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삶은 모순이다, 그러나

에필로그

by 여느

주거니 받거니, give and take. 동서양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격언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살아가면서 받기만 하거나 주기만 하는 건 없다시피 하다는 것이다. 워낙 어릴 때부터 들어온지라 기역니은을 갑자기 생경하게 느끼지 않듯 의미를 깊이 곱씹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를 만나고 나니 그 뜻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첫 번째로 깨달은 것은 내가 먼저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거니와 give가 선행하듯 주는 행위가 있어야 받는 것이 가능해진다. 가만히 있으면서 누가 뭘 나에게 주지 않을까 하며 받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로또용지 한 장도 사지 않고 일확천금의 당첨을 바라는 것과 같다. 나는 두 아이에게 생명을 주었다. 내가 먼저 삶을 주자, 아이들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주었다. 내가 아이를 뱃속에서 품고 낳으며 기르는 것이 우선해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둘째로는 일단 주기만 하면, 그 이상으로, 질적이나 양적으로 엄청나게 불어난 선물을 받는다는 것이다. 글로 담은 나의 성장기는 아이의 존재 자체만으로 받는 기쁨과 행복, 감사함을 덜어내고 나의 삶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다 풀어내지 못했을 정도로 많은 것을 받았는데, 하물며 두 아이가 주는 행복은 어떻겠는가. 내가 보드랍게 쓰다듬으면 그보다 더 정성스레 나를 매만지고, 애정 가득한 말을 건네면 더 큰 사랑을 속삭인다. 아이들은 먼저 주는 이는 그 이상을 받는다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거듭 확인시켜 주는 증거이자 스승이다.


그러고 보면 삶은 참 모순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전의 양면 같은 것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사람도 입체적이듯 이 세상도 마찬가지다. 같은 것도 어떨 땐 좋으면서도 어떨 땐 그래서 싫다. 그래서 어려우면서도 재밌는 게 삶이 아닌가 한다. 출산도 그중 하나다. 돌이켜보면 출산은 아이와 나를 동시에 낳는 과정이었다. 배를 가르며 견딘 열꽃과도 같은 쓰라림은 50센티에 불과한 아이를 낳기보다 160이 넘는 나를 다시 낳기 위한 고통이었던 것이다. 육아가 아이에게 내 몸을 억류당하고, 에너지를 바쳐야 하며 시간마저 저당 잡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자 틈나는 대로 운동을 하고 질 좋은 식사에 신경 쓰며 정신건강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이와 붙어 다녀야 했기에 세상을 전에 없던 순수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으며, 극도로 여가시간이 부족하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엔 출산을 그저 고귀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두루뭉술하게 가르치는 것이 아쉬웠다면 근래엔 엄마의 희생, 고통, 박탈감 등 부정적인 요소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어느 하나가 옳다고 하기가 어렵다. 사실 둘 다 맞기 때문이다. 화형을 당하는 것 같은 고통을 겪어보니 희뿌연 베일에 싸인 듯 아름답게만 포장하던 과거 성교육에 대한 반감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지금 성토하는 임신과 출산의 괴로움과 육아의 어려움도 완전한 정답은 아니다. 그것 또한 임신-출산-육아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그간 정보아 부족했던 성교육과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자극적인 요소 위주의 정보가 한데 섞이고 있는 지금, 보다 대승적인 흐름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적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방향성에 나의 글이 혹여 티끌만큼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대단한 영광일 것이다.


'주거니 받거니'처럼, 비 온 뒤에 땅이 단단하게 굳는다는 속담도 예사로 여기곤 했다. 시련이 축복이었다는 혹자의 말에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아이를 만나고 나니 그 의미 또한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시련과 위기의 상황이 당시엔 세상의 전부가 뒤집히는 고통으로 다가오지만, 이를 통해 전에 없던 통찰력과 시선, 강인함을 얻게 된다. 그뿐인가. 사마천이 형벌을 받지 않았다면, 마키아벨리가 관직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면, 정약용 선생님이 유배를 가지 않았다면 <사기>와 <군주론>, <목민심서>와 같은 역작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련은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육신이 떠난 이후에도 영원히 세상에 남을 작품을 낳을 힘을 준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그림자가 동행하고, 빛이 잘 보이는 곳은 어둠이 깔려있기 마련이다. 모순으로 점철된 이 세상에서, 그러나 가능한 한 어둠보다는 빛에 주목하며 살아가고 싶다. 부끄러운 구석이 많은 부족한 나의 이 글이 이 세상 모든 엄마, 아빠, 양육자, 그리고 크고 작은 시련을 맞이한 이들에게 작은 희망과 기쁨을 준다면 내게 굉장한 행복이 될 것이다. 시멘트 틈새에서 발견한 민들레 같은 글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긍정 한 줌, 희망 한 조각을 하나씩 모아가다 보면 한층 밝아진 세계를 마주하게 되리라. 지금보다 더 빛나는 세상에서 함께 살아갈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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