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새로이 보다
교과서에서 플라톤이나 데카르트 같은 철학자들이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으며 인간은 무엇인지 고뇌하며 사상을 이룩했다는 것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 자체가 나와는 다른 사람이구나 하는 거리감이 있었다. 그런데 세상을 처음 마주한 것처럼 새로이 바라보고, 자연을 느끼며, 과학을 공부하다 보니 전에 없던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한가득 피어났다. 어느덧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이 덕분에 나도 조금이나마 철학자의 자세를 갖추게 된 것이다. 생은 무엇인지,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지와 같은 생각을 멈출 수가 없는 요즘. 이미 흔하디 흔한 결론일 수도 있으나 스스로도 놀라운 답 또한 나름대로 정립해 보았다.
생명은 실로 경이로운 것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수많은 이파리나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벚꽃은 다 똑같아 보인다. 프랙탈 이론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아주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르게 생겼다. 설령 똑같아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눈에 그러할 뿐 실제로는 하나하나 다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신생아실에 누워있는 아기들을 보면 다 작디작은 아가 같지만 조금만 살펴보면 모두 다르게 생겼음을 알 수 있다. 열기구를 타고 하늘 위로 조금만 올라가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간의 모습은 다 비슷비슷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살아가는 것도 어떨 땐 같아 보인다. 우스갯소리로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들 하지 않는가. 하지만 사실 개개인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는 특별한 존재다. 그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고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오래전에도 나라는 존재는 없었으며 나중에도 다시 환생할 수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만 존재할 뿐이다.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같은 듯, 그러나 다르다.
크기로 보면 어떨까. 상공에서 바라만 보아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크기의 인간. 은하계와 비견하면 티끌에 불과해 보인다. 우주와는 반대로 작은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본다. 개미 입장에서는 인간이 엄청나게 거대하고 두려울 것이다. 미시세계로 들어가 세포나 원자 단위를 떠올려본다. 그들의 입장에선 인간이 소우주같이 아득하게 느껴질 것이다. 즉 우리 인간은 크고도 작은 존재다.
세포가 나온 김에 생각해 본다. 미세하게 작은 세포에서도 일부에 해당하는 DNA는 지구상에 인류가 처음 출현했을 때부터 지금의 나에 이르기까지 유전된 정보가 담겨있다. 심지어 세포 안의 미토콘드리아는 인류 이전의 생명체로부터 우리가 진화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지구상에 처음으로 생겨난 원핵생물에서부터 다세포, 포유류, 침팬지, 유인원에 이르기까지의 오랜 역사가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단순히 크기로 논하기보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 소우주가 담겨있는 놀라운 존재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이토록 귀중한 나를 감히 함부로 할 수가 있겠는가. 공자님 말씀에 '신체발부 수지부모'처럼 머리카락 한 터럭도 소중히 해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류의 조상님은 물론 생명의 조상님들까지 생존을 위한 갖은 노력 끝에 나라는 생명체를 꽃피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학적으로 지구가 생긴 이래 내가 지금 현재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0에 가까운, 그러니까 불가능에 수렴하는 확률을 뚫고 생을 받았기에 하루하루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렵게 기회를 얻은 삶의 기한은 유한하다. 게다가 끝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 내일이 될지, 수십 년 후가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만이 해답이다. 메멘토모리와 카르페디엠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갈 뿐 남아 있지 않지만, 순간의 행복했던 기억은 나와 가족들의 머릿속에 존재한다.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멍하니 바라보며 후회만 하기보다 기억에 남을 순간을 보다 자주 만드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나아가 만일 가능하다면, 사회에 조금이라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며 생명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함에 대해 미약하게나마 보답하고 싶다. 그리고 내 아이들은 나보다도 더욱 세상을 밝히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노력하고 싶다. 나를 이러한 생각으로 이끌어 밝혀준 것처럼, 내 아이들은 잘 해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