을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햄스터처럼 당장 눈앞의 해바라기씨앗을 배불리 먹고 눕다 달리기를 반복하는 삶을 탈피할 수 있었던 건 아이들 덕이다. 철창을 깨부수고 새로운 삶을 설계할 수 있게 꺼지지 않는 열정을 부여한 것이 바로 아이들인 것이다. 아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집도, 저축도, 노후 계획도 내 손안에 없었을지 모른다. 아이들이 무거운 책임감을 쥐어주어 버겁지 않느냐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그 책임감이 안일했던 나를 채찍질하고 움직일 수 있게 만든다. 무한동력은 꿈이라고들 말한다. 현재 과학적으로 실현 가능한 무한동력은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이들이라는 무한동력이 존재한다. 아이들은 매일 성장하고 계속 나아가며 발전하도록 만드는 동력원이다. 처음으로 내 심신을 돌보게 하고, 나의 단점을 마주하며 개선하게 만들며 앞으로의 날을 기대하게 하는 힘. 아이들이 있었기에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 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