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 정신이 거기에 있었다(1)

비로소 나를 돌보다

by 여느

지금껏 신체건강을 살피기에도 무심했던 나였다. 마음과 정신상태는 정말이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주변에서 혹은 미디어에서 정신건강을 논하고 상담을 받는 것을 봐오곤 했다. 그럴 때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스스로 느낄 때 적절한 진단을 받고 상담을 통한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정작 그 대상이 나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나의 정신은 병들 리 없다고 못 박았다. 마치 나라는 존재는 마음이나 정신이 없는 양 굴었다. 상담을 받는 분들을 보며 타자화하고 철저히 구분 지었던 것이다.


언감생심 내 정신이 아플 수 있다고 꿈도 꾸지 않았으나 출산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단단한 편견을 깨뜨렸다. 원래 잘 울지 않는 성격인데, 출산 직후부터 아주 사소한 일에도 눈물이 쉽게 터졌다. 산후우울증에 대해 어느 정도 공부하고 대비도 했지만 그게 정말 이렇게 즉각적으로 찾아올지 몰랐다. 병원에서부터 시작된 눈물바람은 집에 돌아와 육아에 전면 돌입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호르몬의 영향도 있겠지만 새벽에 수유하느라 숙면하지 못하다 보니 체력이 고갈되면서 정신적으로도 지치게 되었다. 힘들고 고되어서, 그리고 나의 이러한 상태를 몰라주는 남편이 야속해서 눈물이 났다.


집에 갇혀 육아와 집안일이 일상의 전부인 상황도 내 마음을 더욱 답답하게 옥죄었다. 직장에 있을 때와 달리 대화할 상대도 제한적이고 집중해서 몰두할 만한 일이 없었다. 그다지 쓰임이 없는 머리는 공회전하는 듯 멍하면서 부정적인 생각들만 뭉게뭉게 피어났다. 심신이 메말라버린 나와 일상에 큰 변화가 없는 듯한 남편을 비교해가며 서운한 감정만 키웠다. 우울증은 곧 분노와 화병으로 이어진다고 했던가. 서운함은 이내 적개심과 분노로 바뀌어 퇴근한 남편에게 신경질적으로 대했다. 남편도 회사일로 피곤한 상태다 보니 맞받아치고 이는 싸움으로 번지곤 했다.


하루는 비슷한 상황에서 남편이 그랬다. 정상이 아닌 것 같다고. 그 말이 당시에는 엄청나게 서럽게 다가와 또 눈물이 나면서 화가 치솟았다. 하지만 진정된 후에 곱씹어보니 진지하게 생각해야겠다고 여겨졌다. 사실 스스로도 내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당장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가야 하나 싶다가도, 일단은 현재 상황에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찾기로 했다. 내 마음 건강을 되찾고자 노력해 보되 혼자의 힘으로 어려우면 전문가를 만나봐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이다.


먼저 단단한 정신을 위해 몸 건강을 챙겼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을 떠올렸다.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살폈다. 먼저 식사를 가능한 한 제대로 챙겨 먹도록 노력했다. 집안일하기에 분주했던 아이 낮잠 시간은 함께 수면을 보충하는 시간으로 바꾸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운동을 하면 순간적으로 엔돌핀이 나온다고 들었다. 그래서 운동도 틈날 때마다 병행했다. 무엇보다 매일 샤워를 하려고 노력했다. 기분이 즉각적으로 좋아지는 것은 샤워만한 것이 없었다. 상쾌함에 정신이 또렷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는 육아에 바빠 하루 걸러 씻곤 했지만 정신건강을 위해 매일 챙겼다.


다음으로는 멍하게 있는 상황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생활소음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던 거실에 노래나 라디오를 틀어두었다. 신나는 음악을 따라 나의 마음도 조금씩 들썩이는 느낌이었다. 또 노래나 말소리에 집중하는 동안은 머릿속에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 잡지 않아서 좋았다. 무언가 몰입하지 않고 있을 때면 나쁜 생각이 피어오르는 것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고 집중하게 되는 대상을 찾고자 했다. 다만 그것이 소모적이고 허무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아야 했다. 책을 읽거나 영어 회화 공부를 하는 등의 방법이 바람직했다. 단 몇 장이라고 책을 넘기고 몇 개의 영어 문장을 말해보며 부정적인 생각을 밀어냈다.


마지막으로 홀로 외출해서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남편과 상의를 해서 주말에 단 한 시간이라도 나가기 시작했다. 주로 바로 집 앞 카페에 가는 것이 다였지만, 짧은 혼자만의 외출은 기분전환에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나가서도 엄마의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해 아이 생각을 떨칠 순 없었다. 그럼에도 외출복을 입고 바깥공기를 쐬며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자유로이 갈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내 나름대로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해 보려 시도한 것이 잘 맞았다. 툭하면 흐르던 눈물과 부정적인 생각은 서서히 줄었고 남편을 향한 분노도 사그라들었다. 여차하면 전문가와 상담을 받으려 했으나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도 정신건강을 챙겨야 하는 대상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언제까지고 자신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쩌면 내 마음이 언제든 약해질 수 있고 병들 수 있음을 알게 된 좋은 기회였다고 본다. 이번 일을 계기 삼아 내 정신을 돌보는 데 신경 쓰다 보면 자연스레 몸도 마음도 건강하리라 생각이 든다. 출산은 내 심신을 약하게 만들었지만 오히려 그 이전보다도 나를 소중히 여기는 귀한 사건이었다. 비 온 뒤 땅이 굳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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